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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Apr 13. 2020

마드리드에서 만난 돈키호테

스페인 마드리드


우리는 왜 잠을 자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데,
꿈을 꾸지 않고서는 살 수 있단 말인가!

-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中


   



국어책도 다 못 읽은 초등학생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태어나서 처음 다 읽은 책이,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다. 국어책도 아니고 만화책도 아니고 소설 돈키호테. 어쩌면 내가 스페인을 유독 좋아하는 까닭은 바로 어릴 적 읽은 <돈키호테>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자신의 의지가 아녔고, 엄마가 주는 벌칙 때문에 읽은 책)


공부를 지지리 못하면서도 저녁 먹고 나가 노느라 바빴던 초등학생에게 엄마는 "밤 8시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12시까지 책 읽게 할 거야"라고 하셨지만 본업이 '놀기'인 초등학생은 역시나 퇴근 같은 귀가가 매번 늦어졌고 단지 '위협'일 것 같던 엄마의 엄포는 현실이 됐다. 구제의 눈길을 보내봤지만 소용없었다. 늘 해결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셨던 아빠마저 엄마의 어깨 뒤에서 "미안하다"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자리를 피하셨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돈키호테>


아직도 가끔 '돈키호테'를 엎드려 읽던 초등학생 때 내 모습과 중간중간 등장하던 흑백 삽화의 장면이 생각난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 어머니는 옆에 계시지 않게 됐다. 이상하게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 <돈키호테>가 생각나고, 그다음은 엄마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돈키호테를 보러 스페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왠지 스페인에 가는 게 설레기도 하고, 그리운 당신을 만나러 가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돈키호테를 만나러 가는 길
마드리드


돈키호테 데 라만차(Don Quijote de La mancha)


우리나라로 치면 마드리드가 '서울'이며, 라만차 지방은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왔지만, 사실 돈키호테를 마주하려면 '마드리드'가 아니라 '라만차'지방으로 갔어야 했다. 소설 속 배경지가 "라만차 지방 어딘가.."라고 소개되기 때문이다. '데(de)'가 영어 '오브(of)'에 해당하니까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은 '라만차 지방의 기사'를 뜻한다.


마드리드에 유명한 '그랑비아'거리를 지나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ńa)'에 가면 돈키호테를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세비야에도 같은 이름의 유명한 광장이 있어서 좀 헷갈리는데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파냐 광장은 동명의 지하철 역을 찾아가면 편하다.



돈키호테를 만나다
돈키호테와 산초, 그 뒤에 앉아있는 돈키호테 작가


죽음을 불사하며 휴머니즘을 외치던 돈, 키호테!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위원장이 미래통합당 대표에게 "돈키호테처럼 망상에 빠져있다"며 비하한 적 있었다. 통합당이 '정권 심판, 대통령 탄핵'을 공략으로 내세우자 민주당에서 통합당 주요 인사들에게 돈키호테, 산초를 비유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위대한 문학이 정치적으로 풍자돼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 돈키호테를 "망상에 빠져있다"라는 메타포로 사용됐다는 데 언짢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돈키호테는 단지 '멍청하고 허황된'인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로서는 돈키호테를 보러 스페인까지 다녀왔는데... "제가 겨우 망상에 빠져있는 사람 보기 위해 스페인까지 갔겠습니까. 돈키호테의 진정한 가치는 '이상의 열정'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드디어 20년 동안 상상했던 스페인 돈키호테 동상 앞에 서게 됐다. 왠지 눈물이 다 날 것 같이 기뻤다. 솔직히 당시엔 그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으나, 마치 '성지 순례'한 것처럼 '돈키호테 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돼서 지금도 두고두고 기쁘다.


사실 떠나기 전엔 어릴 적 '엄마'가 많이 생각나서 '이산가족상봉'이나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마음속으로 눈물 한 바가지 흘릴 각오하고 떠났는데 막상 돈키호테 동상 앞에 서니 적당히 숙연해질 뿐, 많이 슬프진 않았다. 아마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 때문이겠으며, 이미 오래된 슬픔이라서 무뎌진 게 된 것 같은데... 어쩌면 이게 더 나은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계속 슬퍼하면 엄마도 저기 어딘가에서 슬퍼할 수 있으니까...



<돈키호테>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앉아있다
돈키호테와 산초 동상


1. 전사의 이름으로 용감하라 명한다.

2.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의로울 것을 명한다.

3. 어머니의 이름으로 무고한 자를 지킬 것을 명한다.


인기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금발의 기사 '제이미 라니스터'가 남자만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기존 금기를 깨고 용맹한 여전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릴 때 했던 말이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중세시대'를 표방하지만 기사도에 대한 정신은 '돈키호테'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신념'과 누군가를 지켜주겠다는 '휴머니즘'이 없었다면 돈키호테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돈키호테'라는 소설 속 주인공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작품을 집필한 '미겔 데 세르반테스'도 대단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 처절한 현실에서 <돈키호테>를 완성하다니. 어쩌면 중세 기사도 정신과, 반드시 이야기를 완성해 내겠다는 작가의 '탈고 신념'은 그렇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둘 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꿈이에요"


<돈키호테>를 읽고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


어쩌면 내가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아니었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작가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나보다 멋지고, 인내심이 좋고, 집필 능력이 우수하다고 인정은 하지만, 여러 가지 소재를 모아서 주제를 정하고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은 나도 못지않다며 자신감을 갖기도 한다. 국어책을 채, 다 못 읽었지만 <돈키호테>만큼은 완독 할 수 있었던 초등학생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작가'를 꿈꾸고 있다.


아마 이 꿈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작가를 꿈꿔왔으나 아직 출판에 성공하진 못했으니까. 그래도 난 여전히 '자신감'을 갖고 쭉 '꿈'을 꾸고 있다. 만약 안되더라도 이렇게 꿈꾸며 살아갈 예정이다. 갑자기 돈키호테가 소설 속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왜 잠을 자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데, 꿈을 꾸지 않고서는 살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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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엄마의 벌칙'으로 인해 돈키호테를 보러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가게 됐다. 그리고 직접 닿진 않았지만 결국 엄마를 실제로 만나고 돌아온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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