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큰아이와 떠났던 첫 해외여행이 떠오른다.
특히, 광복절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내와 함께 가려던 첫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둘째가 신병 훈련소에 입소해 훈련 중이었기에, 아내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큰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늘 그렇듯 여행 가방은 아내가 꼼꼼히 챙겨주었다.
하지만 나는 구멍이 뚫려 무효화된 여권을 챙겼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사 가이드에게 발권을 위해 여권을 맡기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이드가 헐레벌떡 뛰어와 내 여권의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구멍까지 뚫려 있었다.
여권에 붙은 미국 비자의 유효기간이 남아 있어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권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국경일이라 인천공항 임시 여권 발급 사무소도 쉬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아내는 나와 큰아이가 여행을 떠나자, 지인들과 동탄에 가 있었다.
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유효기간이 지난 여권을 가져와 출국할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와 여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여권을 찾더라도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을 일행에게 부탁하고,
200만 원이 추가로 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음 날 비행기로 출발하겠다고 안심시켰다.
아들과 일행, 가이드는 발권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동탄에 있던 아내는 택시를 타고 분당 집으로 향했다.
기사를 기다리게 한 채 집 안과 차량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여권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스캐너 속에서 잠자고 있는 여권을 발견했다.
큰아이가 여행사에 여권을 스캔해 보낸 후 스캐너에서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여권을 들고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10분이 멀다 하고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는 내 전화에 아내는 기사님께 급한 사정을 이야기해 보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폭우라 더 이상 속도를 내는 건 무리라는 기사님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다행히 발권하는 대한항공의 직원이 창구 앞에서 여권이 도착하기를 함께 기다려주셨다.
다음 비행기 편 탑승 수속을 위해 발권 창구를 내어주고, 가방을 든 채 창구 앞에서 함께 기다려주시는 직원의 배려에 짙은 미안함이 밀려왔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출발 전까지 여권이 도착할지도 알 수 없는데,
만삭의 몸으로 기다려주셨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비행기 출발 시간이 2시간 늦춰졌다는 자막이 전광판에 떴다.
빗속을 달려온 아내가 공항에 도착하자 택시 정류장으로 달려 나가 여권을 받아 들고 황급히 비행기 티켓을 발권했다.
항공사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보안 검색대를 지나 게이트로 달려오니 탑승 마감 직전이었다.
마지막까지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큰아이와 비행기 탑승을 마치자, 비행기가 곧바로 출발했다.
자리에 앉자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마음 깊이 감사 기도를 했다.
속을 새까맣게 태웠던 여행 가이드는 급기야 속이 탈이 났다.
그렇게 큰아이와 첫 해외여행을 했다.
지금도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비행기의 출발 지연, 만삭의 몸으로 애써준 항공사 직원을 잊을 수 없다.
그때의 아슬아슬했던 기억으로 해외여행을 할 때는 여권을 직접 챙기고 여행 짐도 직접 꾸린다.
둘째는 신병 훈련소에 있을 때, 아버지와 형이 해외여행 중이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레이저를 쏘아 보낸다.
재작년 여름에는 아내와 두 아들, 며느리와 여섯 가족이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함께하지 못해 많이 미안하다.
제2의 인생을 출발하며 올 하반기에 아내와 해외여행을 준비 중이다.
그해 여름 드라마 같던 해외여행(2012.8.15)을 떠올릴 때면,
숭숭 뚫린 여권의 구멍 사이로 그때의 긴장감과 안도감이 서늘한 바람처럼 지나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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