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절정의 르네상스, 16세기 초 북유럽
16세기 초 북유럽의 미술은 중세적 전통과 르네상스적 요소가 공존하는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는 예술적인 기량면에서 '뒤러'와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독일 화가라는 평을 받는데, 르네상스적 합리성과 고전적 조화보다는 중세적 신비주의와 강렬한 종교적 감성을 강조하여 '뒤러'와는 결이 다른 후기 중세적 화풍의 화가로 분류된다.
그의 대표작인 <이젠하임 제단화>는 예수의 고통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환자들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고자 제작되었다. 강렬한 색채와 비현실적인 인체 표현, 극적인 명암 대비는 보는 이들의 감정을 극대화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즉, 그의 작품은 이성과 균형을 중시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달리, 북유럽 특유의 종교적 감성에 의도적으로 신체를 변형하고 뒤틀리는 등 과장된 초현실적 표현으로 예수의 고통을 더욱 강조한, 기존에는 볼 수 없던 시대 흐름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탈리아 미술의 위대한 발견들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표현 방식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한도 내에서만 그것들을 활용하였다. 그에게 있어 미술은 아름다움의 숨겨진 법칙을 찾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모든 미술의 목적인 그림으로 설교를 제공하고 교회가 가르친 진리를 선포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미술의 테마는 종교뿐이었고 표현 방식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된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러한 그의 작품성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견지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예술가는 '진보적'이 아니더라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진정 예술의 위대성은 새로운 발견에 있지 않다. 그뤼네발트는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에는 언제나 이 새로운 발견들을 채용해서 새로운 기법들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_P 354 / Story of Art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가 중 주목해야 할 또 한 명의 인물은 '루카스 크라나흐'이다.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그의 종교개혁을 시각적으로 지원했던 '크라나흐'는 루터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개신교적 신학을 반영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고, 궁정화가로 활동하며 신화적이고 우아한 인물화를 발전시켰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담과 이브>는 근육이 강조되지 않은 매끄러운 선과 우아한 인체 표현이 특징으로 부드러운 색감과 균형 잡힌 명암 처리를 통해 인물의 입체감을 강조했다. 이와 비교하여 '뒤러'의 <아담과 이브>는 고전적인 인체 비례와 해부학적 정확성을 탐구하여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크라나흐'의 인물들은 비례가 비현실적으로 길고 왜곡되어 보이고 매끈하고 창백한 색감을 사용하여 마치 마네킹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단순한 성서적 재현이 아닌, 세속적이고 장식적인 포즈가 강조된 의도된 표현방식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미술사에서 풍경화를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시킨 선구자가 있었으니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라는 미술가이다. 그가 남긴 많은 수채화와 동판화, 유화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으며 인물도 볼 수 없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변화로, 종교적 테마이든 세속적인 테마이든 분명한 이야깃거리를 다루지 않는 그림은 당시나 그 이전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미술은 화가의 묘사력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시기임을 고려했을 때, 화가 자신이던 의뢰자의 요청이던 특별한 목적이 없는 단지 아름다운 풍경의 그림도 수요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 요소로 부각하며, 빛과 색채의 변화를 통해 감성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풍경화의 독립성을 확립했으며 자연을 감성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개척했다.
오늘 소개한 위 3명의 거장들의 작품은 북유럽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며, 이후 독일 미술과 낭만주의 회화에 지속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