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로 :
스페인에서 800년, 아랍인들 떠나다
아랍인들이 그라나다를 떠난다는 것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정도를 넘어선 이별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고통'에 가까운 아픔. 서기 711년 스페인을 침략해 거의 모든 영토를 점령한 후, 1492년까지 약 800년간 스페인에서 도시 국가 체제로 분열되다가 그나마 딱 하나 남은 왕국이 그라나다였다. 그라나다 왕국의 걸작이 바로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었으며, 그 안에 '나스르 궁전'이 가장 아름답다. 아랍의 마지막 왕 압둘라는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알함브라 궁전을 넘겨주고 목숨만 부지한 채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는 마지막으로 알함브라를 돌아보며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라나다를 잃는 것은 괜찮지만 알함브라를 잃은 것은 원통하다"
가판대에 잡화점이 늘어선 터미널, 우리나라에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고 세상 어느 곳을 가도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 사는 건 비행기로 12시간 거리 떨어진 여기도 똑같구나"
우리는 4명이 여행했는데, 그래서 주로 '쿼드러플 룸'이라는 곳을 예약했다. 4인이라는 뜻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콰트로(꽈뜨로)'라고 외치면 이런 방을 준다. 그런데 일행이 여자 셋과 나. 예전 스페인 여행할 때도 외국인 여자들과 같은 방을 쓰고, 남미 여자와 침대 위아래를 써본 적 있기 때문에 나는 괜찮았는데 애들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미리 다 사진을 보여주고, 구조를 설명하면서 이런 방에서 함께 지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같이 숙소를 쓰다 보니 오히려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 첫 번째는 옷을 갈아입는 거였다. 우리 넷다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경우는 당연히 내가 화장실에서 갈아입으면 됐지만, 누구 한 명이 갈아입어도 난 화장실에 가서 문 닫고 나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갈아입는 친구가 한 명이라면 그 친구가 화장실 가서 갈아입어도 될 텐데, 내가 화장실로 피해 주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불편함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내게 가장 불만이 많았던 막내는 두 번이나 날 1층 침대로 양보해줬다. 가위바위보로 1층과 2층 자리를 정했는데 그 친구가 계속 이겼는데, 경로우대(?)를... ㅎㅎ
우리는 당연히 무조건 알함브라 궁전으로 향했다. 나가서 음료수와 물을 사고, 미니 버스를 타고 매표소 앞에 내려서 미리 예약해둔 표를 받아 먼저 '헤네랄 레페'부터 관람했다. 알함브라 궁전은 헤네랄 레페, 나스르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나스르 궁전이 제일 유명하고,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알함브라 궁전 안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건축물이며 알카사바는 군사 요새를 맡고 있어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나스르 궁전 때문에 상대적으로 헤네랄 레페라는 곳은 조명받지 못하는데, 이 곳이 알함브라 궁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을 구성하는 성과 요새는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헤네랄 레페가 지어지고 몇 백 년에 걸쳐 점차 시설을 증가해왔는데, 지금은 그 모두가 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동시대에 지어졌을 거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건축, 디자인, 기술의 걸작이라 불리는 나스르 궁전보다 이 곳의 꽃과 물이 좋았다.
함께 간 친구들에게 이 곳의 이야기를 몇 가지 해줬더니 아주 재미있어했다. 하나는 여기에 흐르는 모든 물이 '시에라 네바다' 만년설 산맥이라는 곳에서 끌어온 물이 돌고 돌아 그라나다 시내로 간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왕비와 바람을 피운 귀족의 함께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사이프러스 나무' 이야기였다. 그라나다가 너무 더운데 어떻게 만년설의 '시에라 네바다 산'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나도 이 의문을 많이 가졌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라나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높은 고도 때문에 눈이 녹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과, 그 물을 알함브라 궁전으로 끌어들인 아랍인들의 지혜 때문에 그라나다 사는 옛사람들이 물이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정도가 아니라 난 이 사실이 거의 신비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번에 여기를 두 번째 온 거였는데, 처음 왔을 때 알함브라 궁전 내부에는 물의 정원이 왜 이렇게 많을까 궁금했었는데 다시 오기까지 공부해보고 와서 다시 보니까 정말 신기하고 직접 내가 이 앞에 마주 서있단 사실에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이 것들은 거의 1000년 전 기술로 제작된 것들이었으니까.
나스르 궁전은 뭐 '경이로움'에 가까우니까. 따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진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스페인과 안달루시아(아랍이 색채가 진한 스페인 남부 지방)에 대한 책을 스무 권 가까이 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건축과 공간 디자인, 시각디자인, 미술치료를 전공해왔기 때문에 이 안에서 정말 무한한 상상을 하며 기쁘게 돌아다녔다.
일단 '나스르 궁전'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아랍인이 스페인에 들어왔던 것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아랍인, 무어인, 이슬람, 무슬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 캘트인, 서고트인이 사는 스페인에 처음 발을 들인 건 711년. 스페인에 강력한 중앙집권 왕국을 만들어서 그 수도로 삼은 게 어제 여행했던 '코르도바'이다. 지금은 소도시로 취급받지만 이후 300년간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였다. 서기 1000년 이후엔 이슬람 점령 지역들이 10-20개 도시 국가로 분열되었고 약해진 틈을 타 서고트인이 다시 재점령을 몇 백 년간 진행해서 마지막 남은 곳이 이 그라나다였다. 이걸 '타이파 국가의 분열'이라고 일컫는데, 쉽게 말해서 세비야, 그라나다, 코르도바가 각각 작은 도시국가 체제로 분리되어 멸망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이슬람 문화를 갖고 있던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마지막으로 그라나다에 다 모였기 때문에 이런 걸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많은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난 이런 맥락이 있을 거라 확신에 가깝게 믿고 있다.
나스르 궁전 안의 화려한 장식들은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기도, 레이스 장식 패턴과 동굴 구조를 연출한 것 같기도 한데, 이를 모카라베 또는 아라베스크 양식이라 부른다. 둘 다 비슷한 뜻이라 굳이 난 구별해서 따로 부르진 않지만 어쨌든 유럽의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양식과 비교하면 독특한 문양이다. 특히 얇은 기둥이 많이 있는 것을 '다발 기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중간중간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큰 기둥 몇 개 보다는 작은 기둥을 많이 둬서 그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랍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를 연출한 거라는 말도 있다. 둘 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코르도바에서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에 그라나다 도착. 미리 예약해둔 표로 헤네랄 레페부터 나스르 궁전까지. 이렇게 급격한 스케줄의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깨닫는 것들은 당연히 많았고, 나보다 여행 기간이 짧은 친구들을 위해 제한된 시간 내 많은 곳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있었다. 나스르 궁전이 마지막 코스였기 때문에 이 곳에서 석양이 질 때까지 머물러 있다가 다음날 저녁 '알바이신 지구'를 올라가 알함브라 궁전 전체 야경을 관람했다.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