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중반의 유럽은 아직 인구가 적은 농부들의 대륙이었고 권력과 학문의 중심지는 수도원과 귀족들의 성이었다. 그리고, 약 150년이 흐른 14세기의 대륙은 상업과 무역을 통해 번성한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시민들은 점차 교회와 봉건 영주들의 권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건축가의 주된 과업이 더 이상 교회가 아닌 시청 청사, 조합 사무실, 대학 등과 같은 세속적인 건물들로 옮겨가게 되면서 고딕 양식에도 점차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 베네치아에 있는 <도제궁>이다. 이 건물은 베네치아의 권세와 영광이 최고에 달했던 1309년에 착공되어 이후 약 110년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이 조형적 아름다움은 비례와 질서를 중시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 때문인데 외관 상부의 대리석 벽과 하부의 기둥 아치가 비례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전체 구조가 안정적이고 조화롭게 보이며, 주요 출입구와 창문 등 건물 전체가 대칭적으로 설계되어 중세 고딕의 비대칭적인 장식적 화려함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도제 : 베네치아 공화국 최고 지도자의 명칭
베네치아의 도제궁/1309년 착공
지역 별로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도제궁>의 사례와 같이 14세기는 중세의 쇠퇴와 르네상스의 도래를 준비하는 과도기적 시기로 당시에 발생한 주요 역사적인 사건들 또한 매우 다이내믹하다.
1. 흑사병의 대유행(1347-1351)
2. 대규모 농민 반란(1358~):영국, 프랑스 등 봉건 국가 중심으로 발생.
3. 아비뇽 유수(1309~1377):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에 의해 로마의 교황청을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머물게 된 시기.(유수=잡아 가둠)
4. 서방교회 대분열(1378~1449):아비뇽 유수 이후, 교황이 잇따라 난립해 2~3명이 동시에 선출된 시기로 교황의 권위가 나락으로 떨어짐.
5. 100년 전쟁(1337~1453):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로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116년간의 전쟁으로 잔다르크의 일화가 유명.
특히, 아비뇽 유수로 인한 플랑드르(프랑스)와 시에나(이탈리아)의 궁정 미술가들의 교류를 계기로 왕정간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왕정과 교회를 중심으로 공통적인 미술 양식이 나타나는데 이를 '국제 고딕 양식'이라 부른다. 고딕 미술의 마지막 단계라 볼 수 있는 이 양식은 가장 세련되고 장식적인 우아함이 가장 큰 특징으로, 대표적인 미술가는 시에나 화파의 창시자인 '두초 디 부오닌세냐'이다. 그는 기존 고딕과 비잔틴의 전통에 섬세한 감정 표현, 원근감, 명함 등을 더해 *자연주의적 표현을 녹여냄으로써 동시대를 살았던 '조토'와 더불어 르네상스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자연주의적 표현:현실을 더 닮아 보이도록 그렸다는 의미로, 이전 시대의 중세 미술에서는 그림이 상징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그려졌다면, 두초는 인물과 풍경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음.
시에나 대성당 제단 장식을 위해 제작된 '마에스타' by 두초/1308~1311년
또한, '두초'의 제자로 알려진 '시모네 마르티니'는 당대 유명한 시인이었던 '페트라르카'의 애인 '라우라'의 초상화를 그려 중세 이후 최초의 초상화를 그린 미술가로 알려졌으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작품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인 <수태고지>를 통해 그가 얼마나 위대한 화가였는지 짐직할 수 있으며, '두초'의 자연주의적 표현이 그를 통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두 명의 성자가 있는 수태고지 by 시모네 마르티니와 그의 처남 리포 멤미(양쪽 끝 두 명의 성자를 그림) /1333년
수태고지 중 가브리엘 천사와 처녀 마리아
위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를 문안하고 장차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아들을 낳을 것임을 알리는 경건한 장면이나 '시모네 마르티니'는 성경을 읽고 있던 마리아를 갑작스럽게 나타난 천사의 메시지를 전해 듣자 놀라고 두려운 마음의 표정을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투영하였고, 이와 더불어 옷깃을 여미며 몸을 움츠리고 상체를 뒤로 돌리게 함으로써 그녀의 감정을 극대화시켰다. 이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공감을 불러오는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시에나의 화가들은 피렌체의 조토처럼 갑작스럽고 혁명적인 방법으로 초기 비잔틴 미술의 전통을 끊어버리지는 않았다. 이 거장들도 프랑스와 영국의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형태와 서정적인 감정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꽃병을 보면 그것은 돌로 된 바닥 위에 놓여 있는 진짜 꽃병이며, 우리는 그것이 천사와 성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다. 배경 속으로 파묻힌 성모가 앉아 있는 의자도 실제의 의자이고 그녀가 들고 있는 책도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페이지 사이에 명암이 들어간 실제의 기도서이다."_P 212/Story of Art
이제 미술가들의 임무는 더 이상 신성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과 자연을 향한 탐구와 그 재현의 방법에 대해 몰두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