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코르도바
혼자 하는 여행은
편하지만 외롭고
고독하지만 자유롭다
외로워서 좋은 여행
"유럽 여행하면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스페인 남부의 코르도바라는 곳이 제일 좋았어"
누가 물어올 때면 존댓말을 하는 사이든 편한 말을 하는 사이든 난 코르도바가 제일 좋았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거기가 어딨는 곳이야"라든지, "거기엔 뭐가 있어?"라고 물어보면 스페인 남쪽에 있는 이슬람풍의 도시이고, 세계 3대 이슬람 사원 '메스키타'가 있다고 대답하면 되는데 "왜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대답하기를 주저한다. 사실 난..., "코르도바가 외로워서 좋았어."
혼자 하는 여행은 혼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로망이겠으나 나처럼 외로움을 미친 듯이 타는 사람에게는 너무너무 부적절한 여행 방식이었다. 어지간하면 숙소에 짐 풀고 밥 한 끼 먹고, 하룻밤 자면 괜찮아져야 할 텐데, 식음전폐하고 무기력해지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내 스타일이니까.
사실, 중요한 건 마음입니다.
가뜩이나 외로움에 취해 헤롱 거리는 와중에, 2인실 숙소를 혼자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됐다. 고작 3일 머무를 숙소에 오면서 내가 나지막이 기대했던 건 최소한 '일회용 우정'이었다. 이와 중이라면 말 잘 통하는 한국사람이 아니라도 단지 그냥 눈 마주칠 수 있는 여행자를 만나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숙소 주인은 얄궂게도 "네가 다인실을 예약했지만 내가 서비스로 2인실을 혼자 쓰게 해 줄 거야"라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활짝 웃으며 친절한 말을 해주시는 숙소 주인에게 마음속으로 "아저씨 제발 그것만은.. "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지만 사실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아프리카 대륙'이 더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열대 기후에 야자수가 있고 아주 많이 덥다. 코르도바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40분 정도 걸었는데 초여름 햇빛과 돌로 된 길, 고장 나기 일보 직전 캐리어 때문에, 나라는 사람도 고장 날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구시가지 안에 깊숙이 있는 숙소를 못 찾아서 탈진 직전까지 갔었다. 옷은 이미 땀에 다 젖은 상태로 정신도 몽롱해지길래 한국에선 한 번도 안 하던 짓을 해버렸다. 코르도바 골목, 눈에 보이는 첫 번째 가게에 들어가 간절하게 속삭였다. "물... 물 좀 주세요"
다행히 천사 같은 아주머니가 곧바로 물을 한 잔 주셨고, 숙소 위치까지 알려주셨다. 영어도 잘 몰라서 여행할 때 "파던?"을 연신 외치는 나에게 스페인어로 말씀해주셨... 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건데 사람은 참 신기하게도 '눈'과 '손'덕분에 절박한 순간엔 마치 모국어 대화를 하는 듯 의사소통이 된다. 역시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마음인 건가...
"혼밥 했어요"
드디어 이번엔 식사를 할 차례다. 코르도바를 오기 전에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때 숙소에서 만났던 스페인 유학생이 알려준 식당에 갔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유학생은 여자였고, 약간 조용조용한 성격에다가 속이 깊은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이 식당을 소개해주면서 "마을 사람들만 아는 조용한 식당이에요"라고 했고, 뭐든 상관없다며 고맙다고 말하기 바빴다. 가보니까 정말로 조용한 식당이었다. 심지어 식당인지 모르고 지나칠 뻔할 정도로 조용한(?) 식당이었다. 식당 입구에 화분으로 장식된 파사드 디자인(가게 정면 보이는 모습)이 아기자기하고 예뻤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상업 시설은 역시 간판이 중요해"라며 들어간 식당.
메뉴는 유학생이 추천해준 대로 '새끼돼지 구이'였다. 코르도바가 시골이라 그런지 가격이 그리 비싸진 않았지만 아주 찔끔 나오는 것 같아서 속으로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이걸 누구 코에 붙여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스페인어를 할 줄도 모르고, 핸드폰을 꺼내서 굳이 번역하고 싶지도 않아서.. "네, 잘 먹겠습니다"
ps.
먹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요즘 동물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돼지라는 생명체를 인간이 배고프다고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딜레마에 괴롭다. 친구들은 모두 내가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란 걸 뻔히 아니까 감히 말도 못 꺼내겠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후로 1년 넘도록 돼지에 대해 슬픈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 '돼지'를 '고기'라고 부르지 못하겠다. 그리고 더군다나 새끼 돼지라니.... 어미 돼지는 얼마나 슬퍼했을까. 그게 '울부짖음'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사람들은 돼지를 단지 '꿀꿀거린다'생각하겠지. 암튼 사피엔스는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누군가와 같이 먹었다면 그저 맛있다며 사진 찍고 신나서 먹었겠지만, 혼자이기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혼밥'이라는 게 단지 '왕따놀이'라고 치부하거나 '폼 잡는다'라고만 생각했는데, 혼밥은 정말 의미 있는 행위였다.
유럽이지만 유럽이 아닌 곳
코르도바라는 곳은 유럽이지만 유럽이 아니다, 라는 이상한 말을 주로 하곤 한다. 현재는 스페인이라는 유럽 국가에 속해있지만 과거엔 '아랍'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정확히 1592년,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에 최종적으로 성공해서 아랍 사람들을 몰아내고 '유럽'에 다시 속하게 됐다. 물론 코르도바는 그 중간인 1236년 이미 회복됐지만, 서기 700년대부터 1200년대까지니까 거의 500년 가까이 아랍,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코르도바는 유럽이지만 아랍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코르도바에는 2015년, 2019년 이렇게 두 번 여행했는데 처음 갔을 땐 저 세 사람을 두고 "기독교 관련된 동상이며 마리아와 예수가 관련 있을 거야, 그런데 나머지 왕관 쓴 한 명은 누구지? 유다의 왕인가?" 이러고 있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며, 스페인 국토회복운동 '레콩키스타'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고 깊게 조사하고, 4년이 지나 다시 코르도바에 갔을 땐 저 세 사람이 왜 마주 서있는지, 그게 얼마나 역사적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장면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떠나는 항해의 허락을 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한편, 이 '알카사르'의 구조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은 고대 로마의 양식인 것 같으면서도 첨탑은 이슬람 양식이며, 내부 '물의 정원'은 물을 귀하게 여기는 이슬람 장식 요소이긴 했지만 또 반듯하게 깎아놓은 정원의 나무들은 '프랑스식 정원'과 비슷했다. 알고 보니까 최초엔 로마 시대 지어졌다가, 500년간 이슬람의 지배 아래에선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1592년 가톨릭의 재점령 후에는 유럽식으로 리모델링되었기 때문. 따져보면 1592년부터 지금까지가 500년이 채 안되니까, 이슬람의 향기가 더 짙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외로움이 엄습하는 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땐 혼자이고 싶다. 여행, 그 좋은 것도 혼자 하고 싶었다. 이렇게 외로울 줄 알면서도 혼자 하고 싶었다. 특별히 주변 사람들과 문제가 있어서 도피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사람들을 피해 온 피신처가 코르도바가 된 셈이다.
혼자 있으면 특별히 신날 게 딱히 없다. 날도 더운데 혼자 실실 거릴일은 애초에 없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아주 감성적으로 변하게도 되지만, 위험할 정도로 가라앉다가 급기야 울적해지고 답답해지는 순간이 있다. 최근 4년간 '심리학'에 대해 다양한 과목의 강의를 듣고 있지만 이 '울적해진다'가 꼭 '우울증이다'라고 병적으로 단언할 수도 없다. 그게 꼭 잘못된 것은 사실 아니다. 인간이면 모두 우울함을 느끼니까.
코르도바에서는 많은 외로움을 느꼈다. 느끼면서도 혼자 밥도 잘 먹고, 잘도 돌아다니고, 결국 잠이 들었고 여지없이 아침은 밝아왔다. 보통 이런 것 같다. 힘들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고, 지금에서는 이 추억을 즐겁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닿았다.
코르도바 도착했을 때부터 육체와 정신적으로 힘들었으니까 '밉다'라는 감정이 드는 여행지이지만,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로 기억에 남는다. 코르도바의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로워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