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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8-9. 절정의 르네상스, 16세기 초 베네치아

by 최영철

베네치아 미술, 작가주의를 완성하다.




이탈리아 미술에 있어 피렌체의 위상에 버금가는 도시가 베네치아였다. 일찍이 십자군 전쟁의 혜택(중계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동방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던 이 도시는 르네상스 양식을 다른 이탈리아 도시보다 더디게 받아들였으나 일단 받아들인 후에는 색채와 감각적인 표현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피렌체의 선구자들이 원근법이나 구도로써 통일된 구성을 만드는 소묘에 더 큰 관심을 둔 것과 가장 큰 차별점이라 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 위에 덧붙이는 부가적인 장식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베네치아 화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화가는 단연 '조르조네'로, 32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을 쓴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레오나르도와 더불어 르네상스 미술의 신기원을 연 인물로 극찬했다. 특히, 교회나 귀족의 의뢰로 제작되는 대형 벽화에서 탈피, 수집가들을 위한 작은 사이즈의 유화를 보급한 최초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당시 르네상스 미술의 전형적인 소재는 종교나 신화 등이었지만, '조르조네'는 특정한 서사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소재로 확장하여 개인적인 감정과 분위기를 그림에 담아내는데 탁월했다. 그의 대표작인 <폭풍우>를 보면 인물들이 특별히 세심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고 구도에서 별다른 기교가 엿보이진 않지만 화면 전체에 스며있는 빛과 공기에 의해서 그림 전체가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뇌우의 섬뜩한 빛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폭풍우 by 조르조네 / 1508년 경



또한, 풍경이 이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나름대로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는데 폭풍우가 몰아치는 자연과 건축물들이 조화를 넘어 불안정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렇듯 위 작품은 르네상스의 전형을 따르지 않고 작가만의 독특한 소재와 표현으로 마치 100년 후 바로크 시대의 회화를 보는 것 같다.


"이것은 사물과 인간을 나중에 공간 속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땅, 나무, 구름 등의 자연과 인간을 그들의 도시나 다리들과 더불어 모두 하나로(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거의 원근법의 창안과 맞먹는 새로운 영역을 향한 하나의 발돋움이었다. 이제부터 회화는 그 자체의 비밀스러운 법칙과 방안을 갖는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_P 331 / Story of Art


이제 회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의한 원칙과 구성 방식으로 시각적 질서를 재창조하는 예술형태로 발전했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조르조네'의 이러한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제자가 있었으니 베네치아 화가 중 가장 유명한 '티치아노 베첼리오'이다. 곰브리치는 그의 물감을 다루는 솜씨를 '미켈란젤로'의 거침없는 소묘 솜씨와 필적하다고 평가한다. 특히, 그는 서양 미술의 기본이 된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기법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구성 방식에 있어서도 아래의 <성모와 성인들과 페사로 일가>에서와 같이 성모 마리아를 중앙에 두지 않고 두 성인(성 프란체스코, 성 베드로)을 성모와 거의 대등하고 능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존의 오래된 규칙들을 과감히 뒤엎는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성모와 성인들과 페사로 일가(좌), 페사로 일가 확대(우) by 티치아노 / 1519~1526년



그리고, 위 그림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년이 시청자(우리)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년의 눈은 시청자들의 눈과 마주치게 되어 이 광경을 구경하는 또 하나의 관객처럼 보이게 만들어 그림의 생동감을 더 해 준다.


'티치아노'가 당대에 최초의 국제 화가로서 큰 명성을 얻는 것은 초상화 때문이었다. 곰브리치가 선정한 그의 초상화는 젊은 영국인을 그린 <한 남자의 초상>이다. 어두운 배경과 의상을 밝은 얼굴과 대비시켜 입체감을 강조함으로써 인물의 생동감을 강조한 작품으로 레오나르도의 <모나 리자>와 필적하여 신비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며,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한 남자의 초상 by 티치아노 / 1540~1545년 경



그의 초상화는 채색의 디테일로 유명한데, 반투명의 유약을 겹겹이 발라 빛이 끊임없이 새로운 느낌으로 흐르고, 반사되고 굴절되도록 그려, 당시에도 모델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격찬을 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당시 권력자들에게 '그의 예술을 통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 교황 바오로 3세,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로스 5세 등의 초상화 의뢰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후세의 미술사학자들과 호사가들은 '속세 최고의 권력에 대한 미술의 승리'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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