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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Mar 14. 2020

흑백사진 같은, 옛날 감성 영화

영화 「클래식」 후기 / 손예진, 조인성, 조승우 주연

영화 정보



제목 : 클래식

장르 : 로맨스, 멜로

개봉 : 2003. 01. 30.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평점 : 9.1 (다음 영화)

감독 : 곽재용

주연 : 손예진(주희, 지혜), 조승우(준하), 조인성(상민)




영화 후기 <흑백사진 같은, 옛날 감성 영화>


1960년대, 교복을 입고 우산을 쓰고 있는 주희.


클래식. 제목처럼 정말 클래식한 영화였습니다. 낡은 앨범 흑백사진처럼 1960년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좋았던 영화입니다. 1960년과 1980-90년대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되는데요, 그래서 두 시대의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어요. 지금이 2020년이니까 둘 다 반가운 과거의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문자나 카톡 대신 편지를 쓰던 시절. 영화 시작과 끝 부분에 나오는 정겨운 시골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요. 살아보지 않은 1960년대의 풍경도 옛날 모습 같은데 그 당시 시골 풍경이라니. <클래식>이라는 영화는 이런 면에서 옛날 감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뉴트로' 감성.


손예진 배우는 이 영화에서 1960년대 사는 주희, 그리고 1980-90년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지혜를 연기하면서 1인 2역을 맡고 있는데요, 지혜의 엄마가 바로 1960년대 주희입니다. 조승우가 연기하는 준하는 주희를 좋아하고, 주희의 딸 지혜는 조인성이 연기하는 상민을 좋아한다는 설정으로 러브라인이 진행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델리스파이스 고백,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름만 들어도 '시대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명곡이 중간중간 나올 때 아주 감동적이에요. 게다 클래식 비창, 파헬벨 등 아름다운 선율들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니까 보는 내내 잔잔하고 평화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울면서 준하에게 돌아서는 주희


체크무늬 2단 우산, 그 시절의 교복, 증기 기관차, 흑백영화 포스터에 월남 파병 이야기까지.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이 당시 시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요. 중간에 준하가 주희네 집 앞 전봇대의 가로등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렴풋이 어린 시절 동네 가로등을 수동으로 껐다 켰던 추억이 떠올랐어요.


미소가 뗘지는 추억의 모습들이 많이 떠오르는 한편 어느 순간 영화는 애절해지기도 했는데요, 주희랑 준하가 헤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희는 부잣집 딸이어서 집안끼리 결혼하기로 정해진 태수라는 남자가 있었지만 몰래 준하를 만나다가 부모님이 알게 되어 헤어지게 됐어요.


정략결혼이라니. 지금도 경제적으로 비슷하거나 더 풍족한 대상을 찾아 결혼하려는 정서는 남아있긴 하지만 이젠 부모님이 결혼할 대상을 결혼해주는 문화는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고리타분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저시대엔 저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요즘이 더 좋은 시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헤어짐의 충격에 준하는 군대를 가게 되고, 월남으로 파병을 가게 됩니다. 이는 실제로 1960년대 월남으로 파병 갔던 '청해부대'로 추측됩니다. 영화가 실제 있었던 시대상을 많이 담고 있어요. 다만 모든 시대상이 아름답게 보인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대학생들의 대모 하는 모습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일 안타까웠던 건 정략결혼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던 주희와 준하였고요.




시간이 지나 주희의 딸 지혜가 나오는 1990년대. 지혜는 같은 학교 연극영화과 상민을 좋아하지만 친구의 남자 친구라서 말 못 하고 짝사랑만 하고 있어요. 지혜의 엄마 주희도 과거에 조승우가 연기하는 준하와 그의 친구 태수 사이에서도 삼각관계였는데, 지혜도 친구와 친구의 애인 사이에서 힘들어해요.


삼각관계, 짝사랑, 질투, 오해, 고백이란 소재가 나오는 멜로 영화. 그래서 유치하게도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런 유치함 때문에 '클래식'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주희는 결국 준하와 사랑을 못 이룬 채 태수와 정략결혼했지만, 지혜는 상민과 결국 사랑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상민과 빗속을 가로지르는 이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예쁜 장면이었어요.




"첫눈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길거리를 거닐어야 한다는데 난 편지를 쓸 뿐이야"


영화는 지혜가 몰래 엄마의 편지를 들추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편지에 쓰여 있는 내용이 오래되고 진부한 느낌에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 표현들, 편지를 읽어가는 목소리, 그 시대의 말투를 보고 듣다 보면 하나같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예요.


그리고 반전이 있습니다. 지혜는 상민과 정식으로 사귀게 된 후 자신의 어머니 '주희'와 '준하'의 이뤄지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상민에게 들려주는데요, 상민이 바로 준하의 아들이었던 거예요. 준하가 월남 파병을 다녀온 후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주희는 태수와 결혼해 '지혜'를 낳았고, 준하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상민'을 낳았고, 그 둘이 부모의 못다 한 사랑을 이루는 순간.


흑백사진 같이 옛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아련한 영화. 그래서 클래식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고전적인'이나 '오래된' 뜻이 아니라 '아주 소중한 과거'라는 의미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클래식>이라는 영화는, 가끔 과거 살았던 시대의 레트로 감성을 느끼고 싶을 때나, 살아보지 않았던 시대의 뉴트로 감성을 느끼고 싶을 때 보기 아주 좋은 '옛날 감성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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