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책, 길을 가다가

by 마음의여백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삼십 년도 훨씬 지났고 가락시장 건너편 주변도 많이 변해 이제는 어느 건물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기억 속에서 그 건물 바닥은 유난히 넓었다.

세월이 흘렸어도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손재주도 없었다.

망치를 잡는 일도 그때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생각이 많아지자 망치질은 자꾸 빗나갔고,

몇 번이나 망치가 손가락을 향했다.

통증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살고 있던 집주인이 노가대 십장이었다.

그의 제안으로 시다 일을 나가게 되었다.

일이 서툴고 진척이 더디자 가벼운 질책도 따라왔다.


새벽부터 온종일 이어진 노동은 길고 무거웠다.

집에 지쳐 돌아와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 다시 집을 나섰다.

일터가 아닌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목적지를 묻지 않은 채, 곧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현실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청년의 무의식적인 도피였다.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버스에 내려 보니 청주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삶의 현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모임 때문에 청주 터미널을 다시 찾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뒤라 그때 그곳이 맞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석양이 버스 창가로 비춰 들어올 때,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

앞날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며칠 뒤, 노가대 십장과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핀잔을 들었고, 하루치 노임도 받지 못했다.


그 후로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도시에 하나뿐이던 공공도서관을 다녔다.

늦으면 한두 시간씩 밖에서 줄을 서야 했다.

차례가 되면 100원을 내고 들어갔다.


주머니에는 하루 용돈 천 원이 전부였다.

자격증 시험을 두 개를 준비했고, 하나는 땄지만 주력하던 자격증은 떨어졌다.


볼펜 만드는 회사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000 시험을 준비했다.

가장으로서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아내가 주는 천 원으로 도서관에 다니는 것이 미안했다.


도서관 근처에 있는 소시지 회사에 들어갔다.

긴 장화를 신고 차가운 물에 담긴 돼지 내장을 씻는 일이었다.

그 안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작업도 했다.


내 또래는 없었고, 모두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고무 대야 속 내장을 씻으며 눈물이 맺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루가 마치 사십팔 시간처럼 길었다.


퇴근길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부에 집중하자고.


그리고 두 번째 도전 끝에 합격했다.

첫 월급은 이십육만 원쯤 되었던 것 같다.

그 직장에서 삼십 년 넘게 일했다.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기쁨도 있었고,

슬픔, 고난도 있었지만 견뎌냈다.


돌아보니

그 시절은 덜어낼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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