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미의 이름」 후기 / 움베르토 에코 원작, 숀 코네리 주연
영화 정보
제목 : 장미의 이름 | The name of the Rose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시대극
국가 : 이탈리아, 구 서독, 프랑스
개봉 : 1989. 06. 03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 8.6 / 10 (다음 영화)
원작 : 움베르토 에코
감독 : 장 자크 아노
출연 : 숀 코네리(바스커빌의 윌리엄), 크리스찬 슬레이터(멜크의 아드조)
요약 : 유럽의 중세 시대 수도원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추적
영화 후기 <중세 유럽, 수도원 배경 영화>
영화 <장미의 이름>은 중세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기록한 수기를 바탕으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소설이 원작입니다. 네 번의 유럽여행을 하며 자연스럽게 몇 백 년, 몇 천년이 되는 수도원이나 성당을 방문하면서 "이곳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궁금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시대상과 종교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도움뿐만 아니라 당시의 철학과 사상, 인권에 대해서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상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 종교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분, 저처럼 중세 덕후인 분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미학과 철학, 건축학 관련한 이론서를 쓴 학자 '움베르토 에코'라는 사람이에요. 특히 에코는 11-12세기 중세 유럽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였기 때문에 작품을 훌륭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고증'이 매우 중요한데, 과거 흥행했던 <300>이라는 영화 자체는 훌륭했지만 고증에서는 미흡했었죠. 그에 반면 에코는 관련 분야 학자였기 때문에 영화 내에서 이뤄지는 많은 것들의 실존성과 연결성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집니다.
영화는 현존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의 사상부터 기독교 내 종파 갈등, 살인, 은폐, 동성애, 성매매 등 다양한 시대 사건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바스커빌의 윌리엄'이라는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마치 셜록처럼 수도원의 비리와 부정, 부패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치는 이야기들이 볼만한 영화입니다.
인권보다 신앙을 앞세웠던 중세의 유럽.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 산자락에 있는 수도원에서 의문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됩니다. 그리고 때마침 '바스커빌의 윌리엄'과 그가 데리고 있는 수련사 '멜크의 아드조'가 등장하지요. 배우 숀 코네리가 연기하는 윌리엄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부정과 부패까지 발견하게 되면서 관람객들에게 생각할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의 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 주로 '필사'라는 걸 했습니다. 제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다 보니 영화를 접하기 전부터 중세 수도사들의 필사본을 공부하면서 많이 봤었는데요, 그 안엔 멋진 서체와 성경에 관련한 삽화가 그려져 있어서 디자인적으로도 자세히 보게 됐었어요. 영화에서 투신자살하는 '아델모'는 특히 필사를 잘하는 수도사였습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는 점이었죠. 이 수도사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사건의 전말이 점점 밝혀지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죽고, 수도원장은 이를 은폐하려 합니다. 외딴 산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이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어요. 때마침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에서는 추기경과 종교재판을 하는 베르나르 귀라는 인물까지 보내 자신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건을 더 파헤치게 돼요.
영화에서는 아델모를 포함해 3명의 수도사가 죽게 됩니다. 그리스어 번역을 담당했던 수련사 '베난티오'의 죽음에 이어 동성애를 하는 '베링거'가 죽자 윌리엄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도원 안에 있는 고대 그리스 장서 <시학 2>와 관련이 있다는 거였죠. <시학 2>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었는데, 당시 기독교에서는 금기하는 '희극적 사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책에 독을 발라놨고, 그 독 때문에 수도사들의 손가락과 혀가 검게 변하면서 죽게 된 거였죠.
윌리엄은 아드조와 함께 그 죽음의 단서를 찾아가면서 수도사들의 동성애, 성매매, 재물 착취 등의 비리들까지 알게 됩니다. 특히 저는 수도원 내에서 이뤄지는 '성매매'가 충격적이었어요.
수도원에 곡식과 가축을 바치고 나서 가난하게 살던 마을 여자는 수도원 안에서 먹고 남은 가축의 내장 부위 고기를 받기 위해 식량을 담당하는 수도사와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세의 기독교에서는 신부님, 수녀님처럼 육욕을 금기시했는데 역설적인 성범죄였죠.
뿐만 아닙니다. 재물을 수도원에 바치면 천국을 간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농사지은 거, 키우는 가축들도 착취하면서 수도원만 배부르고, 일반 사람들은 굶주려야만 했다는 사실도 안타까웠습니다. 천국을 위해 당하고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괜히 제가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끔찍한 만행을 어디에 알릴 수도, 알려서 처벌받고 바로잡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왜 중세 시대를 다른 말로 '암흑시대'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역사는 늘 그랬습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권력이 형성되고, 권력이 있는 곳에 부정과 부패가 생겼었죠. 오랜 옛날도 다를 바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모두 실화라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놀랍게도 이는 1327년 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을 50-60년 지나 '멜크의 아드조'의 수기로 작성했고, 그 수기를 바탕으로 1968년 <마비용 수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아디송의 수기>로 작성되면서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재탄생하게 된 실제 있었을 가능성이 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호학, 중세 역사학, 미학, 철학을 연구하던 '움베르토 에코'의 첫 번째 소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앞서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의 '희극론'이 등장하는 데 이는 현재 남아있진 않습니다. 많은 역사학자가 존재했었다고 추론할 뿐이지요. 다만 그 증거가 여럿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웃음은 우리에게 해악 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원로 수사 '호르헤'는 웃음을 강하게 부정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삶이 괴롭고 힘들어야 종교를 찾는다고 믿는 편협한 신앙심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반면 '바스커빌의 윌리엄'은 진보적인 입장으로 '웃음'을 '행복'하고 비슷하게 해석하며 인간 중심적인 사상으로 호르헤에게 대응하는 장면이 나오죠. 이 후기를 보는 여러분은 웃음이 없었던, 그래서 종교를 맹신했던 시대에 대해 해악이라 생각하시나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한 시, 일분일초도 웃으며 살고,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결과론적이지만 호르헤 수사가 진리라고 생각했던 종교관은 얼마지 않아 인간 재탄생, 인간 중심사상 '르네상스'가 불며 서서히 희미해져 갑니다. 14세기 르네상스로 시작된 근대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중세시대 맹신하던 종교관에서 아주 많이 멀어졌습니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중세 기독교 부패와 부정을 고발하면서 중세 사람들의 삶과 여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의 추악한 성매매와 인권유린, 마녀사냥을 꼬집기도 했으며, '아비뇽 유수'일어났던 당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교황 요한 22세의 '세속적이고 세습적인'면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장미의 이름>일까요. 영어로 'The Name of the Rose'라는 제목에서 장미를 뜻한 'Rose'가 눈에 띕니다. 이 의미에 대해 에코는 독자와 관람객의 몫이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아요. 장미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뜻하기도 하고, 아름답지만 위험한 여자라는 다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좌파나 인권이라는 뜻도 있으니 어느 게 맞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전 영화에 등장하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바스커빌의 윌리엄'이 부패한 교황청에 대응하는 면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면으로 볼 때 이 작품 제목의 장미는 '좌파'나 '인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바스커빌의 윌리엄'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종교를 믿는다 해도 편협하게 맹신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영화가 정말로 '멜크의 아드조'의 시선에서 경험한 실제 이야기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아드조가 50년이 지나 이 사건들에 대한 수기를 작성하면서 당시 사랑에 빠졌던 마을 여자가 얼마나 많이 보고 생각났을까요. 어쩌면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에서 등장하는 '장미'는 아름답고 위험했던 속세의 마지막 사랑, 그 여자를 의미했던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