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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2 - 첫 만남

by 로그아웃

첫 만남

영화관람 모임에서 나는 우연히 “은하”를 만났고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은 후 카톡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 : 안녕하세요! 은하님! 오늘 모임에서 얘기했던 영화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나중에 꼭 봐야겠어요. ^^

은하 : 정말요? 그 영화 생각보다 재밌어서 여러 번 봤어요. ^^ 꼭 보시고 후기 알려주세요!

나 : 그럼 나중에 그 영화 얘기하면서 밥 한번 먹어요! ㅎㅎㅎ

은하 : 좋죠! 그럼 나중에 시간 맞춰서 봬요~^^

언제부터였을까?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낼 때, 우리는 웃음 이모티콘(ㅎㅎㅎ, ㅋㅋ, ^^)을 첨부하는 것이 거의 필수가 되었다. 만약 이모티콘을 넣지 않는다면, 자칫 상대방에게 화가 나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알 수 없지만, 모두 실없는 웃음을 표하는 듯한 이모티콘을 첨부해야 했다. 마치 미국 서부 개척시대 카우보이들이 "bar"에서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음식을 먹었던 것처럼, 이모티콘은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의도가 없음을 무언의 합의로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카우보이들이 테이블 밑에서 총을 겨누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처럼, 이모티콘도 메시지를 받는 사람에게 화난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의식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모티콘을 넣지 않아서 오해가 생기고 관계가 악화된 사례나, 공적인 업무 대화에서 이모티콘을 잘못 사용해 상사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가 종종 기사로 등장한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는 감정을 실어 문자를 보내는 기술이 발전할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기술이 나오면 또 다른 차원의 미묘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감정을 직접 전달할 수 없으니, 이모티콘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나 또한 사적인 대화에서는 반드시 이모티콘(^^)을 사용했지만, 공적인 대화에서는 이모티콘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적인 대화

A: 영감! ㅋㅋㅋㅋ

B: 왜 불러! ㅋㅋㅋㅋ

A: 뒤뜰에 매어놓은 송아지 한 마리 보았소? ㅎㅎㅎㅎㅎ

B: 보았지! ㅎㅎㅎㅎㅎ

A: 어쨌소! ㅋㅋㅋㅋㅋ

B: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지! ㅋㅋㅋㅋㅋ

A: 잘 했군! ^^ 잘 했어!^^ 잘 했군!^^ 잘 했어!^^ 잘 했어! ㅋㅋㅋㅋㅋ


공적인 대화

직원: 사장님!

사장님: 무슨 일 있나?

직원: 네, 다름이 아니오라, 혹시 뒤뜰에 매어놓은 송아지 한 마리 보셨습니까?

사장님: 그래! 보았다!

직원: 어떻게 되었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사장님: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다!

직원: 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대화는 이모티콘과 대화의 톤이 인간관계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카톡 시스템


나 : 오늘 퇴근하고 저녁 같이 하실래요, 은하 씨?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

메시지를 보낸 후, 나는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숫자 '1'이 언제 '0'으로 바뀔지 초조하게 기다리며 그녀가 메시지를 확인하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도 숫자는 여전히 '1'로 유지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 바쁘시구나? 아니면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불렀나? 요즘 나와의 대화가 조금 지루해진 걸까?’


드디어, 시간이 지나고 숫자가 '0'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답장은 오지 않는다. ‘읽었다’는 신호가 나에게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다.


‘확인하긴 했구나, 다행이야! 그런데, 너무 늦게 보냈나?’


보낸 메시지와 '1'과 '0'의 사이에서, 나는 마치 얇은 외줄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숫자가 바뀌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은하의 마음을 추측하고 나를 돌아보고, 결국 무언가 내 잘못인 듯한 자책까지 느끼게 된다. 보낸 사람이 가진 권리는 결국 상대가 답장할지 기다리는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의무와 함께 존재하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반대로 그 시각 은하는 이 상황에서 "받는 사람"의 역할로서, 메시지를 확인할 의무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즉시 답하지 않을 권리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숫자 '1'의 상태를 유지하며 잠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바로 읽고 답장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약간의 여유는 마치 잠시 멈춰서는 짧은 숨 고르기와 같았다. 그러나 보낸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 또한 미묘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그 순간, 카톡의 '1'이라는 숫자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려는 은하의 방어선이자,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렇게 카톡 시스템의 권리와 의무는 서로가 느끼는 소통의 부담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한쪽은 답장을 기다리며 관계의 의미를 확인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즉시 답하지 않을 권리와 의무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잡아가려 한다. 그러는 동안, 카톡의 숫자 '1'과 '0'은 상대방의 마음과 관심을 가늠하는 신호처럼 작용한다.


결국, 이 단순한 숫자의 변동은 상호 간의 미묘한 심리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언제 답장이 올지 모른다는 기다림, 답장을 바로 하지 않을 자유를 가지려는 마음이 이 숫자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게 교차된다. 이로 인해 카톡은 어느새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과 서로의 여유를 존중하려는 방어적 태도가 만들어낸 관계의 거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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