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도울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빛과 실」을 읽으며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남은 것은
작가의 질문이 아니라
결국 나의 질문이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한강 작가는 일곱 살 때 노트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금실’.
금실은 단지 가슴과 가슴을 잇는 선이 아니라,
시간과 시간을 잇는 선일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나와
질문을 붙들고 있는 지금의 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
질문은 거꾸로 흐른다
이십 대 중반의 그는
일기장 맨 앞 페이지에 같은 질문을 반복해 썼다고 한다.
그는 오래도록 묻는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어느새 내 것이 된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쓰며
한 젊은 야학 교사의 기록을 읽는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두 개의 질문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이 단지 문학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이 현실에서 되풀이되는 장면을 보아왔다.
어떤 시대의 상처 속에서,
시민들의 외침 속에서,
심지어 대통령 취임사 속에서도.
소설은 현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현실이 소설의 문장을 빌려 말하기도 한다.
그 장면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목격해 왔다.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채식주의자에서
한 인간이 완전하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지를 묻고,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삶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폭력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묻고,
희랍어 시간에서는
연약한 인간의 온기를 통해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러
그 질문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7년에 걸친 집필.
열 권이 넘는 얇은 노트.
글쓰기가 작가를 밀어
생명 쪽으로 갔다고 그는 말했다.
만약 우리가 글을 통해 생명을 넘겨받는다면,
그 생명의 힘으로 다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북향 정원에서
책 속의 정원일기 대목을 읽을 때,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북향집.
거울의 위치를 바꾸어 햇빛을 모아
단풍나무와 블루베리에게 보내는 장면.
식물을 기를 때는 오직 그들이 잘 자라기만을 바란다.
상호작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잘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내 삶의 여러 관계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너무 많은 대답을 요구한다.
반응을 요구하고, 감사와 표현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랑이 정말 ‘금실’이라면
그저 조용히 연결되어 있는 상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글쓰기로 살아냈는가
‘더 살아낸 뒤’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오랜 질문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깊게 만나고 있는가.
나는 충분히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아직도 나를 미루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햇빛을 오래 바라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폭력의 반대편에 선다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그는 말했다.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가장 어두운 밤에도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고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일.
그래서 문학에는 체온이 깃들어 있다고.
나는 그 문장을 믿고 싶다.
글을 쓰는 일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폭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일일 테니까.
책장을 덮으며
『빛과 실』까지 읽고 나니
이제 한강의 책은 모두 읽었다.
그의 문장을 따라
폭력과 고통을 지나
사랑이라는 질문까지 걸어왔다.
글을 쓰기엔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의 문장들이 너무 맑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조심스러움 자체가
내가 아직 질문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모른다.
다만 믿고 싶은 것이 있다.
어린 날의 내가 적어두었을지도 모를
어떤 순한 믿음이
지금의 나를 조금은 붙들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내가 남기는 몇 줄이
언젠가 미래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줄지도 모른다는 것.
가슴과 가슴 사이를 잇는 금실처럼,
시간과 시간을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을 붙들며
나는 오늘도 몇 줄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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