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기억될 시간들에 대하여
1화) 벼랑 끝에 선 시간
"뇌수술을 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습니다."
2024년 11월 25일 초저녁, 서울의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들려온 말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해 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형님은 119 구급차에 실려 이곳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형을 앞에 두고, 병원은 3시간이 넘도록 CT 촬영과 혈압을 낮추는 처치 외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뇌 수술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서 수술을 못합니다.”, "언제 수술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의료대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수술할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달라는 애원에도 병원 간의 연락은 이뤄지지 않았고,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국가 응급 시스템에 다시 도움을 청했지만, 이미 서울 5대 병원으로 후송했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라는 말과 함께.
결국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직접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정년 퇴직한 지 1년 남짓, 누구보다 건강했던 형입니다. 구급차로 옮겨지는 중에도 스스로 무릎을 세우고 코를 골기까지 했는데...
4시간 가까이 흐른 뒤에야 겨우 사설 구급차를 타고 경기도의 한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찍은 CT 사진 속 형의 뇌는 이미 너무 많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의료진과의 힘든 대화 끝에 수술 동의서를 쓰고, 날이 바뀌어 형이 쓰러진 지 8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서로 연결된 존재입니다. 한 사람의 빈자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남은 가족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버립니다. 마법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가족 #그리움 #병원
2화) 첫눈, 그리고 희망의 빛
늘 그랬듯 9401번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수요일.
하지만 오늘 저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형을 만나 사진을 배우고, 함께 출사를 떠나던 그 길이 아닙니다.
어깨에 메던 카메라도 없이,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형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갑니다.
"동생, 렌즈를 당겨봐. 이런 구도로 찍어봐."
다정한 목소리로 사진을 가르쳐주던 형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버스 창밖으로 첫눈이 내립니다.
형에게 설경 찍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형에게 보여 주려고 눈 내리는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 눈앞이 흐릿해집니다.
중환자실 입구에 앉아 하염없이 형을 기다립니다.
하루 단 15분, 가족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면회 시간. 형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 형이 힘을 내길 바라며 차가운 복도를 지킵니다.
며칠 뒤, 주치의 교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CT 촬영 결과 다행히 출혈은 멈췄다고 합니다.
3일간의 저체온 치료를 끝내고, 수술 전 5단계 중 4단계까지 치솟았던 위험 수치도 2단계로 떨어졌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힘겹게 의식을 붙잡고 있는 형이 고마웠고, 의료진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달이 바뀌어 12월이 되었습니다. 날짜가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형이 쓰러진 지 일주일. 오늘도 저는 중환자실 입구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흐르던 눈물도 이제는 마르고, 깊은 한숨만 새어 나옵니다. 하지만 나약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희망의 마음으로 오늘도 형을 만나러 갑니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온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희망 #첫눈 #사진
3화) 절망의 끝에서 형은 울고
희미하게 보이던 빛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제 오후, 결국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형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소식을 듣고 집 뒤 대밭에 나가 하염없이 대나무를 베셨고,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못하고 골목을 서성거리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일이 생겼냐"며, "네 형이 깨어날 수 있겠냐"며 두 분은 번갈아 전화해 우십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듯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형수님은 날카로운 말들로 우리를 할퀴었습니다. 왜 수술을 하자고 했냐는 원망이 동생들에게 향했습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얼마나 클지 알기에, 그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며 곁을 지켰습니다.
어젯밤, 레지던트는 제게 전화로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현상 유지 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늘로 9일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주치의는 뇌가 부어 중뇌까지 손상되었고, 동공 반응이 없으며, 앞으로 5일이 식물인간으로 가느냐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마저 잘라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은 듣고 있었습니다.
둘째 딸이 면회할 때 눈물을 흘리셨고, 셋째 딸이 면회할 때는 눈물이 맺히셨다고 합니다. 첫째 딸이 "아빠, 나 안 보고 싶어?"라고 묻자 또르르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수술 후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형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저체온 치료를 할 때는 동공 반응도 좋았는데, 정상 체온으로 올리면서 뇌압이 높아져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의사의 설명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다른 무엇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형이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만, 우리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만 붙잡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형에게 회복의 기적을 내려주십시오.’
#기적 #눈물 #부모님
4화) 사랑하기에, 이별을...
갑자기 주치의가 가족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이틀 전에 면담을 했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치의는 더 이상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뇌가 까맣게 변해 뇌사 상태 수준입니다. 연명치료를 이어갈지, 편안하게 보내드릴지 월요일까지 마음을 정해 알려주십시오."
인공호흡기를 떼면 바로 돌아가실 거라는 말과 함께. 쓰러진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눈앞에 닥친 현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다오."
아버지는 전화기 너머로 절규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형이 사랑했던 가족들이, 형을 사랑했던 가족들이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조카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빠가 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함께한 시간들을 기억하며, 아빠를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어요. 더 이상 고통 없이..."
야속하게도 월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결국 연명치료 중단 서류에 형수님과 조카가 서명을 했습니다. 그 작은 손이 떨리는 것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형, 고마웠어요. 우리 마음속에 형은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하늘에서 아프지 마시고, 우리 가족들 잘 지켜봐 주세요."
형의 얼굴과 손, 발을 만지며 그 따뜻함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날 밤, 병원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형의 혈압이 35까지 떨어져 위독하다고 했습니다. 급하게 가족들이 모여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녹음해 간 부모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려드렸습니다. "우리 아들..." 부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형의 눈가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혈압이 50까지 다시 올랐습니다.
형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조금 더 주고 있었습니다.
#눈물 #사랑 #이별
5화) 형의 마지막과 남겨진 사랑
[떠나보내던 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후에도 형은 며칠을 더 우리 곁에 계셔 주셨습니다.
손을 주무르고 말을 건네면 혈압이 오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시던 형님은,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원래 우리 사촌 형제까지 모두 모이는 가족 모임이 예정된 날이었습니다.
형님은 남은 가족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시고, 모임을 하기로 한 바로 그날에 우리 모두를 모이게 하셨습니다.
평범하던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습니다. 영정 사진 속 형님의 온화한 눈이, 남겨진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형의 삶, 형의 사랑]
어젯밤 꿈에 형이 찾아왔습니다.
시골집 마당 평상에 누워계시다가,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40대 청춘의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릴 적 나는 두 살 위인 형을 유독 따랐습니다. 그림을 못 그렸던 내 숙제를 도와줘 칭찬을 받게 해 준 것도 형이었고, 연탄가스가 새어 나오던 자취방에서 나를 구해준 것도 형이었습니다. 장남이었던 형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군에 갔고, 제대 후 곧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가족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이었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아 힘들어했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 형이 은퇴 후 찾은 행복이 바로 '사진'이었습니다. 매일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 가방을 메고 경마장, 궁, 숲, 야경, 불꽃놀이 등 전국의 출사지를 열정적으로 누비셨습니다.
내게 카메라를 사도록 은근히 유혹하고, 작년 7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함께 출사를 다녔습니다. 행주산성의 노을, 하늘공원의 억새, 서울의 야경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청와대 풍경을 앵글에 담은 것이 형과 함께한 마지막 출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남겨진 이들의 시간]
형이 떠난 후,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운전을 하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설 명절, 든든하던 큰아들의 빈자리 앞에서 부모님은 힘없이 약해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슬픔을 잊으려 집 뒤 대밭에서 신우대를 베시고,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힘겹다고 하십니다.
49재에 형을 보고 왔습니다. 눈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쳐진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의 근육을 키워보려 합니다. 눈물도 아끼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마치며: 사랑의 유산]
얼마 전 형의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형은 7월에 있을 큰아이 결혼 소식에 참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뻐하며 조카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야 할 형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혼자 입장하는 조카의 뒷모습을 보며,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형님이 떠나신 후, 우리는 많은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말없이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얼마나 큰 사랑의 시간이었는지를.
이 기록은 형님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닙니다. 형님이 남기신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다짐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사랑을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을 더 따뜻하게 모시고, 형수님과 조카들과 힘써 함께하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 형님이 보여주셨던 따뜻함을 실천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입니다.
#우리 #기억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