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12차 병원 일지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교수님이 한 말이다. 그러곤 남편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항암 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나는 남편을 바라본다.
남편의 강력한 쐬기에 교수님도 나도 웃는다. 마냥 미루는 것도 찝찝하니 영양제 맞아가며 좀 낮춰서 해보자고 한다.
10차 때까지만 해도 남편 혼자 병실에 있었다. 이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남편은 뇌진탕 후유증을 겪는 중이고 급격한 체력 저하로 서 있는 것도 아슬아슬하다. 남편 표정은 엄마 떨어지기 싫어하는 어린애 같다. 내 치마꼬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까. 병실에 함께 있을 생각으로 침구까지 챙겨 온 걸 알면서도 그런다.
사실 내가 병원에 있어도 특별히 해줄 건 없다. 화장실에 갈 때 옷소매 잡고 따라가고 식사 때가 되면 억지로 일으켜 두어 수저라도 먹게 부추기는 것뿐. 그 부추김이 지금 그를 지탱하게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스스로 비하할 것까진 없을까. 남편은 병원 밥보다 고구마나 삶은 계란 그가 좋아하는 과일과 갓 나온 빵을 더 선호한다. 입원 준비한다고 바리바리 챙기는 걸 보면서 얼마나 먹는다고 그걸 다 넣느냐고 하더라만 내가 먹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니 신경 끄시라 하고 싶었다.
커피 한 잔 만들어 놓고 병동 휴게실 창가에 앉았다. 옆 공간 텔레비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연진들의 아무말잔치만 들리지 않는다면 한적한 카페라도 앉아 있는 듯 내려다보이는 정경이 그만이다. 멀기는 해도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듯 늦가을의 정취가 그대로 전해온다. 남편 발병 후 취미도 친구도 외면하고 살아서일까. 친구들과 산길 걸은 게 채 일 년도 안 된 일인데 까마득하게만 여겨진다.
잠깐 몽상에 빠져 있는데 같은 병실 보호자가 옆으로 와서 앉는다. 그녀와 나는 환자 아내의 입장으로 이틀 밤이나 한 공간에서 잠을 잔 처지. 커튼을 쳐놓고 지내니 속속들이 보진 못한다 해도 본의 아니게 그쪽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서 그런가 생판 남 같지 않게 느껴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몇 번 마주친 얼굴이니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말을 붙였다.
“두 분 사이가 좋아 보여요.”
“어머 뉘신지?”
“1205호에....”
“아하, 살이 전혀 없는 분의 아내 되시는?”
어느 결에 나는 갈비씨의 보호자가 되어 있다. 그러면서 바로 덧붙였다.
“근데 참, 묻고 싶었어요. 남편한테 왜 그리 저자세예요? 그렇게 뜻 받아주다간 환자는 끝없이 아기가 되는데... 결국 환자는 고집불통이 되고 여자는 골병들어요. 여자 기가 세야 남자를 살리죠.”
마치 동생 나무라듯 좀 당차게 굴라고 하면서 그래도 미진한지 다른 남자 환자들을 싸잡아 성토한다.
“으흐! 남자넘의 족속들이란, 다 자기들 위해서 그러는 건데 왜 말을 안 듣는지...”
밥 못 먹는다고 아예 일어나지도 않는 남편에게 더 다그치지 못하고 한숨만 쉬고 있는 걸 알았을까. 링거 매달고 화장실에 가는 남편을 매번 쩔쩔매며 따라가는 걸 봤을까. 암튼 여자 기가 쎄야 남자를 살린다는 말에 밑줄 쫙—! 긋는 심정으로 들었다.
병실에 종일 있어도 남편 목소리는 거의 나지 않는다. 오는 전화도 없지만 거는 전화 역시 없다. 내게 이러쿵저러쿵 바라는 바도 없다. 그가 번쩍하면 내가 알아서 바로 대령하니 말이 필요 없기도 하겠지만, 통증과의 싸움 외에는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다. 넘어진 뒤로 귀가 완전하지 않아 큰소리로 하는 나의 말이나 좀 알아듣지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못 알아듣는다. 눈을 거의 감고 있는데 귀마저 닫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혈압이나 혈당 체크하고 돌아서는 간호사에게 “수고했어요” 하는 게 그가 하는 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차는 유독 설사가 심하다. 먹었다 하면 화장실로 직행이다. 그런데도 시원하지 않은지 오래 앉아 있다. 엉덩이 살 없는 사람이 딱딱한 변기에 허리 세우고 있기는 쉽지 않다. 머리를 발 쪽으로 내리고 양손은 바닥을 짚은 자세.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걸 본 적 있다. 그렇게 오래 있다가 주삿바늘이 잘못돼 피가 흥건해져서 나온 적도 있다. 그가 화장실에만 가면 나는 문을 지키고 서서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나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게 된다. 그렇게 구부리고 있다 잠이 들어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간간이 남편을 부른다. 남편은 그러는 나한테 왜 부르고 난리냐고 화를 낸다. 그렇게 있기도 힘든데 밖에서 불러대니 얼마나 신경질이 날지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그가 들어간 화장실 문에 붙어 서 있을 거다. 그 일이 나로서는 남편한테 제일 세게 구는 일인 것처럼.
밤 9시가 되자 병실 불이 꺼졌다. 완전히 어둡지는 않지만 책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볼 상황은 못 된다. 거의 누워 있고 잠을 자는 게 환자들의 일이라고는 해도 소등까지 돼버린 공간에서 “나는 멀쩡하니 깨어서 좀 부스럭거릴래요.” 할 수는 없다. 좁고 옹색한 보조 침대에 누워 모포를 덮는다.
내 예민한 신경은, 옆 침대 환자의 코 고는 소리, 건너편 환자가 뒤채는 소리, 소곤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더 잘 들리는 대각선 쪽 부부의 말싸움까지 붙들고 잠을 방해한다. 그 시각쯤 되면 긴장에서 좀 놓여나는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병실까지 파고든다. 그들이 더 크게 말하는 건 아닐 텐데 병실이 조용하니 더 잘 들리는 것이리라. 낯선 장소와 소음 속에서 까막 잠의 정령이 내 안에 발을 뻗을까 말까 하는데 문이 열리고 바퀴 구르는 소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아버님, 이제 관장해 드릴게요.” (간호사가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 아버님이라니.... 연세 드신 분한테 그러는 게 편한지 모르나 그냥 ooo 씨라고 하면 어떨까.)
아까 휴게실에서 만났던 분의 남편이 며칠째 변을 못 본다고 하더니 관장을 할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짐작되는 소리가 이어지고 바퀴는 다시 구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럭 하는 소리. 에고, 나한테 오려던 잠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아니 나한테 뭔 짓을 한 거여?”
“관장한다고 했잖아요.”
“뭐라고? 뭐란 거여? 한장? 뭐가 환장해?”
“으씨, 당신이 똥 못 싸서 똥 싸라고 똥구녁에 약 넣었다고요.”
보호자의 똥이라는 된소리 따발총에 환자가 찍소리도 못한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불이 켜지더니 일어나서 병실을 나가는 분도 있다. 우리 남편만 그러든지 말든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심이 없다. 한바탕 소란이 있었기에 더 느껴지는 고요. 이제 자야지. 자고 싶다. 내 잠에 최면을 건다. 머뭇거리던 잠이 가물가물 또 와주시는가 했는데 너무도 급하고 어수선한 소리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어어, 왜? 왜? 왜 일어나? 참아야지. 똥구멍 꽉 조이고 더 참아야 한다고!”
“미쳤어. 병실에 다 싸지를 것 같구먼 뭘 참아.”
“아우 미치겠네. 못 살아, 못 살아.”
그 소란 속에서도 자세 한번 바꾸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남편. 고마운 이의 이불깃을 올려 덮어주고 다시 누워보지만 달아난 잠이 와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