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코로나와 1300명

제가 꾀병이 아니잖아요.

by 구삼일

이번 에피소드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같은 제목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단기간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었으며 그로인한 신체적 고통도 상당했던 사건이다.


글로 옮기기 어려운 사소한 고충들을 이겨내면서 무려 3개월이라는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아니면 어느새 나도 자그마한 갑질에는 익숙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즈음에는 본청에 갈 때는 팀장이 주는 통장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고 갔다.


3개월이 지난 시점은 4월로 그때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이었고,

백신도 맞고 최대한 조심했음에도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당시에 코로나에 걸리면 5일의 공가를 받았고 나 또한 그러했다.

코로나에 걸린지 '2일째'가 된 날이었다.

한창 코로나 증상이 올라왔고 목이 아프고 머리에서는 열이나며 온몸은 몸살처럼 욱씬거리는 중이었다.

그때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온 것을 보곤 '코로나에 걸린 부하직원에게 안부차 전화하는 정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시트콤에서나 볼법한 캐릭터인 그는 아픈 나조차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팀장

- "구주임!! 내가 지금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말이야, 급하게 연락을 돌려야하는데 리스트 하나 보내줄 테니까, 공무원들 전화번호 맞는지 좀 찾아서 기록해줘. 그 내부망인 GVPN으로 접속하면 검색가능하지? 번호가 바뀌었거나 없으면 좀 적어주고!"


구삼일

- "콜록콜록 팀장님 제가 몸이 많이 안좋은데요.."


팀장

- "알아 아는데, 집에 있잖아. 다른 직원은 일하고있고! 나 급하니까 한번만 도와줘 지금 메일 보낼께."(뚝)



안그래도 아픈데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얼굴에선 열이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의 이기심에 치가 떨리면서도, 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절대 외면하면 안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겨우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메일에 들어갔더니, 엑셀파일 하나가 와있었다.

팀장이 공직생활동안 경조사비를 주고 받은 리스트였는데, 적혀있는 인원수는 '약 1300명'이었다.

대충 보니 번호가 없는 사람은 200명이 넘었고, 그나마 적혀있는 사람도 개인번호가 없는 경우가 많아

팀장이 의도하는 대로 문자로 경조사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1. GVPN을 통해서 행정시스템에서 성명 검색

2. 핸드폰 번호를 확인 후 엑셀시트에 기입

이것을 수백명을 해야했다.


약 1시간 가까이 작업을 하다가.

화가나서 열이오르는지, 코로나 증상인지.

모니터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팀장이 화를 내건말건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 3시간 쯤 뒤에 팀장에게 전화가 왔고 결국에는 "조금 하다가 아파서 못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 그래...? 어쩔수 없지 뭐"라고 아주 쉽게 포기했다.


그는 상급자의 위치에서 하급자가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마구 해놓고는, 너무 간단하게 단념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도 '어떻게 말해야 기분이 덜 상할까?'를 고민했던 내가, 결국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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