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광복절에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었다. 아내와 첫 해외여행으로 여행사와 계약까지 마쳤다.
둘째가 마침 군에 입대해 신병 훈련 기간 중이라 아내는 머뭇거렸다.
결국 아내가 여행을 포기해, 대신 큰 아들과 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퇴직 후 올해 가을, 함께 영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일찍부터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떠날 시기가 다가오자, 아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음에 가자”며 미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다른 일들이 생겼고, 나의 여행 목적 중 하나였던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 경기 직관의 꿈도 그가 미국으로 이적하면서 희미해졌다. 결국, 여러 일과 아내의 미적거림으로 인해 올해의 여행은 무산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면 다음 주에 우리는 영국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를 보고 올드 콤프턴 스트리트(Old Compton Street)를 거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의 모습을 닮은 그림책 한 권이 떠오른다.
짧은 문장과 부드러운 그림 속에, 삶의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비드 칼리의 「인생은 지금」에 노부부가 등장한다.
은퇴한 남편은 아내에게 ‘함께’ 여행을 제안하지만, 아내는 지금은 말고, ‘내일’을 말한다.
함께 외국어를 배우자는 제안도, 악기를 배우자는 제안도, 낚시를 가자는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라는 남편과, “그런데, 지금은 말고, 내일”을 되풀이하던 아내의 ‘줄다리기’는, 결국 ‘인생은 오늘’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부부가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약속, 미루고 있던 꿈들 사이에서
우리는 늘 ‘나중에’를 말한다.
하지만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삶은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니까.
‘오늘’이라는 하루가 바로 인생이다.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