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겪은 이별은 참 힘들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여주인공은 며칠 힘들어하다가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첫 연애인 것처럼 다시 새로운 설렘으로 만남을 이어가는데, 나는 출근하는 버스를 탈 때도, 회사를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어두운 길에서도 계속 눈물만 흘렸다.
가능하다면 다시 붙잡고 싶었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 친구 앞에선 강한 척, 괜찮은 척 보이려 노력했는데 아무 쓰잘대기 없는 허세에 불과했다.
그와 겪은 이별은 그동안의 내 인생과 '나'라는 인간을 토네이도 속에 날려버린 느낌이었다.
아마 그도 나만큼 아팠겠지. 11년의 기억을 무슨 수로 지우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까.
신이 있다면 다시 이별의 순간으로 되돌려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아니면 이 모든 기억을 그냥 지워주기를 -
지워지지도 않는 기억을 이 지우개로 지웠다가 다시 새로운 지우개로 지웠다가 참 애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10년도 더 지난 과거가 된 지금이지만 아직도 난 그때의 기억을 이따금씩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같은 지점에서 일하던 나와 같은 신입인 지훈계장과 친해졌다.
나의 이별얘기를 들어줬고 퇴근 후엔 출납을 맡았던 대리언니와 셋이 저녁을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신입이라서럽고 눈치 볼 일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동지가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했다.
우린 동성친구처럼 그냥 평범한 관계를 이어나갔고 그러던 중 지훈계장은 우리보다 좀 더 일찍 들어온 가연이라는 아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고백을 할 거라고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숨만 조금 몰아쉬어도 입김이 나올 정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는 선물이라는 책 한 권과 핫쵸코를 사들고 가연이 집 앞에서 그동안 본인이 느꼈던 감정과 진심 어린 고백까지 -
준비는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거절이었다.
같은 지점, 같은 팀원이었기에 서로가 더 껄끄러워진 사이가 돼버렸다.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또 업무를 해야 하는 이 상황들이그 둘에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젠 그가 나에게 연애상담을 했다.
우리 둘 모두 그 나름의 이별을 경험하고,
앞으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또 사랑하면 된다고 -
이별한 사람에게 이런 말들은 사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라는 걸 알지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그 답을 찾아보자면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게 -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우리는 점점 더 친해져 갔고 어느새 지점에서는 둘이 의심스럽다며 cctv라도 돌려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그때까지도 우린 정말 친한 동지이자 병아리 신입행원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