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채색된 여인의 모습이 찹 곱다.’
연잎과 연꽃이 둘러싼 가운데 서 있는 이는 마치 젊은 날 어머니의 모습 같다.
파랑과 빨강, 여러 색깔로 선을 따라 정성스레 색칠하신 어머니의 손길이 정갈하다.
선에 맞추어 잘 색칠된 그림을 보며, 나는 어머니의 삶도 늘 곱게 정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을회관에서 그리기 취미 활동을 하시고, 좋아하시는 동네 친구분들과 가끔씩 외식을 하셔서인지 예전보다 얼굴이 조금 좋아지셨다.
팔순을 훌쩍 넘기셨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기억력이 좋으시다. 젊은 우리도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저장된 번호를 눌러서 전화를 하는데, 어머니는 자식과 손주, 동네 어르신들의 번호까지도 휴대폰에 저장하지 않고, 모두 외워 휴대폰 버튼을 눌러 전화를 하신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강인했다. 내가 도시에서 자취하던 시절, 반찬을 싸들고 오시던 길에 버스가 급정해 넘어지신 적이 있었다. 기사는 그냥 가버렸지만, 아버지와 함께 버스 회사를 찾아가 운전기사를 찾았는데 모두가 발뺌하는데, 어머니가 한 운전기사를 지목하자 결국 본인이 운전했다고 시인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머리가 좋으시고, 음식 등 먹거리를 준비하시면 손이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
노래를 잘하시고 흥이 있으셨던 어머니는 노래를 세 번만 들으시면 따라 부르시기까지 하셨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오래전 추석 명절 때 시골에서는 마을 광장에 콩쿠르대회를 열었다. 고향에 계신 분들과 도시에 나간 이들이 모두 나와서 노래 경연을 펼쳤는데 어머니는 출전하실 때마다 1등 아니면 2등을 하셨다.
아버지는 술 한잔 거하게 마시면 가락이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시면서 어머니 노래를 칭찬하곤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버지를 닮아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거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젊으실 적에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막내로 결혼 초에는 큰 댁에서 더부살이를 하셨다. 화장실과 거름창고가 붙은 별채에서 내 아래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사셨다. 낮에는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하시고, 밤늦게까지 호롱불에 의지해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셨다.
몇 년 뒤 옆 골목 꼭대기에 있는 이웃의 별채에 세 들어 살다가 힘드시게 일하셔서 논도 늘리고 같은 동네에 있는 지금의 집을 사서 이사를 하셨다.
농사도 지으시고, 농한기에는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다른 도시를 다니며 파셨고, 쌀겨며, 은행 열매, 대나무까지도 팔아 오 형제를 공부시켰다.
시대 상황과 가난으로 못 배우신 세대였지만, 자식들만큼은 가르치시려는 일념이셨다.
오 형제를 다 가르치신 뒤에도, 맞벌이를 하는 막내동생네 두 손주를 돌보시며, 초등학교 하원까지 책임지셨다. 어머니는 늘 자식과 손주를 먼저 품어내셨다.
세월이 흐르며 건강이 약해지셨다. 허리도 좋지 않고 입맛도 잃으셨다.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장철만 되면 손수 김치를 담가 우리에게 보내신다.
“올해는 그만하시라”라고 만류해도, 김장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김장을 담그실 거다.
어머니는 양념을 만드시고, 아버지가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이시고 배추를 버무리시기까지 하며 어머니를 도우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머니, 아버지 손맛이 배인 김치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그 맛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살아온 세월이자 사랑이다.
얼마 전까지는 어머니가 입맛이 없으시다고 식사를 잘 못 하셔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에 뵐 때는 식사도 많이 하시고 얼굴도 좋아지셨다.
어머니의 식사 한 숟가락이 우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안도하게 해 준다.
두 분이 구순에 가까워 오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진 듯하다.
때로는 두 분이 다른 목소리를 내실 때 무겁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 또한 세월이 빚어낸 부부의 모습일 것이다.
대화 중에 가끔은 다른 생각들을 보이시지만 두 분이 함께 의지하시면서 지내시니, 자식들은 큰 힘을 받는다. 젊을 땐 아버지의 목소리가 크셨지만 지금은 확실히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크신 거 같다.
며칠 전 아버지 생신에 고향에 다녀오며 ‘두 분이 사이좋게 지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올라왔다.
부모님을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매번 부모님이 서운하고 허전하시다며 전화를 하시는 데 그날은 두 분 다 전화가 없으셨다.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 분께 똑같이 용돈을 드렸는데 어머니가 아버지께 드린 용돈의 절반을 달라고 하셨단다. 다음 날 속상하시다며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퇴직을 하고 감사의 편지와 함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렸다.
부모님께 드린 용돈이 얼마인지 서로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아버지가 돈을 받아 헤아리는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와 같은 금액임을 아신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준 용돈까지 모아서 선산에 납골묘를 만드실 계획을 하신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매일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요즘은 아버지가 매일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인지 어머니와의 전화통화가 뜸해졌다.
딸을 바라시다 아들만 다섯을 낳으셨다. 다정하게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친구 같은 딸이 없어 서운하실 수도 있으실 거다.
다행히 아내는 어머니께 자주 이런저런 안부 전화를 곧잘 하고 있다.
나는 바란다.
두 분이 용돈을 아끼지 마시고, 어머니는 식사를 잘하시고, 아버지는 농사일, 산밭일, 대밭일 등 일을 조금 줄이셨으면 한다.
두 분이 함께 이룬 삶의 무게로 오순도순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