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준비는 진즉 끝났다. 밥 먹자고 부르는데 남편 기척이 없다. 벽을 향해 웅크린 채 꼼짝하지 않는다. 많이 아픈가 가까이 갔다가 멈칫한다. 툭툭 불거진 등골뼈에 차마 손도 못 대겠다. 이불 끝을 올려주고 조용히 나온다.
아침 먹자고 실랑이하는 새 훌쩍 점심으로 건너가고 있다. 한 끼 건너뛴다고 어찌 되랴 하는데 그가 비치적거리며 방을 나선다. 얼른 가서 그의 팔을 붙잡는다. 그는 식탁이 아닌 소파에 몸을 부린다.
“진통제 두 종류 다 먹어 봐야겠어.”
세상에, 그렇게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나 좀 하지. 아직 한꺼번에 먹은 적은 없는데 싶어 그를 바라본다. 펜타닐 패치도 그의 통증을 돕고 있는데 복통이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다. 웬만하면 잘 참는 그가 끄윽끄윽 신음을 내지른다. 내 조바심을 겨누고 내는 소리 같다.
마약성 진통제도 그의 통증을 다스리지 못할 때가 잦다. 그는 둥글게 몸을 만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밥은 무슨... 부축해 들어가 침대에 눕히는 게 답이다. 밥과 통증과의 싸움, 언제나 그렇듯 통증이 완승이다.
우물 속 같은 중늙은이네 거실을 점령해 들어온 햇살, 혼자 노는 것도 심심해 슬금슬금 발을 빼는가 했더니 우울한 주인과 상관없는 초록초록한 화초 위에 냉큼 올라타 해살거린다. 같은 공간인데도 이리 다를 수 있나. 식탁 위 그의 아침상은 다 식어 말랐고 나의 커피도 식을 대로 식었다. 남편을 부축해서 방에 들어가 눕힌다. 상을 치우고 나는 뜨거운 커피 홀짝이며 햇살 머무는 화초에 눈을 주고 앉았다가 내가 이럴 때인가 화들짝 놀라 그의 방에 다시 들어간다.
진통제 두 알이 통증을 제압한 걸까. 그의 숨이 고르고 편해 보인다. 그가 먹겠다고만 하면, 쟁반에 받쳐 들고 그의 침대 머리맡으로 갈까 잠시 갈등한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침대에서 식탁까지의 짧은 거리이지만 그 몇 발짝이라도 발바닥에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산다. 침대에서 쉽게 해결하고 나면 새삼스레 자기 발로 걸어서 식탁에 오게 될까. 나는 어쩌다 이리 지독한 여편네가 됐을까. 내가 생각해도 이러는 내가 무섭고 싫다.
통증이 좀 가셨느냐고 묻는다. 인상을 안 쓰니 조금 나은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저 깊은 눈이 말하는 두려움과 고독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늘 짐작만 할 뿐이다. 그를 내려다본 채 한참을 서 있다가 말한다.
“그럼, 뭐 좀 먹을 수 있겠어?”
그의 눈빛이 시들하게 말한다.
‘지겹지도 않니? 그놈의 밥 타령.’
‘나도 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요. 난들 이러고 싶겠냐고요’
내 눈빛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에이, 나쁜 마누라쟁이 했을까. 남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점심때도 한참 지나있다.
우리를 걱정해 주는 선배가 그랬다. 안 먹겠다는 사람에게 한 수저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지 말라고. 밥 한 수저보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낫고 살 비비며 대화하는 게 백번 낫다고.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미련하게 밥만 먹이려 드는 걸까.
죽을 끓이며 그를 부른다. 큰소리로 자꾸 불러 놔야 식탁에 나올 마음의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가 일어나 앉아 있다. 고개를 푹 꺾고 그냥. 일어나 앉은 채로 한참, 발을 침대 아래로 내려놓고도 한참, 한 발 한 발 걸어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아서 또 한참을 뜸 들여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러고도 수저를 들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성질 급한 내가 결국 수저를 들고 떠먹여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게라도 먹어주기만 하면 그가 부처님이고 예수님이다.
죽을 대접에 옮겨 담는데 그가 나온다. 식탁 앞이 아니라 소파로 가서 배를 움켜쥔다. 통증이 또 오는 모양이다. 나는 게릴라 통증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삼십 분이 넘어가는데 그는 일어나지 못한다. 어찌해야 하나. 저러다 지쳐 밥이고 뭐고 다 싫다며 또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에게 가서 배를 문질러 준다. 엄마 손은 약손, 아내 손은 약손.....심리적 안정감일까. 배를 문질러 주면 좀 살 것 같다고 할 때도 있다. 남편이 당신 힘드니까 이제 그만 하라며 내 손을 잡는다. 마음이 약해 마음껏 투정도 못 부리는 남편, 그의 생선 가시 같은 손을 되잡고 있다가 일어난다.
식은 죽을 냄비에 도로 붓는다. 안 먹어도 다시 끓여 놔야 할 것 같다. 가스불을 켜는데 현기증이 난다. 미끄러지듯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뽀•골•뽀•골• 폭폭! 죽 냄비 속 퍼진 쌀알들이 죽상이 되어 튀어 오르고 난리다. 다리 힘주고 일어날 기운이 없다. 나야말로 뜨거운 냄비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