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구경인줄 알았는데, 어라?!
이번에는 7화에서 말했던 사무분장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구조'의 문제이고, 저연차 공무원이 면직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실제 면직하는 주요한 몇가지 이유중 하나이다.
따라서, 시트콤같은 이야기보다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미리 말씀드립니다.
1.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쓴 그 직원은 본인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2. 그에 대해서는 불만이 전혀 없다. 나도 언젠가 그와 같은 위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다만 그러한 상황이 생겼을 때 누군가는 희생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공무원이라는 특수성에 먼저 설명을 해야한다.
공무원은 한번 뽑으면 정년이 보장되므로, 공무원을 확충할 때는 장기적인 계획과 병행되어야 한다.
당장 필요하다고 많이 채용하기가 힘든 구조이다. 20년, 30년 뒤의 사회구조도 생각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에 1번의 공채를 시행하고 그와 맞물려 연간 혹은 중장기 계획에 따라 인사를 수행한다.
그러하다는 것은 즉, 필요한 상황에 즉각적인 인원공급이 어렵다는 뜻이다.
각종 휴직(질병, 육아, 출산) 등의 사유로 결원이 생긴경우 대처는 다음과 같다
1. 인원확충은 보통 1년에 두번 있는 인사이동(상반기, 하반기)
2. 운좋게 같은 직렬 비슷한 직급이 복직을 하는 경우
2번의경우는 같은 직렬, 비슷한 직급 + 복직자의 의지까지 확인되어야 가능한 경우이므로 사실상 어렵다.
결국에는 공백이 생긴날로부터 인사발령일까지 누군가는 공백을 땜빵(?)해야 하는 것이다.
공직 인사의 경직성은 상상 이상으로 딱딱하다.
때는 5월로 기억한다. 이제 발령받은지 4개월이 지났을 무렵으로 나는 과서무를 담당 하고 있었다.
서무업무란, 공문 분배, 각종 취합자료 정리 및 발송, 사무용품보충, 급량비 관리 등 온갖 서포트 업무(=잡일)을 하는 것이다.
특히 사무분장에서 '기타 사무분장에 속하지 않은 업무'라는게 있는데, '나다 싶으면 알아서 처리해'같은 거다.
누구 업무인지 애매한 하면서 업무는 '서무'가 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 기관은 특이하게도 내가 속한 과가 기관장과 본부장을 모시는 주무부서였고
기관장실과 본부장실의 바로 옆에 위치했다. 당연히 높으신 분들의 서포트를 위해서 서무가 할 일이 더 많았다.
기관장, 본부장까지 서포트해야 하는 과서무 자리에 신규 9급을 앉혀 놓은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때는 5월의 어느 따스한 날이었다.
같은 부서이자 옆팀인 운영팀에는 임신한 7급 여직원이 있었다.
그 여직원은 7월까지 회사를 다니다가 인사이동에 맞춰서 휴직을 쓰기로 이야기가 되어있었다고 들었다.
계획대로 되었다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7월까지 2달을 앞둔 그 시점에서 여직원은 휴직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운영팀장, 우리 과장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서 요즘 영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옆팀팀장과 과장은 승진에 전혀 미련이 없고, 퇴직을 1년~2년 정도 남아있는 흡사 말년병장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부하직원의 고충이나 결재문서 따위보다 퇴직 후에 도움이 될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는 분들이었다.
휴직의 정확한 사유는 모르지만, 나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어쨋든 옆팀은 갑작스러운 결원이 생겼으니 난리가 났다.
이제 그 여직원은 일주일이면 휴직을 쓰고 들어간다고 하니 발등에 불이 붙은 셈이었다.
남은 기간은 평일만 따지자면 5일.
그 안에 업무적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결정해야했다.
원래는 그 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지만, 기관장 수행, 의전 등으로 행정업무를 할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 기관은 본청과는 다르게 인건비부터 여러가지 수당을 7급 주임이 지출해야 했으며,
일상경비부터 예산을 분배해주는 것, 각종 지출까지 도맡아 하는 자리였다.
e-호조라는 프로그램을 잘 다루고 각종 지출 규정을 숙지해야 원활한 업무처리가 가능한 자리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강건너 불구경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시보도 떨어지지않은, 기초적인 업무를 배워가는 뉴비였고 당연히 7급 업무를 할 역량이 되지 않았다.
e-호조와 지출 규정은 하루아침에 익숙해지기 어렵다. 아무리 말을 해줘도 단계별로 서서히 배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사고가 안난다. 더욱이 돈을 계산하고 돈을 지출하는 업무는, 잘못되면 바로잡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강건너 불구경을 하는데, 화살이 나에게 날아오네?'
'어라?!'
과장, 팀장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부르더니 이야기했다.
과장 : "구주임이 나이도 있고, 보니깐 일 잘하던데 자네가 7급 자리에 앉아서 일을 좀 해야겠네"
구삼일 : "아뇨.. 웬만하면 하겠는데 이건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당연히 자신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간단한 인수인계가 끝나면 그 여직원은 연락도 어려울 것이다.
운영팀장은 지출에 대해서 거의 관심도 없고 실무적인 부분도 문외한이었다.
(운영팀장이 지출업무를 하던 시절은 종이로 처리하던 시절이다.)
지금 팀장님도 문제가 많았지만 운영팀장님에게도 업무적으로 절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어르고 달래다 자기들끼리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후에 터질 사고들이 걱정이 되었는지.
기관장 수행원(6급)이 7급일을 하고 나를 기관장 수행원으로 재배치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결정이된 다음날부터 기관장 부속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6급 주임도 본인이 지출일을 해야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그저 '비위만 잘 맞추면된다.',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기관장을 모실 때 미리 챙겨야 하는 것, 일정 조율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행원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실들은 거의 인계받지 못했다.
나는 바다위의 허름한 나룻배와 같이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이리 저리 떠다니는 신세였다.
잘 맞지 않아도 대충 비슷한 구멍이 있으면 욱여 넣는 톱니바퀴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충은 굴러가니까. 그럴테니까라고 생각하는 관리자급들에게 한번 더 실망감을 느끼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