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된 손녀, 그리고 둘째 아들 부부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여행의 목적지도, 스케줄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책 한 권 들고, 부산의 숙소 하나만 정해 떠나는 기차 여행.
예전 같으면 볼거리, 즐길거리 등 스케줄을 촘촘하게 짜서 떠났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쩌면 5개월 손녀의 시간에 우리가 맞추어야 했기에 자연스러운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이란 생각을 낳는 산파와 같으며 내적인 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움직이는 기차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아기를 안고 차창 밖을 보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유모차를 끌며 낯선 거리를 걷는 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3일 동안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리는 그 지역의 명소를 애써 찾지 않았다. 모자를 쓰고 비를 맞으며 숙소 주변의 바닷가를 산책하며 카메라 앵글에 바다와 일출을 담았다. 이틀 내내 떠오르는 태양이 해무에 가렸으나, 해무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이 오히려 신비로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침에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를 안아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도 갈지 못한 채 한 참을 대기시킨 택시로 지하철까지 이동하며 시작한 여행.
그저 5개월 손녀와 눈을 맞추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여유롭게 서점에 들러 아내에게 그림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고,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닌 '어떤 마음이었는가'를 묻는 여행이었다. 그곳에 겸손하게 다가가 현지인들의 삶을 보고 스며들려 했던, 어쩌면 내 삶의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 여행이었다.
우리의 삶도 언젠가 떠나야 하는 여행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