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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도당근 Nov 13. 2022

지옥길 위에서 배영하는 느낌

21년 상반기와 죽음과 일터

 19년 8월부터 3교대 일을 시작했다. 먹고 자고 싸는 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던 내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정말 말 그대로 슬슬 '망가졌다.' 정신력도 약해지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잠도 잘 못 자고, 잘 싸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으나 적응의 동물답게 1년 정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약간은 극복이 된 듯했다. 더 이상 망가지기 싫어 주기적으로 운동도 했고, 내가 내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점차 터득해내었다. 

 

 그러다가 21년 1월부터 4월까지는 이 증상이 매우 심해졌다. sub icu(준 중환자실: 병동과 중환자실 사이의 중증도를 가진 환자들을 보는 병실. 간호사 1명이 4명의 환자를 full monitoring하며 케어한다)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내 감정을 온전히 소화해내기가 너무나도 벅찼다. 물론 처음에는 4일 근무하고 6일이나 쉬는 어마무시한 스케줄이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체력이 점점 깎이면서 평소에는 전혀 해보지도 않은 고민을 계속하며 부정적이고 불안한 사람이 되어갔다. 


 1월 19일의 일기에는 "지옥길 위에서 배영하는 중이다. 눈은 고정된 채로 팔다리만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라고 적혀있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 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 곁에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부정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갔다. 이미 죽은 환자도 종종 생각나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꺼이꺼이 울던 보호자도 종종 생각나 귀를 괴롭혔다. 그렇게 4일을 지내다보면 잠이 부족해서 허덕였지만 누워도 깊이 잠들지 못했다. semi coma state인 사람들도 태반이었고, 정신이 살아있기는 한데 똥을 누고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들, 더럽다고 간호사에게 해달라는 보호자. 그런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욕설을 내뱉는 환자들을 진정시키며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온전한 사고가 맞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기에 급급했다. 겨우겨우 잠을 청하고 몸의 피로가 풀리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 된 양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울고 아파하는 게 지겹고 싫었다. 의사에게는 단 한 마디도 못하고 "네, 네"만 반복하면서 나에게는 "주치의가 불친절하다, 회진 시간이 너무 짧다"며 마치 내가 액받이무녀인 마냥 짜증을 내는 것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예 대답도 하지 않고 무시했던 적도 많다. 이기심이었다. 내가 이 정도로 시달리면서 일을 하니까 당신들이 나에게 고마워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해도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 순간에는 조금 설명을 덜 해도 되고 일을 대충 끝내서 몸이 편안해졌지만, 집에 돌아오면 이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었다. 대충 일하면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sub icu 근무 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번 아웃이 온 것 같으니 좀 수월하게 일을 하고 싶다고 파트장에게 이야기를 해보았다. 다행스럽게 지금은 가장 싫어하는 나이트 근무를 하지 않으면서 조금 편하게 일을 하고 있다. 심지어 6월 한 달은 선별 진료소에서 근무를 하며 무려 점심시간을 90분이나 가진 채로 상근을 하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근무다. 점심시간과 휴식 시간이 보장되고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가족과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근무라니. 이제야 좀 마음이 안정이 되고 건강해지는 것만 같다. 


 이렇게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힘들었던 몇 달 전을 떠올리니 이제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잘 견뎌내느라 고생했다고. 주변의 감정에 쉽게 이입하고 영향을 받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기간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교대 근무도 간호사 일도 전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무작정 벗어나고 싶어 했었는데, 사실은 그만큼 내 역할에 충실해서 일을 했으니 겪었던 감정이라고 마음을 정리했다. 근무시간 동안 근무만 하고 월급만 받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으면 감정적으로 조금 더 견디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고 열심히 하고자 했기에 이만큼 깊은 우울을 느꼈던 게 아닐까. 생각보다 내가 내 일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나마 지난 몇 달 내내 피로했던 나를 위로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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