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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9-3. 르네상스를 넘어, 16세기 중후반

by 최영철

고난 속에 핀 꽃, 초상화(花)와 풍속화(花)




16세기 중반 신교도 지역의 화가들은 더 이상 교회의 제단화를 그릴 수 없게 되자 책의 삽화나 초상화가 주요 수익원이 되었다. 독일에서 이미 유명했던 미술가 '한스 홀바인'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독일을 떠나 영국에서 정착하여 헨리 8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그가 주로 그렸던 성모상은 왕실의 초상화로 대체되었고, 그는 영국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화가로 인정받게 된다. 그의 초상화는 피부 질감, 의복의 자수, 보석 등의 디테일이 매우 정교하고 인물의 개성과 내면을 드러내는 세밀한 묘사가 돋보여 마치 사진과 같은 사실적 표현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그림 중 후대 사람들이 뽑는 최고의 작품은 프랑스의 외교관 2명을 그린 대형 초상화 <대사들>이다. 그여행 중에 만난 프랑스 외교관의 부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다양한 소품들로 표현한 것이 백미이다.


대사들 by 홀바인 / 1533년




특히, 그림 하단의 해골은 특정 각도에서만 온전한 형태로 보이도록 왜곡된 이미지로 표현(아나모르포시스 기법/anamorphosis)하였는데, 이것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성경 구절의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함을 암시하며, 동시에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유한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도덕적/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두 인물 사이의 탁자는 위아래 2단으로 구분되어 상단에는 천구의와 휴대용 해시계 등 하늘과 구교의 상징물이, 하단에는 악기와 책 등 세속과 신교의 상징물이 놓여 있어 교회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15세기 중반 북유럽 최초의 르네상스 미술가인 '얀 반 에이크'의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오버랩되어 보인다.(8-3장 참고) 디테일한 사실적 묘사과 사물들마다의 상징적 표현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홀바인'이 북유럽의 플랑드르 미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플랑드르 지도_16세기.jpg 현재 지도에서 본 16세기 플랑드르 지역




"홀바인이 떠나자 독일어권의 회화는 놀라울 정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죽자 영국의 미술도 그와 비슷한 꼴이 되었다. 사실상 영국의 회화 중에서 종교 개혁의 회오리를 견뎌낸 유일한 분야는 홀바인이 그처럼 확고하게 다져놓은 초상화뿐이었다. 이 분야에서조차도 남유럽의 매너리즘 취향이 나타나고 홀바인 풍의 간결한 양식 대신 귀족적인 세련과 우아함이 이상시 되었다"_P379 / Story of Art


유럽의 신교 국가 중 종교 개혁의 위기를 무사히 넘긴 유일한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미술가들은 초상화에만 집중하지 않고 신교의 교회들이 반대하지 않을 주제를 찾아 전문화하였다. 특히, 후대 사람들이 '풍속화'라 정의한 일상생활들을 묘사한 그림들은 '얀 반 에이크'이래로 플랑드르 미술의 전문화된 영역이었으며, '피터 브뢰헬'을 16세기 최고의 풍속화가로 꼽는다.


그의 그림의 주요 소재는 농민들이었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당시 극작가나 화가들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 보이려고 할 때는 하층민의 생활에서 그들의 주제를 구했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브뢰헬'의 <시골의 결혼 잔치>로 인간의 탐욕과 식욕이라는 본능적 욕망을 연극의 희극적 캐릭터처럼 묘사하고 있다.


시골의 결혼 잔치 by 브뢰헬 / 1568년경




결혼식은 신랑신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만, '브뢰헬'은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신부는 구석에 수줍게 앉아 있을 뿐이고 신랑은 아예 등장을 하지도 않으며, 기타 인물들은 음식이나 술을 향해 몰두해 있을 뿐이다. 진정한 주인공은 마치 마을 주민 전체인 것처럼 보인다.


시골의 결혼 잔치 중 신부(좌)와 마을 주민들(우)




이는 인간이 보여주는 형식과 관습의 허상, 공동체 중심의 실속 있는 현실감각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브뢰헬'은 민중의 삶 속의 허술하고 우스운 면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그 안에 담긴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즉, 풍자와 공동체의 따뜻함과 생기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한 장면 안에 수많은 인물과 세부 장면이 얽혀 있는 것이 특징으로 그림 속 인물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관찰하며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이 유쾌한, 그러나 결코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그림들에서 브뢰헬은 풍속화라는 미술의 새로운 왕국을 발견했다. 그 이후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이 왕국을 더 완벽하게 개척해 나갔다."_P383 / St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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