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오직 신과 함께. 중세미술(13세기)
12세기는 십자군의 시대였고 1291년이 되어서야 전쟁은 종식되었다.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에서 중동으로의 군사적 이동뿐이 아닌 문화적 교류를 수반하였는데, 비잔틴 및 이슬람 문화의 발전된 기술과 장식 스타일은 서유럽의 건축가와 장인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제공하였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이 이슬람 학자들의 번역과 해설을 통해 서유럽에 재도입되어 중세 중후반 스콜라 철학의 발전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동방과의 무역 확대로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 이태리 도시국가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결국,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초석이 되었다.
이 전쟁의 주도 세력은 가톨릭 교회와 교황으로 전쟁이 실패로 끝나기 전인 13세기까지, 이들의 권력욕은 절정에 달했으며 곰브리치는 이 시기를 '대성당의 시대'라 규정하였다.
"13세기는 거대한 대성당들의 시대로 이 대성당에서는 거의 모든 분야의 미술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이러한 거대 건축 사업은 14세기와 그 뒤로도 계속되었으나 더 이상 그것은 미술의 구심점이 되지 못했다."_P 207/Story of Art
주교들 자신의 교회였던 이 시기의 대성당들은 대부분이 장대한 규모로 구상되었고 그 거대한 내부로 들어가 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 인간적이고 사소한 것들은 모두 왜소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중세의 상징과도 같은 고딕 건축의 시대가 십자군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십자군의 죄악이 커질수록 대성당의 규모도 함께 커진 이 상황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13세기의 대성당은 건축, 조각,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 작품으로 자리 잡았고 장인이었던 예술가들은 점차 정적인 조각에서 벗어나 인물의 표정과 자세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였고 회화에서도 성모자상이나 성인의 초상화에 섬세한 묘사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탐구가 시도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측면과 삶, 고난이 강조되기 시작한 때로 '신앙의 개인화'가 점차 강조되었고 둘째, 이슬람의 영향으로 고대 철학과 학문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인문주의적 사고'가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셋째, 스콜라 철학 등의 영향으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여 신앙이 단순히 초월적인 것만이 아닌 인간 경험과 결합될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을 꼽을 수 있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미술가들은 아름다운 육체의 이미지를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고딕 미술가들에게는 이 모든 방법과 기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그 목적은 성경의 이야기를 한층 더 감동적으로, 그리고 신빙성 있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작품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신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위안과 교화를 받게 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_P 193/Story of Art
중세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초상의 개념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사람이나 물건을 앞에 놓고 그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선 것으로 인습적인 인물을 하나 그리곤 그 사람의 직함을 나타내는 표상, 즉 왕에게는 왕관과 홀, 주교에게는 주교관이나 홀장을 그려 넣고 초상 아래에 이름을 써 놓았다. 이러한 사유는 미술이 종교적 주제와 상징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개인의 특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신앙을 전하고 경건함을 표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홀(Scepter):왕이 들고 있는 막대기 모양의 물건, 주로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고 보석으로 장식되기도 함.
*홀장(Crozier):주교가 들고 있는 지팡이 모양의 물건, 길고 끝부분이 곡선으로 휘어져 있음.
그러나,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영국에 난생처음 코끼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영국 왕 헨리 3세에게 당시 희귀 동물인 코끼리를 선물로 보냈으며, 런던탑에 전시하여 일반인들도 관람이 가능했다.
위 코끼리 그림을 보면 "실물과 그다지 닮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흥미 있는 점은 화가가 정확한 비례를 얻어내려고 대단히 고심했다는 사실이다. 같이 그려진 사육사의 크기를 보고 이 짐승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 코끼리가 약간 어색해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적어도 13세기의 미술가들은 비례라는 것을 대단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_P 197/Story of Art
이렇듯 13세기 중세 미술은 비잔틴적이고 로마네스크적인 스타일에서 점차 벗어나 자연주의적이고 세심한 표현적인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특히, 이 변화는 피렌체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토 디 본도네(1267~1337년)'에 의해 절정에 이르게 된다. 곰브리치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미술가 책에서는 대게 조토와 더불어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 위대한 화가의 출현으로 완전히 새로운 미술의 기원이 시작되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_P 201/Story of Art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품과 함께 미술가들의 이름이 등장하게 되며, 이 대망의 첫 번째를 장식할 위대한 미술가인 '조토'를 시작으로 르네상스의 시대를 맞이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