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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Jul 11. 2020

세비야 여행 2

여행경로 : 과달키비르 강 - 누에바 광장 - 산타크루스 지구

군중 속의 고독
- 사회학자 리스먼


처음


넷이서 왔지만, 혼자서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누구나 이런 시간이 필요하고, 나는 이런 시간이 특히 유익해서였다. 

2019년 7월 8일, 넷이서 함께 하는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던 세비야에서 세 번의 '혼자'를 즐겼다. 첫 번째는 늘 그랬듯 내가 먼저 일어나서 씻고, 혼자 나가서 아침햇살을 받으며 사진을 찍는 거였고 두 번째 혼자는 여자 셋이 쇼핑을 할 때 나는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새벽 버스를 탈 때까지 애들이 눈 붙일 때 나는 나가서 와인을 마시는 것이었다. 

내일은 일행과 헤어지고 혼자 여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혼자'를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성공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억에 남는 풍경들과 음식들, 추억이니까.




첫 번째 혼자, 과달키비르 강변



세비야에서 온전히 하루를 꽉 채워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날, 혼자 아침 산책을 했다. 늘 내가 한 시간 정도 먼저 일어나서 준비한다는 점, 세 명의 여자들이 외출 준비를 하는 시간은 꽤 길다는 점을 활용해서 이미 코르도바에서 한 번 혼자 '아침 산책'을 했다. 코르도바에서 아침 산책은 조깅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세비야는 코르도바에 비해 대도시였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제일 먼저는 '세비야 버스 터미널'에 갔다. 하루를 보내고 새벽 1시에 마드리드로 가는 7시간짜리 심야버스를 예약했는데, 이따 일행과 함께 왔을 때 헤매지 않으려고 미리 답사했다. 내가 가장 연장자고, 혼자 남자기 때문에 여행하는 내내 일행이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미리 교통편을 확인해왔다. 이전에 혼자 세비야에 왔을 때도 숙소에 짐을 두고 다음 날 탈 버스 게이트를 전날 확인했었다. 거리는 버스를 타야 하는지, 버스 정류장은 어디 있는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지, 캐리어를 끌고 가도 위험하거나 힘들진 않을지 미리 확인했다.


이런 성격이기 때문에 남들하고 있으면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난 배려해주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임무고, 내 역할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땐 상대적으로 편하다. '나 자신만' 신경 쓰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혼자 아침 산책을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혼자, 누에바 광장 쇼핑 거리



내친김에 점심밥도 혼자 먹어보기로 했다. (일행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ㅎㅎ) 먼저 아침 산책을 한 후 세비야 대성당으로 입장해서 혼자 기도를 꽤 오래 했고, 고딕 성당에 관련 한 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이미 다 읽은 책인데 기억하지 못할 정보들이 많아서 가지고 왔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세계문화유산 '세비야 대성당'안에서 읽을 줄 몰랐는데, 애들이 좀 늦는 바람에 2시간 가까이 성당 안에서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며 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고, 지금 생각해도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네 명이 모두 동의하는 여행루트를 짜기 힘들었다. 이 여행 자체를 내가 구상하고 일행들에게 제안했기 때문에 내가 경로, 일정, 비용, 숙박, 심지어 식당의 메뉴까지 내가 골라놓은 것들이 많았다. 나는 혼자서 여기를 이미 여행해봤기에 모든 일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었다. 신나게 안내를 하고자 왔지만 가끔 나도 티 안내고 혼자 속으로 힘들 때 많았다. 가장 힘든 건 세 명의 여자 취향을 모두 맞춰 줄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반대로 일행들도 각자 하고 싶은 로망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점심을 혼자 먹게 됐다. 오전에 대성당, 오후에 플라멩코 공연 관람 때만 함께 하고 그 사이에 애들이랑 세비야 누에바 광장 지나서 쇼핑의 거리에 데려다주고 나도 나름대로 쇼핑과 식사를 했다. 일행들은 유럽여행이 처음이라 스페인 음식이 입에 안 맞는지 한식당과 일식집을 계속 다니는 바람에 못 먹었던 '해산물 빠에야'를 드디어 먹었다. 스페인 전통 식당에서 타파스와 맥주도 곁들이며. ^^




세 번째 혼자, 산타크루스 지구 - 스페인 광장 야경



세비야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한 곳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여행한 탓에 모두 지쳤으므로 플라멩코 공연 관람 후엔 숙소에 가서 쉬고 있다가 못내 아쉬워서 혼자 또 나오게 됐다. 이로써 오늘만 '세 번째 혼자'였다. 이 정도 되면 완벽하게 '혼자를 즐겼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년 전에 세비야 호스텔에서 만난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생각났다. 남자 한 명은 스페인 남부, 말라가 부터 함께한 동생이었고, 남녀 둘은 친구였는데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남녀 둘 중에 직업이 요리사라는 남자애한테 미안한 게 하나 기억났다. 취식 가능한 숙소라 그 친구가 스파게티를 해줬는데 너무 맛있어서 넷이 산타크루스 지구까지 갔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스파게티를 먹으러 다시 숙소를 돌아왔던 기억.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요리를 피해 스페인까지 왔는데 나 때문에 여기서도 요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너무 미안하다. 그 친구를 생각하며 산타크루스를 걸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혼자 밥을 먹었다. 시원한 와인에, 스페인식 오징어 튀김, 멸치 튀김을 맛있게. 연락처는커녕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를 언젠가 만난다면 맛집 데려가서 밥 사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실컷도 걸었다. 핸드폰을 안 가지고 왔는데 한 3시간을 걷고 나니까 왠지 불안해졌다. 시간도 모르겠고, 가서 샤워를 하고 터미널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너무 멀리 와버려서 구글 지도 없이 다시 숙소를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보고 나서 촉박하다는 사실이 인지됐고, 스페인 광장을 실컷 보고 '카르멘'에 나왔던 세비야 대학교 앞으로, 그리고 세비야 대성당을 지나서, 누에바 광장, 그리고 낮에 다녔던 거의 모든 루트를 지나 아는 길로만 해서 숙소에 잘 도착했다. 이로써 세비야 여행이 끝났다.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을까? 두 번이나 왔으니까 이제 또 안 오겠지..? 하면서 아쉬움 남기며 마드리드행 심야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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