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은 내꺼, 회사꺼는..?
오늘은 '선풍기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그간 '사무분장 사건'이 발생하여 다른 팀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등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사무분장 사건'은 1편(출산휴직)과 2편(질병휴직)이 있는데, 추후에 다른 에피소드로 등장할 예정이다.
때는 발령을 받은지 8개월이 지난, 여름이 슬슬 끝나가고 가을이 시작되던 때였다.
같은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운영팀장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운영팀장 : "이주임, 선풍기 갯수가 모자라네. 조사좀 해봐"
구삼일 : "아 그래요? 어디가진 않았을 텐데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보통 선풍기는 잃어버릴만한 물건이 아니니, 다른 사무실이나 휴게실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찾아도 선풍기 1대가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물건을 사기 때문에 '물품'으로 등록된 품목들은
갯수까지 전산에 입력하고 물품등록표도 붙여 놓는다.
분명 여름이 시작할 즈음 창고에 있던 것을 나눠 줄 때에는 갯수가 맞았었다.
그렇다면, 누가 가져갔다는 결과만이 남는 것이다.
운영팀장에게 보고를 드렸다. 분명 선풍기를 꺼낼때는 XX개였는데,
지금 파악을 하니 한개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랬더니 운영팀장의 대답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운영팀장 : "자네가 CCTV를 뒤져서라도 찾아야지"
구삼일 : .....??????????
내가 당황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옆팀(운영팀)에 물품업무 담당자가 있었고, 나는 단순 과서무였을 뿐이다.
나는 물품업무와 청장수행 업무가 공백이었을 당시, 모종의 사유로 옆팀으로 팔려가
잠시 물품 담당을 했을 뿐이고 지금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물품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현재 운영팀원이 담당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운영팀장은 내가 CCTV를 봐서라도 범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기관은 우리 시가 아닌 다른 주체가 운영하는 건물에 입주해 있는 상황으로,
내 마음대로 CCTV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또한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선풍기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포착하려면
약 3개월치의 출입구 CCTV를 확인해야 했다.
그 후로 운영팀장은 몇번이나 CCTV를 확인했냐고 나에게 물어보며 압박하였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운영팀장에게 보고하자,
그는 나에게 언성을 높이며 경찰에 '고발'이라도 하자고 고집을 부렸다.
선풍기 하나때문에 경찰서에 가서 고발을 하자니.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물품이니 되찾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상황이 맞는 것인지 의문에 휩싸인 나는운영팀장의 말에 대꾸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걸 듣고 있던 우리 팀장이 운영팀장에게 잠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혹시 '부하직원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으니, 관리자 선에서 정리 해주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무실 밖에서 우리 팀장과 이야기를 하고 온 운영팀장의 표정이 상당히 미묘했다.
그리고 나에게 와선, 선풍기에 대해서는 걱정안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방금까지 고발하니 마니 노발대발하다가 해결된 것 같다라니.
도대체 어떻게 해결된 것이냐는 나의 물음에
운영팀장은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여기선 못하겠다.'라는 표정으로 나중에 이야기 해준다고 했다.
30분 정도가 지나고 우리팀장이 담배피러 나갔을 때, 운영팀장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풍기 가져간 사람이 너희 팀장이야"라고.
주말에 가져다 놓기로 했으니 다음주 월요일에 가져왔는지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자기 팀원이 아닌 나에게 압박을 했구나.'
운영팀장은 선풍기를 가져간 범인이 우리팀장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영팀장도 본청에서 오랬동안 일하면서 이미 우리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팀장을 압박하려고 나에게 노발대발 하면서 '고발'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 팀장이 선풍기를 가져간 이유도 황당했다.
집에서 쓰던 선풍기가 고장나서 수리를 맡긴 동안만 사용하려고 가져갔다고 했단다.
그는 좋은 동네의 에어컨이 설치된 신축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선풍기 하나 고장났다고 해서 회사 선풍기를 힘들게 가져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 위의 사유는 핑계일거라 짐작했다. 그저 그의 눈에 남는 선풍기가 보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주 주말에 나는 다하지 못한 업무가 있어서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다가
퇴근하려고 지하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타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보고 말았다.
우리 팀장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트렁크에서 선풍기를 꺼내어 사무실로 올라가는 팀장의 모습을.
시트콤 같은 결말이지만 정말로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팀장 입장에선 옆팀 팀장이 자신의 부하직원(나)에게 큰소리 치는 것을 듣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보통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 팀장끼리 이야기해서 혼낼일이 있는 경우 담당자의 팀장이 혼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자신을 패싱했다(=무시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팀장은 내가 선풍기로 옆팀 팀장에게 혼나거나 압박을 받는 동안 못들은 척 무시했다.
본인이 선풍기를 가져갔기 때문에 혹시라도 말려들 것이 걱정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