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로 : 인천공항 - 파리공항 - 마드리드공항 - 숙소
7월 1일이 무슨 날이었더라..
고작 1년밖에 안 지났는데 2019년 7월 1일이 아주 먼 옛날 같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날짜를 봤는데 딱 1년 전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날이라는 게 기억나자마자 그때로 스윕해 들어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엔 아예 커피를 한잔 타서 벽에 기대어 '작년의 오늘'을 집중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네 번째 유럽여행. 이번 스페인 여행 일정은 거의 대부분 한번 가본 도시를 재방문했었다. 그때와 달라진 거라고는 더 좋은 카메라를 챙겼으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떠났다는 점과, 그때는 혼자였지만 이번엔 멋진 친구 셋과 함께 한다는 정도. 나 빼고 세명 다 여자라 예쁘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셋 다 '멋진 쪽'에 가까웠다. 한 명은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지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고 터프했다. 또 한 명은 띠 동갑에 가까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날 골탕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했고, 수완이 좋은 친구였다. 나이차를 떠나서 나는 이런 사람을 존경한다. 또 한 명은 완전히 나와 상극이라서 정말 가기 전부터 함께 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와 잘 안 맞을 뿐이지 누군가에겐 든든하고 의리 있는 친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는 네 명이 함께 스페인 여행을 하기로 했다.
4월부터 꼬박 3개월간 스페인 여행을 기획했고(사실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배움의 목적을 갖고 떠나는 '탐방'이었다), 7월 1일 아침 네 명이 인천공항 2 터미널에 집결하기로 했다. 수원에서 새벽같이 공항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뭔가 이것저것 빠뜨린 것 같은 찝찝함을 느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봤는데 첫 번째는 밥통 뚜껑을 잘 안 닫고 온 것 같았다. 우리 집 밥통은 '철컥'소리가 날 때까지 꾹 눌러서 레버를 돌려야 하는데, 그걸 안 하는 노란 밥이 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아침에 씻고 보일러를 안 끄고 나온 것 같다. 혹시라도 자동차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끼익'소리 날 때까지 안 당겨 놓았으면 어쩌지 싶다가도 이 모두 괜한 걱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매번 유럽을 떠날 때 일부러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설레어서 그런가. 걱정하던 차에 잠들었고, 일어나 보니 인천공항에 잘 도착했고 동행하는 친구들 셋이 왔고 입국 수속을 밟고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파리 공항까지 12시간의 비행, 네 번째 유럽여행. 매번 유럽여행을 할 때마다 대한항공을 이용하거나 에어프랑스를 이용하는데 그 이유는 '와인'에 있다. 에어프랑스를 타면 양질의 와인을 충분히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유럽여행을 더 즐겁게 한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비행기에서 와인 두어 잔을 먹으면 알딸딸해지는 기분으로 창 밖에 뭉쳐진 구름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뭐랄까, 예전엔 신만 볼 수 있었던 뷰를 이제는 사람인 나도 할 수 있다는 거룩함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이러다 신이 건방지다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 바빌로니아 '바벨탑'처럼 신이 내가 공들여 놓은 탑들을 무너뜨리진 않을까 걱정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 와인에 취해서.
파리 환승공항에서 연착으로 인해 5시간을 대기했다. 그러니까 인천공항에서 마드리드를 직항으로 가면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이번에 처음 환승 티켓을 끊어서 총 17시간 걸린 것이다. 자리는 10만 원 더 주고 이코노미 중에서 좋은 좌석으로 따로 선택했지만 무의미했다. 허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파리 공항'을 실컷 돌아다녀 본 것에는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네 번의 유럽여행 중 유일하게 이번만 파리를 가지 않는 경로였는데, 파리에서 환승을 하다 보니 샹젤리제 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라뒤레' 마카롱도 구경할 수 있었다. 공항을 돌아다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북미회담으로 만난 게 1면으로 실려져 있는 걸 봤다. 그래서 1년 전 이 날이 더 또렷하게 기억난다.
늦은 밤 에스파냐 광장에 도착했고, 숙소를 한 번에 찾아 들어갔다. 내일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톨레도-코르도바-그라나다-네르하-프리힐리아나-세비야를 일행들과 함께 여행한 후 나 혼자 남아서 포르투갈을 여행하게 된다. 포르투갈은 처음 여행하게 되는 거고, 스페인은 이번에 '톨레도' 빼고 모두 두 번째 방문이다. 나는 솔직히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톨레도처럼 처음 가보는 곳보다 '두 번째 방문하는 도시'들이 더 궁금하다. 왠지 반가울 것 같다. 그때의 외로움과 현재의 즐거움을 비교하면서... 어떤 여행을 했는지 1년이 지나서 이제야 이 좋았던 여행을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