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르네상스를 넘어, 16세기 중후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르네상스 또한 '완벽한 균형'이라는 익숙하고 정형화된 양식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예술가들은 언제나처럼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되는 사건이 1517년 발생하는데, 마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를 향해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이 개혁의 물결은 유럽 땅 전역이 출렁일 만큼 큰 사건이었으며 종교는 물론,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치게 되니 예술은 당연히 함께 휩쓸려 갈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의 권위가 흔들리고 신앙이 혼란스러워지면서 미술의 주제, 스타일, 후원 방식 등이 변화하게 되는데 이 중 가장 큰 충격은 후원 방식의 변화였다. 개신교는 종교적 그림이나 조각 같은 성상을 우상 숭배로 여겨 교회의 장식을 최소화하여 미술가들에게 가장 큰 고객이었던 교회의 의뢰가 대폭 감소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가톨릭은 개신교와의 차별화를 더욱 강화하여 보다 감동적이고 강렬한 주제와 극적인 표현을 요구함에 따라 기존의 르네상스적 표현으로는 이러한 가톨릭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한편,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교회와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이 정치적, 종교적 대립이 극에 달해 있었고, 마침내 1527년 신성 로마 제국(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공격하여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은 당시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로마 교황청을 증오하는 신교도 병사들의 불만도 한몫했다.
이 같은 격변의 사건들로 인해 예술은 안정과 조화보다는 불안정한 감정 표현, 기이한 형태, 극적인 구성이 강조되는 매너리즘이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대 비평가들이 정의한 매너리즘의 주요 특징은 기술적 능숙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미술가들은 자연을 모방하기보다는 기존의 르네상스 거장들의 기법을 변형하고 과장하는 방식으로 변모해 갔다.
이러한 매너리즘의 대표작 중의 하나가 '야코모 폰토르모'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이다. 제목과는 달리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인물들로 가득 찬 화면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인물들이 땅을 지탱하지 않고 공중에 떠서 부유하는 듯한 구도와 분홍, 하늘색 같은 색채는 현실 세계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예수에게 건네는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작별 인사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어머니의 절망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또한, 긴 팔과 긴 다리를 지닌 고전적인 아름다운 육체들과 불안과 혼란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슬픈 표정은 묘한 대조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연약함과 상실감이 지배한다.
당시 거장 중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 '틴토레토'는 매너리즘과 바로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미술가로 평가받는데,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은 그의 대표작이자 매너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연극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강조하며, 보는 이들에게 감정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었고, 도시는 당시 오스만 제국과 해상 패권을 두고 경쟁 중이었다. 그리고, 종교 개혁에 의해 실추된 가톨릭의 권위를 강화하려던 시기로, 베네치아의 영광과 성 마르코의 신성한 보호를 상기시키기 위한 정치적·종교적 목적이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대각선 구도와 비정형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조성하고, 강렬한 명암 대비와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당시 르네상스의 균형 잡힌 구도와는 다른 매너리즘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스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한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의 요소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술가이다. 그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감성 표현으로 인상주의와 표현주의로 대표되는 근대 미술의 정신을 예고한 혁신적인 미술가로서 다음 장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매너리즘은 단순히 르네상스의 ‘타락’이 아니라, 당시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와 새로운 미학적 실험이 반영된 과도기적 양식이다. 17세기에 이르면 매너리즘의 극적인 요소들은 바로크 미술로 발전하며, 보다 역동적이고 감성적인 예술 양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매너리즘은 '이상적 균형'을 추구했던 르네상스의 논리적 종말이자, 감각과 감정을 강조하는 바로크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