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옇다. 안개와 창이 대치 중이다. 남편을 깨우러 방에 들어가니 그가 눈을 뜬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쓸며 잘 잤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젊을 때도 그가 건강할 때도 쑥스러워서 못 해 본 인사법이다. 예전에는 어쩌다 코맹맹이 소리라도 할라치면 이상한 여자 보듯 했다. 한없이 부드러워진 내 목소리가 간지럽지도 않나. 그는 눈은 떴으되 아직 깨어난 사람 같지 않게 미동도 없다.
그의 손을 잡아끌며 일어나자고 하는데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신호다. 거의 누워만 있으니 시간 개념이 없어진 그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을 잘 못한다. 그의 손을 놓고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을 연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가는 남편은 흡입기로 안개를 쭉 빨아들여 풀어놓으면 안갯속에 떠 있다고 신기해하려나.
"오늘은 날이 좋으려나 봐. 안개가 잔뜩 꼈어."
건너 산등성이를 지워버린 안개, 방 안 깊숙이 밀려 들어올 줄 알았더니 창밖에서 주춤주춤 안개 춤만 춘다. 야속하기 그지없다.
오늘 아침은 감자브로콜리수프다. 감자와 브로콜리 양파, 우유와 버터 소금만 있으면 수프를 만들 수 있다. 치킨스톡을 좀 넣어준다면 어느 브런치카페에서 판매하는 맛 못지않다. 즐겨 먹지 않으면서 어디 어디 좋다는 말에 사게 되는 식품이 브로콜리다. 사기만 했지 냉장고 안에서 노랗게 변해가는 걸 볼 때도 있었는데 수프를 만들고부턴 그럴 일이 없다. 브로콜리수프는 부드럽고 향이 좋아 자주 먹게 되는 우리 아침 메뉴 중 하나가 되었다.
항암을 하게 되면서 남편 음식의 변천사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술술 넘길 수 있는 죽을 끓였다. 온갖 야채에 영양 생각해서 고기든 해물이든 넣어서 끓여놓으면 식욕 없는 남편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잘 먹었다. 특별한 재료가 아닌, 냉장고 동기들 소집해서 만들면 되니 번거롭다 여길 것 없이 뚝딱 해내곤 했다. 거의 매일 하는 일이라 요령이 생기고 맛도 좋아졌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그 부드러운 걸 먹으면서도 웩웩거렸다. 먹는 양도 형편없이 줄어들더니 지나가는 말로 우동 이야기를 하곤 했다. 편의점 가쓰오 우동을 시작으로 온갖 우동을 사다 날랐다.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멘노스나오시 쯔유즈키’ 우동면을 잔뜩 사기도 했다.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 먹으면 질릴까 봐 멸치국수로 바꾸기도 하고 다양한 면 요리를 찾아가며 그의 입맛에 아부했다. 당이 높은 사람에게 면이 최악이라지만 좋다는 건 다 제치고 환자가 먹고 싶어 하니 별도리가 없었다.
우동에 싫증이 났는지 어느 날 칼칼한 짬뽕을 먹어보자고 했다. 맛있는 짬뽕을 찾아 중국집을 헤맸지만, 남편 입맛에 맞는 짬뽕을 발견하지 못한 채 탕으로 옮겨 갔다. 추어탕, 곰탕, 설렁탕, 갈비탕, 감자탕, 해물탕, 우거지 해장국, 내장탕... 면을 벗어난 것도 다행이고 영양으로 봐도 바람직해서 바깥 음식을 먹어도 그다지 걱정을 안 했다. 점심때면 어느 동네 어느 집으로 갈까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뜬금없이 곱창전골이 먹고 싶다고도 하고 아귀찜을 찾기도 했다. 자극적이긴 해도 그가 원하면 기꺼이 달렸다. 그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감했다. 검색에 검색, 맛있다고 소문난 탕 종류를 사다 쟁이기도 했다. 바꿔가며 먹을 수 있으니 질리지 않고 꽤 오랜 기간 남편의 입맛을 잡아줬던 것 같다.
죽, 우동, 짬뽕, 탕으로 바꿔가면서도 변함없이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음식은 따로 있다. 허름하긴 해도 깔끔한 집, 테이블이 몇 되지 않는 식당의 손칼국수다. 남편이 예전부터 단골로 다니며 먹던 음식이다. 남편 당뇨가 심해지자 내가 밀가루 음식 좀 줄이라고 잔소리깨나 했을 것이다. 남편은 칼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편도 40분 거리를 기꺼이 걸어서 왕복했다. 항암하고 퇴원해서 집으로 올 때도 그 집 칼국수만 생각난다고 해서 들러 오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칼국수지만 지금은 잊힌 이름이다.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든 갈 텐데 꿈도 꾸지 않는 듯하다. 남편이 좀체 못 먹고 늘어져 있던 날, 원래 포장은 안 되는 집이지만 사정 이야기를 하며 포장 좀 해주면 안 되느냐고 떼를 썼다. 암 말없이 칼국수 밀대만 밀어대는 사장님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폐만 끼치는 것 같아 그냥 물러났다. 그 나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고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때는 참 서운했다.
크게 넘어진 후 음식점 순례는 예전 이야기가 되었다. 뇌진탕 후엔 모든 먹는 거 자체를 거부한다. 그가 좋아하는 도돌이표의 빵을 들이밀어도 반기지 않는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 요리 프로를 볼 때였다. 골뱅이 부추무침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예전 골뱅이 넣고 만든 비빔국수를 좋아했던 그였기에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강하게 고갤 저었다. 점심 먹을 곳을 찾기 위해 나의 레이더망이 고장 날 지경인 적도 있었는데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내일 걱정으로 오늘 못 누리고 사는 사람 허다하다. 나부터!
아침은 수프였으니 점심은 쇠고기 야채 솥밥에 순하게 끓인 배추된장국이다. 그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없으니 내가 먹이기 편한 걸 만든다. 씹지 못하고 후루룩 삼키기만 한다면 죽을 쒀야 옳지만 쌀 한 톨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욕심에 솥밥을 해서 먹인다. 야채를 듬뿍 넣고 소고기나 전복, 굴을 넣어 솥밥을 해놓으면 그런대로 영양도 충족되고 떠 넣어 주기도 좋아서 자주 하게 된다. 아무리 영양 만점으로 해놓아도 대여섯 번 받아먹다가 입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대여섯 번을 위해 쌀을 씻곤 한다.
애써 식탁 앞에 데려다 앉혔는데 그는 혼자 떠먹는 것을 잊은 듯 마냥 앉아 있다. 내가 그의 수저를 든다. 그는 순하게 입을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