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항암을 앞두고 있다. 시간 감각이 둔해진 남편에게 날짜 짚어가며 알려준다. 항암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에 기력좀 보충하자고. 식욕 없어도 죽을힘 다해서 먹어야 한다고. 죽을힘 다해서라니. 평소 무심코 쓰던 말인데 새삼 목에 걸린다. 살려고 기를 쓰면서 죽기를 각오한다는 말, 새삼 놀랍다.
남편을 침대에서 일으키기 유독 어려운 날이 있다. 상냥함이 안 통하면 퉁명스럽게. 그것도 무시하면 협박까지 동원한다. 어찌어찌 일으켜도 침대 아래로 발 내리는 것 또한 하세월이다. 그럴망정 그의 마음이 동할 때까지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보통 인내심으로는 어림없다. 한쪽 발 물수건으로 닦아서 내려 주고 또 한쪽 발도 닦아서 내려놓는다. 그가 방바닥에 힘주고 서기까지 내 발에 힘이 더 간다. 식탁에 앉았다고 끝은 아니다. 그는 식탁의자에 앉은 돌부처. 짐짓 딴짓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수저 들 생각을 않는 남편... 쓰다 보니 이런 식의 푸념을 저번에도 한 듯하다. 결국 내가 수저 들고 떠 넣어주면 몇 번 받아먹고 고개 숙여버리면 그만이다. 아침 수프 반 공기 먹이고자 벌이는 신경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
온갖 설득으로 겨우 먹였는데 설거지도 마무리 전에 화장실에 가는 남편. 맥이 풀려 그릇 헹굴 힘도 없다. 식욕 당기는 약, 구토억제제, 지사제를 매 끼니 먹어도 소용없다. 애써서 먹인 음식 좌악좌악 쏟아버리는 소리가 들리면 내 속도 뒤집어진다. 막말로 ㅇ구멍을 막아주고 싶은 심정이라면...아, 웃지 마시라.
항암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오심과 구토 복통과 설사가 이어진다. 도중에 뇌진탕을 경험한 남편은 다른 항암 환자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건너는 중이다. 체력이 항암 전 체력까지는 언감생심일지라도 뇌진탕 전으로만 돌아가도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하루하루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항암을 앞두고 예민해진 건 알지만 남편은 매사 살얼음판이다. 살얼음 위에 선 나는 순간순간 애가 탄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었으니 일어날 힘도 없겠다 싶어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하는데 왕짜증이다. 그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다시 물으니 또 화를 낸다. 알아주기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화만 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먹는 것보다 내보내는 게 더 힘들어서 안 먹겠다고 했건만 굳이 먹으라고 한 내가 꼴도 보기 싫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안 먹는 건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거와 뭐가 다르냐고 했더니 그 말은 더 듣기 싫었나 보다. 아무리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도 통증 앞에선 폭군이 될 수밖에 없는 건가. 나는 남편에게 알았다고, 당신 힘든 거야 말 안 해도 알지만, 나 역시 힘이 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 힘들다는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내지른다.
“그러니까 그만해. 힘드니까 나 이대로 죽게 내비두라고.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죽게 놔두라는 말을 듣는 게 몇 번째인가.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으윽으윽 새어 나오는 울음을 눌러 삼키며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줄 것 같은 선배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당뇨 합병증으로 만병을 달고 사는 남편 바라지에 꽤 긴 세월 애쓰는 걸 알면서 내가 이런 일 당하고 연락 못하고 살았다. 힘들게 살아도 언제나 씩씩한 선배, 전화했더니 지금 병원이라고 한다. 남편 일로 온 게 아니라 당신이 아파서 병원 신세라고. 선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더는 말을 못 잇고 애써 챙챙 여미고 있던 눈물보를 터트려버렸다. 다짜고짜 울기부터 하는 나를 안고 토닥이듯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댄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나는 선배 말에 얼른 대답을 못하고 말 못 하는 짐승처럼 어버버 어버버 꺼억꺼억한다.
“아이고, 야야. 뭔 일이야?”
선배는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어째, 뭔 일이기에 이러는 게야?”
나는 어버버 어버버 남편이 아프다고, 그런데 매사 나한테 화를 낸다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아픈 사람 맘을 몰라준다고 화를 내니 못 살겠다고 큰언니한테 고자질하듯 주워섬긴다. 그러면서 끄윽끄윽 쏟아낸다. 선배가 등을 떠민다.
“아이고, 그래그래.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울어야지. 울어버려야지. 나도 어디 가서 펑펑 울어나 봤으면 좋겠는데 이제 울음도 안 나오네. 울어. 울 수 있을 때 울자고. 울어서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울어야지. 암, 같이 울자. 세상에, 얼마나 힘들면 이럴까. 우리가 그 화를 받아줄 힘이 있어서 남편들이 화를 내겠지만, 아내가 젤 편해서 그런 건 알지만, 그런 아내 마음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 그러니 어쩌겠어.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지. 환자는 또 오죽하면 그러겠나. 아이고, 어쩐다니. 다 힘들어서 어쩐다니.”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배는 내 등을 밀며 더 울라고 울 수 있을 때 울라고 부추긴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닫힌 병실에서 내 통곡이 다른 분 귀에 들어갈 텐데 하는 마음에 내 입을 틀어막는다.
터진 울음을 참으려니 구역질이 난다. 안방 화장실로 뛰어간다. 그는 거실 쪽 화장실에서 쏟아내고 나는 안방 화장실에서 쏟아내고. 다 쏟고 속 편해지면 잠은 좀 잘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