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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Jul 03. 2020

톨레도 여행

여행경로 : 소코도베르 광장 - 전망대 - 톨레도 대성당

오래전, 오랫동안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



톨레도는 어쩌면 '수도' 보다는 '요새'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옛날 로마가 스페인을 점령한 후 이 곳을 '톨레툼(Toletum)'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참고 견디다'라는 뜻이었다. 삼 면이 강으로 둘러싸여서 반드시 다리를 건너서 들어올 수 있었고, 북쪽은 언덕 지형이었기 때문에 옛날부터 톨레도는 '천혜의 요새' 역할을 해왔다. 로마인에서 서고트인, 이슬람인으로 지배계급이 바뀌었지만 결국 다시 가톨릭을 믿는 서고트인이 주인이 바뀌며 지금은 다양한 종교 문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톨레도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터미널, 플라자 엘립티카 터미널. 4년 전, 마드리드 '루까스의 집' 민박 사장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 톨레도를 왜 안가?" 이 짧은 질문 속엔 "톨레도는 정말 좋은 곳이야, 역사가 깊은 곳이지, 아마 넌 이 곳을 가면 엄청난 여행의 기쁨에 매료될 거야"라는 정도의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땐 가지 않았다. 플라자 엘립티카 터미널 앞에서 몇 년 전 아저씨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드디어 가요"



2019년 봄부터 초겨울까지 한참 '고속도로 표지판 디자인' 관련해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를 가는 1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창 밖의 표지판들을 자세히 봤다. 확실히 유럽의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달리 시야를 방해하는 화려한 표지판과 광고판이 비교적 적었다. 스페인이 중부가 워낙 황량하고 평야가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고속도로는 시야에 걸리는 게 별로 없어서 눈이 편했다. 우리나라는 길거리에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등 눈을 힘들게 하는 강렬한 색이 많은데도 운전을 잘하는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비사그라 문(Puerta Nueva de Bisagra)


톨레도에 도착해서 버스 터미널. 스페인은 거의 '알사(alsa)' 회사의 버스가 많기 때문에 구글 지도에는 'ALSA'라고만 표기되는 경우도 많았다. 톨레도의 버스 터미널은 오래된 요새의 도시답게 최근에 지었음에도 오래된 느낌을 내기 위해 건물 외벽에 '부식 철판'을 사용해서 지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은 천 년 전 지은 건축물 사이의 골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터미널에서 소코베도르 광장까지 걷기로 했다. 머리카락을 금세 푸석하게 만드는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로 1킬로미터 정도 걸었는데, 길이는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언덕이 가팔라서 고생했다. 더군다나 가는 길에 길을 잃고 언덕을 올랐다 내렸다는 와중에 동행하는 친구들은 각자 통화를 하고 있는 바람에 혼자 길 찾으랴 중간중간 사진 남기랴 고생했던 기억이 남는다. 힘들다고 짜증 내는 편이 아니고, 내 힘든 걸 남 탓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뭐 그렇게 기분 나쁘게 말하진 않았던 것 같다. 눈치 빠른 여장부 Y가 적당히 기분을 맞춰주길래 나도 더 이상 서운함을 언급하진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톨레도를 들어가는 입구 '비사그라 문' 앞에서 한참 서서 거대한 장식이 새겨진 입구를 바라봤다. 왠지 기관총 끄트머리처럼 생긴 양쪽의 원기둥, 그리고 뭔가 너무 스케일이 커서 주변과는 안 어울리는 돌에 새겨진 심벌. 나중에 알아보니 원래 입구는 1000년 전쯤 지어졌고, 이 문은 16세기에 새로 지었는데 16세기라고 해봤자 지금보다 500년 전인데 '누에바(Nueva)'라고 불리는 게 아리송한 일이었다. 누에바는 영어로 'New'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새로운 문'이다. 500년 전에 '새로운 문'이었다는 뜻이다.



겨우 닿은 소코도베르 광장. 사실 뭐 여길 찾다가 길을 잃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톨레도라는 도시는 그렇게 크지 않고, 어디서 올라오든 그 꼭대기에 소코도베르 광장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시원하게 로컬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식사를 하고 '소코 트렌'에 올라탔다. 소코 트렌은 일종의 '미니 관광 열차'였는데, 이걸 타면 톨레도의 언덕길을 누비다 비사그라문을 통해 톨레도 시내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이 곳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소코 트렌의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 때, 피부부터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에어컨 바람과 비교하자면 더 낮은 온도가 아니었지만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이유가 뭐였을까 생각해봤는데... 지금에서야 답을 찾은 것 같다. "여행이라서"


톨레도 전망대
산 마르코 다리
톨레도 대성당


예전에 마드리드에 일주일간 있으면서 굳이 톨레도에 갈 생각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곳을 잘 몰라서 인 것 같다. 2015년 스페인을 한 달 여행하고 나서야 이 곳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디자인을 전공했으니까 이곳의 건축양식, 디자인 양식, 예술품들을 공부하다가 그 시대 배경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톨레도의 주인이 로마인에서 기독교를 믿는 서고트인, 다시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인이 300년간 지배하다 서고트인에 재탈환된 갖가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드리드를 여행했던 2015년에 못 갔다는 아쉬움을 안은 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깝게 사랑을 놓치고 4년이라는 시간이었다면 그 사람을 다시 찾았을 때 옆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톨레도'는 변치 않고 이 곳에 있어줬고, 그래서 한참 지났어도 이곳에 왔을 때 그때 모습 그대로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2019년도에 봤던 톨레도는 1000년 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톨레도 대성당'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건 다음 기회에 쓰던가 아니면 출간할 <여행고픔증>에 실기로 한다.


  

안녕,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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