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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Sep 14. 2021

즐겁다면 모두 재즈겠지

재즈에 관하여

처음 재즈를 접한 건 Sound Providers의 The Field라는 곡을 통해서였다. 정확히는 재즈힙합이었는데, 이 곡이 너무 좋았고, 그때 만나던 애인도 내 소개로 이 곡을 좋아하게 되어 한동안 애인과 나의 주제곡은 The Field였다. 그 애인과는 끝났지만 재즈에 대한 관심은 방향을 거두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년 뒤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갔다. 우리나라에 사는 히피들이 다 여기 모였을까 싶을 정도로 자유롭고 여유로운 공기가 흘렀다. 그곳에서 장윤주, 10cm, 미카, 스윗소로우,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파로브 스텔라, 제프 버넷 등의 공연을 라이브로 보았다. 분홍 팔찌를 차고, 어떤 공연은 잔디에 앉아서, 어떤 공연은 무대 바로 앞 스탠딩에서, 어떤 공연은 돌계단에 앉아서 가수의 찡그리는 미간이 보일 만큼 가까이서 보았다. 실제로 그들의 장르가 재즈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재즈는 태도였다. 오로지 그 순간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자유롭게 내보이는 태도. 나는 재즈를 그렇게 알아갔다.


재즈는 온전히 자신의 영혼을 발산하는 태도 자체이면서도 폐쇄적인 장르가 아니었다. 재즈 공연을 보면 항상 안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있었다. 색소폰을 불 때에 부풀어지는 양 볼, 잔뜩 좁혀지는 미간, 감은 눈, 적당한 템포로 흘러가는 손가락, 가득 메우고 팽창하는 악기 소리, 관객들의 휘파람, 흔들거리는 어깨의 하모니가 언제나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공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안식과 여유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재즈는 거짓이나 기만일 수가 없다. 나는 모두가 무장해제되어 진실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재즈만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할 만큼 내가 가 본 재즈 공연이 모두 그래 왔다. 한 꺼풀 벗기면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말랑해졌다. 말랑한 사람들은 걷다가도 춤을 춘다. 손을 흔들고, 다리를 살랑거리고, 몸으로 곡선을 만들고. 그런 몸짓에서는 어떤 회의나 절망이나 악의를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그 영혼은 연분홍의 솜사탕 색으로 된 것 같다.


재즈였던 장면들을 기억해본다. 혜원 언니 집에서 와인을 마시고 잔뜩 취한 사람들이 담배를 말던 순간. 엉망진창으로  담배를 들고 웃는 사람.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그릇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사람. 비행기를 잘못 예약하고, 서울에 도착해서는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이태원  6 출구에 꼼짝없이  있던 진명을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먼저 발견하던 순간. 청계천을 거닐  취했고 신났던 모두들. 누군가 수없이 물가를 건너기 위해 밟았던 돌계단 위에 나란히 앉아  마시던 . 같이 웃던 순간. 같이 발맞추던 순간. 마주 보며 담배 피우던 순간. 옥상에서 남산 타워를 바라보며 죽은 친구를 떠올리던 순간. 자기 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읊어주는 사람. 웃을  입에 작은 동굴이 생기는 사람.  너랑 라면만 먹어도 좋아 그렇게 말하던 순간. 취한 내게 복숭아를 깎아 입에 넣어주는 엄마. 수학 숙제를 포기하고 울다가 지쳐서 잠든  머리맡에서 엄마 아빠가 도란도란  숙제를 대신해주던 장면. 에스컬레이터를 무서워해서 발목이 갈리지 않을 타이밍을 재느라  내려가고 있던 나를 밑에서 기다려주던 친구들의 얼굴. 속옷을  뒤에서 채워주던 손길. 죽지 말라고  손을 잡아주던 . 냉장고를 닦으며 울며 누군가의 욕을 하던 엄마. 기울어진 빨간 옥상 위에서 햇빛을 맞으며 같이 누워있던 순간.


생각해보니 재즈였던 순간들이 촘촘하다. 진명과 자주 시트콤처럼 살자고 말했었는데 오늘부터는 시트콤 같은 인생에 메인 BGM을 재즈로 깔아야겠다. 심각해질 필요 없을 것이다. 비장해질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죽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인생이 시트콤이고 어디에선가 재즈가 계속 울리고 있다면. 우울할 때는 춤을 춰야지. 곡선으로 흘러가야지. 담배를 피워야지. 곧게 뻗어 나가다 사라지는 연기를 보면서 춤을 춰야지. 맛있는 술을 마시면서 풀어지고 흐물거려야지. 보고 싶다고 말해야지. 즐겁다면 모두 재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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