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흘리는 눈물
뇌진탕 후 남편은 귀가 윙윙거리고 말이 잘 안 들린다고 한다. 가까이에서도 큰 소리로 말해야 소통이 된다. 이비인후과 진료 예약이 잡힌 날,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비가 내리는 걸 알아차린다.
세찬 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와이퍼가 끊임없이 차창을 밀어줘야 할 만큼 쉼 없이 내린다. 그 빗속을 차는 기고 있다. 속도를 못 내는 것도 내 탓인 양 옆 좌석 남편에게 신경이 쓰인다. 어제 잠을 못 잔 그에게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 좀 자두라고 말한다. 못 들었나 싶어 조금 더 큰소리로 반복한다.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듣고도 모른 척하는지 앞만 보고 반듯하게 앉아 있다. 혈색 하나 없는 얼굴은 흡사 밀랍 인형 같다.
차가 속도를 낼 때는 음악이 소음에 불과하지만 가는 듯 마는 듯 땅에 붙어 길 때는 음악이라도 있어야 한다. 라디오를 켠다.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난다는 어느 청취자의 신청곡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가 흐른다. 귀에 익숙한 곡이다.
볼륨을 조금 높인다. 남편을 태우고 병원 가는 길이 아니라면 빗속 운전이 얼마나 낭만적일까. 너무도 친숙한 바이올린 선율이 사람 마음을 쥐고 흔든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만 흔들리고 싶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가 옆에 있는지 나 자신이 누군지 다 잊고 음악에 빠져들고 싶다. 비야, 계속 내려라. 길아, 뚫리지 마라. 음악에 취해 비에 취해 이 안갯속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다. 휴우~! 숨을 내쉰다. 내 안의 숨 한 줄기를 끊어내려 눈을 감았다가 떠보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건 뭐지? 내리는 비처럼 하염없이 흐르는 이건 뭐지. 새는 걸 어쩌지 못해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을 뻗어 가까스로 휴지를 꺼낸다. 안경알을 들어 올리고 눈물을 닦는다. 운전 중 이러는 건 정말 아닌데 어째야 하나. 남편이 알아차릴까 소리를 죽인 채 흘리는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울고 싶었다. 울어나 보고 싶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울 장소가 없었다. 울 시간이 없었다. 울 이유가 너무 많아 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운전 중, 나에게 자기의 모든 걸 의지하는 남편이 타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눈물도 때와 장소가 있는데...
문득 귀에 이상이 있는 그에겐 이 아름다운 선율마저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급하게 라디오를 끈다.
강변북로를 겨우 벗어나 더 밀리는 서부 간선 구간이 남은 현재 이미 병원에 도착해야 했을 시각이다. 한바탕 흘린 눈물 때문일까. 예약한 시각이 지났음에도 조바심이 생기진 않는다. 안달해 봐야 달라질 게 없을 때는 그런 무심이라도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것일까.
서부 간선 지하차도와 지상 도로를 지날 때마다 갈등했다. 지하 유료와 지상 무료가 대개 10분 차이가 난다. 평소엔 갈등 없이 지상을 이용한다. 오늘처럼 시각을 다툴 땐 유로 도로인 지하가 유혹적이다. 지하도에 들어가면 독한 감기약이라도 먹은 듯 몽롱하지만 늦었으니 할 수 없다. 악어 입속 같은 지하로 방향을 튼다. 유료인 지하로 들어갔는데도 얼마 정도 지나니 정체는 마찬가지다. 혹 속도를 내는 차가 있을까 봐 그러겠지만 정체 구역이 있으니 속도를 줄이라는 멘트가 계속 나온다. 속도를 내려야 그럴 상황도 아닌데 확성기 꽝꽝 울려대며 그런 멘트를 계속 내보내는 몰행정에 화가 난다.
그러지 않아도 아까부터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남편 귀에 저 횡포가 어떻게 들릴까.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자꾸 움직이고 안절부절못하는 게 역력하다. 운전 시작할 때 이미 안전장치를 누르긴 했어도 남편의 불안을 어째야 하지. 딸에게 전화한다. 아빠의 관심을 돌릴 수 있게 얼른 문자를 좀 보내라고. 자기에 함몰된 사람이 문자 온 걸 알아차리겠냐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나야말로 몽롱한 채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드라마틱한 이동 사연에 비해 이비인후과 진료는 싱겁게 끝이 난다. CT에서 남편의 귀의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단다. 귀에서 소리가 나고 남의 말을 잘 못 듣는 이유는 뭐냐고 물으니 단 한 마디, “노인성이죠. 뭐” 한다. 뇌진탕 후유증이 아니냐는 말에 단칼에 아니라고 자른다. 한 달 가까이 고통을 받았는데 참 간단하다. 귀 때문에 항암도 못 한다고 했더니 항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 온 김에 보청기 상담이나 받아보라고 한다. 남편에게 거의 악쓰듯 의사 선생님의 말을 전한다. 보청기 상담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의사가 뇌진탕 후유증이 아니라고 자른 것 못지않게 보청기에 단호하다. 보청기라는 말에 질겁하는 걸 보니 노인 맞다. 청력이 떨어졌을 뿐 귀에 이상이 없다는 건 다행인데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집을 향해 차를 몬다.
비는 그쳤지만 끄무레한 하늘, 딱 내 꼬락서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