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의 나비 효과
13세기말, 피렌체는 지중해 무역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상업적 귀족과 신흥 부유 시민 계층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한 공화정 체제는 정치적 자유와 시민 참여를 가능케 하여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문화를 형성케 하였으며, 예술가와 학자들은 이러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후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단테, 보카치오 같은 문학가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르네상스 문학의 기반을 마련했고 단테의 친구로 알려진 '조토' 또한 이러한 배경의 영향으로 중세적 전통에서 탈피하여 사실주의, 입체감, 감정 표현 등을 강조, 발전시켜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인정받게 된다.
'조토'를 논함에 있어 그의 스승인 '치마부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특히 단테는 그의 신곡에 '치마부에'와 '조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으니 청출어람의 이태리식 표현이 아닐까 싶다.
"Credette Cimabue nella pintura tener lo campo, ed ora ha Giotto il grido, sì che la fama di colui è scura."
"치마부에는 자신이 회화의 영토를 지배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조토의 명성이 치마부에의 이름을 어둡게 만들었다."
산타 트리니타의 성모 by 치마부에/1285년 경(좌), 온냐산티 성모 by 조토/1310년 경(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라는 같은 주제를 두 거장은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다른지 한번 비교해 보자. 단, 당시 이태리의 미술은 동로마의 비잔틴 문화의 영향으로 금빛 배경, 인물의 근엄한 표정, 좌우 대칭 구조 등 전통적인 비잔틴 양식의 신성 표현이 여전히 성행하던 시기임을 염두하기 바란다.
치마부에-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이나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보다는 섬세한 느낌이다. 성모의 표정 없는 근엄함과 빈틈없이 감싸고 있는 옷 그리고, 상대적으로 거대하게 표현한 성모의 크기 등 여성이 아닌 신성함과 권위를 가진 성모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으나 인물들의 명암 표현과 풍부한 금실, 세밀한 주름 묘사를 통해 입체감을 더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조토-비잔틴 양식의 그림이지만 치마부에의 성모상 대비 공간감이 느껴지고 풍부해 보인다. 인간미가 엿보이는 성모의 표정, 열어젖힌 성모의 겉옷과 가슴의 볼륨감 등 신성보다는 어머니로써의 여성성을 강조한 표현이 눈에 띈다. 특히, 옥좌에 원근법을 시도하고 있어 깊이감을 느낄 수 있으며, 천사들의 얼굴들을 겹쳐 표현하여 공간의 현실감을 더하고 있는 등 치마부에의 작품보다는 전체적으로 묵직하고 사실주의적 느낌이 강하다.
조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1305년에 완공된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38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프레스코화이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려진 조토의 프레스코화 38개 장면/1305년 경
38개 프레스코화 중 한 장면인 <애도> 조토/1305년 경
지금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조토의 작품들이 고졸하고 담백해 보일지 모르나 당시 중세인들에게는 충격적일 만큼 사실적이었다. 비잔틴을 포함한 중세 고딕 미술의 평면적이고 얄팍한 인체들이 배경 없이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조토의 벽화에서는 확실한 부피와 무게감을 가지고 설득력 있는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각 등장 인물들의 동작과 절제된 표현들은 설명 없이도 시청자들이 그 감정과 드라마를 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그림이 당시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위 작품 <애도>를 통해 살펴 보자.
1. 마른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는 애도의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배경의 역할로 그림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으며,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경사진 담벼락은 시청자의 눈을 예수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인도하고 있다.
2. 사도 요한으로, 그의 팔은 단축법에 의해 멀리 있는 손을 의도적으로 작게 그렸으며 그림의 중앙에 위치시켜 3차원의 공간감을 강조하고 있다.
3. 그리스도의 신체를 만지고 부여잡고 있는 여인들의 행위와 표정 묘사는 신성의 권위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4. 등을 보이는 여인 또한 기존 중세 미술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과감한 표현이며, 뒤로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인의 '등'을 통해 우리는 감정을 억제하며 흐느끼고 있는 인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참고:천년의 그림여행/애경)
<예수의 탄생>/1305년 경(좌), 산타 크로체 성당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1325년 경(우)
38개의 프레스코화 중 하나인 <예수의 탄생>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세울 것이다'라는 최후 심판의 예언을 반영하여, 아기 예수를 향해 있는 흰 양은 '선'을, 반대쪽을 보고 있는 검은 염소는 '악'의 의미로 표현하였다. <최후의 만찬>은 조토가 노년에 접어들어 그린 작품으로 건축물과 테이블을 활용한 원근법, 인물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감정과 그에 따른 표정 등 사실적인 묘사와 공간감을 더욱 완숙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토의 명성은 널리 세상에 퍼져서 피렌체 사람들은 그를 자랑으로 여겼다. 그들은 그의 생애에 흥미를 가졌으며 그의 기지와 재주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이것 역시 상당히 새로운 현상이었다. 우리는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조작 작품들을 만든 거장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그 당대에 충분히 평가받았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러한 명예는 그들이 봉사했던 대성당으로 돌렸다. 이러한 점에서도 피렌체의 화가 조토는 미술의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시대 이후로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뒤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미술사란 위대한 미술가들의 역사가 된 것이다."_P 202,5/Story of Art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토에 대해, 당시의 정형화된 미술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을 진실하게 표현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중세적 관습에서 벗어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연 화가'라 존경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