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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Jul 02. 2020

마드리드 여행

여행경로 : 그랑비아 - 프라도 미술관 - 시벨레스 광장 - 저녁식사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이 있는 풍경

요하힘 파티니르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이 있는 풍경>, 1520-1524 추정


미술을 삶의 기본적인 요소가 아닌, 추가적 사치의 요소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나는 솔직히 미술이란 분야가 인간의 '생존 영역'이라고 믿고 있는 편이다. 돌도끼를 뾰족하게 깎아 사용한 것은 식사를 하기 위함이었고, 지붕을 세모 낳게 만드는 것은 비나 눈이 쓸려 내려가게 하기 위함이고, 성벽을 높이 쌓는 건 보기 좋으라고 한 게 아니라 성 안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생존 영역'과는 거리가 영 멀 것 같은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이 있는 풍경>이라는 그림도 인간의 삶과 분명 연관이 있었다. 양쪽에 천당과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여러 가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했고 회개하며 살았다. 종교가 아니었다면... 아마 서로 다른 종교의 교리로 인해 크고 작은 전쟁을 더 많이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생존과 직결됐을 테니, 이 그림 한 점에는 인간의 생존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즐기고 나와 까야오 역으로 향했다. 여기는 4년 전 처음 왔었던 곳이었는데 'CALLAO'라고 쓰여 있길래, 당연히 '칼라오'라고 읽었는데 어떤 스페인 유학생이 이곳은 '까야오'라고 읽는다고 알려주면서 스페인어에서 알파벳 'LLA'라고 쓰여있으면 '야'라고 발음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덧붙여줬다. 그래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세빌리아'는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를 뜻한다.


애들이랑 사진 찍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마 하나 찾았네. 그리고 이내 고맙게 느껴진다. 거의 혼자 여행하므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여행하는지 정작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우리, 뒤에 있는 건축물의 모습과 맑은 날 그랑비아 거리가 훤히 나와서 보기 좋다. 다시 이 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다시 돌아가면 더 여행을 잘했겠지?



솔 광장에서 스페인 대의원(CONGRESO DE LOS DIPUTADOS)을 지나 프라도에 도착했다. 줄이 꽤 길어서 얼른 서있어야 했지만 일행이 있다 보니까 두 명은 줄을 서서 네 명분 티켓을 구매하고, 두 명은 물을 사 오고, 그다음에 나는 주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걸 혼자 오면 혼자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번에 멋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건 여럿 있음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함께 이기에 역할 분담하며 좀 더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혼자는 자유롭지만 외롭고, 일행히 함께 하면 가끔 스트레스받지만 마음의 안정감이 생긴다. 여행이란 게 마음이 안정적이어야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하는 데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과 라파엘로의 <추기경>.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처럼 유명한 그림이 많지만 난 <스틱스 강을 건너는 카론이 있는 풍경과> 위 두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세 점의 그림만 가지고도 밤새도록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며칠 동안이나 이 그림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하고, 상상했었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이라는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를 리뷰하며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때 언급한 바 있었는데, 죽음 뒤에 올 심판 때문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강조했었다. 중세의 사람들은 현대의 사람들보다 수명이 짧았으니까 지금보다 심리적으로 죽음의 지점이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며, 흑사병이라도 돌면 그게 당장 내일이라도 될 수 있었을 테니 지은 죄를 회개하고 천국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을 하나님께 해야만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 실제로 중세의 사람들은 로마에 사는 교황과 유럽 전 지역에 배치된 대주교들만이 죄를 사하여 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라파엘로의 <추기경>을 보면 당시 교황, 대주교 등과 함께 함께 추기경 같은 경우도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부패하며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라파엘로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이전에는 오직 신만 초상화로 담을 수 있었는데, 라파엘로의 시대부터 교황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교황이 신의 세력과 대등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교회가 부패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됐다. 어쨌든 추기경이 저 정도의 당찬 눈빛과 고급 옷감으로 된 망토를 걸쳤다면 분명 당시의 '실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은 사실 '추기경'이라고 추측될 뿐, 라파엘로 본인이거나 당시의 교황을 그렸다는 설도 존재한다. 난 개인적으로 추기경 보단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쨌든 이처럼 겨우 2-3개의 그림을 보고도 당시의 종교관이나 삶의 양식, 삶의 질과 권력관계를 볼 수 있으니까 미술작품을 관람한다는 게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마드리드의 첫날 일정은 이처럼 미술 관람을 실컷 하는 일이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이튿날 일정은 아침에 프라도 미술관에 걸어가서 1만 5천 점이나 되는 그림을 보다가 중간에 밥을 먹고, 시벨레스 광장에 갔다가 저녁식사를 먹은 게 다였다. 하루를 온전히 미술관에서 보낸 것 같다. 다음날은 마드리드에서 얼마지 않은 '톨레도'에 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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