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다시 보게 될까
<사흘이 주어진다면>을 읽으며
‘사흘’이라는 시간의 짧음이 아니라,
그 사흘을 대하는 헬렌 켈러의 태도에 오래 마음이 머문다.
태어난 지 열아홉 달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고도
그는 늘 세계를 부족함이 아닌 충만함의 언어로 말한다.
만질 수 있었기에 기뻤고,
이름을 알게 되었기에 자유로웠으며,
배울 수 있었기에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헬렌은 말한다.
만약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은 사람의 얼굴을 보겠다고.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이들의 눈을 오래 바라보겠다고.
함께 살면서도
습관처럼 지나친 얼굴들,
고마움을 알면서도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한 시간들.
우리는 언제부터
사람을 ‘보는 일’을
가장 나중의 일로 미뤄두게 되었을까.
둘째 날,
헬렌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는다.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영혼을
하루에라도 더 많이 보고 싶어서.
보이지 않아도
그는 이미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지만,
보고 싶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배움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며 살아왔을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었음에도
배움을 종종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놓지는 않았는지.
헬렌은
점자가 닳도록 책을 읽었다고 했다.
열에 하나밖에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읽었다고 했다.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질문과 사유를
중간에서 내려놓았던가.
셋째 날,
그는 도시 한복판에 서서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웃음과 고통,
자부심과 동정을
그 모든 감정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마지막 밤,
비극이 아닌 코미디를 보러 간다.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웃음을 선택하는 그 마음 앞에서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나는 내 삶의 무게를
너무 심각하게만
견디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흘은 결국 지나가고
헬렌은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그 사흘의 기억이
이후의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만지는 모든 것 위에
겹쳐질 것이라고.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책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흘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지금 이 하루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이미 충분히
기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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