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걸려오는 전화
“아버지! 전화 소리가 자꾸 끊기고 잘 안 들려요.”
올해 들어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신다. 어떤 날은 서너 번 넘게도 전화가 온다.
어머니가 옆에 계시면 ‘왜 그렇게 전화를 자주 하냐’며 뭐라 하신다는데,
어머니가 동네에 나가 계실 때 전화를 주신다.
폰으로 전송해 드린 손주들의 사진을 보고 기뻐하신다.
예순이 넘은 우리를 여전히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아흔! 아버지의 농사
올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둑의 풀을 베고, 농약을 치며 직접 농사를 지으신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벼가 잠기고 병충해가 번졌다며 상심해하셨다. 만류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새벽에 논으로 나가 점심 무렵에야 집으로 들어오신다.
얼마 전에는 농약을 치신 후 며칠을 힘들어하셨는데, 그 이후 잠긴 목소리를 듣는 내 마음도 같이 무거워졌다.
아버지의 기억들
아버지는 군 생활 때 모은 봉급으로 제대하면서 책상을 사셨고, 그 책상은 지금도 아버지의 오랜 친구처럼 곁을 지키고 있다.
우리 오 형제가 어릴 적,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에 방 윗목 단지에 고구마를 가득 저장해 두시고 겨울 내내 깎고 구워 먹게 해 주셨다.
논어, 맹자, 주역 등 빨간 표지의 전집을 사 오셔서 읽게 하셨지만, 어린 우리에게는 그저 어려운 책이었다.
평소 한자와 유학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향교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며, 여름방학마다 어린이들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치시고, 초중고 예절학교에서 '가훈 써주기' 활동을 하셨다. 아버지에게는 늘 학자의 깊은 향기가 느껴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농한기에 도시로 일을 나가셨다가 사흘 후 저녁 무렵 마당에 들어서며 나를 부르시던 힘없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무엇을 하려 가셨는지 말씀은 안 하셨지만 공사장 일이었을 것이며,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마음이 아리다. 즐겨하시던 술과 담배를 끊으셨던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힘없는 목소리, 안타까움
요즘 아버지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예전에는 자전거에 쌀 두 가마니를 한 번에 실어 농협까지 나오셔서 자식들에게 보내셨는데 이제는 힘에 부치시는지 한 가마니씩 나누어 실으신다. 어떤 날은 논둑에서 풀을 베다 문득 눈물이 났다며 전화를 하신다. 지난해 떠나보낸 큰아들이 생각나서 그러신 거 같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 차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새 전화기
확인해 보니 아버지 휴대전화는 벌써 5년이 넘은 기기였다.
교체하자고 하니 돈이 든다며 고개를 저으셨지만, 비싸지 않다고 말씀드려 아버지와 어머니 휴대폰을 새로 마련해 드리기로 했다.
며칠 뒤 다가오는 아버지 생신에 맞춰, 벌써 마음은 고향집 부모님께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