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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4 - 답장 유보의 정당

by 로그아웃

답장 유보의 정당성

은하 : 잘 지내죠?^^ 요즘 잘 지내시죠? 추천해 드린 영화는 잘 보고 계신가요?ㅋㅋㅋ 1

며칠 전 나는 그녀에게 온 카톡 메시지를 받고도 즉각 답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녀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대화에 집중할 정황이 없었던 거다. 형식적인 대화가 아닌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 그래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거다. 좀 더 진솔하고 긴 답장을 보내고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그녀의 숫자 1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급한 나머지 형식적 대화를 나누고 말았다. 그녀는 내 맘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은하 : 잘 지내죠?^^ 요즘 잘 지내시죠? 영화는 잘 보고 계세요?ㅋㅋㅋ 0

나 : 네! 은하씨 잘 지내세죠! 영화 잘 보고 있죠! 너무 재미 있었어요! 0


그런데 말이다. 나에게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왔다고 하자! 그래서 이제! 진정성 있게 대화하려고 그녀에게 갑자기 카톡을 보낸다는 거 자체가 넌센스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도 타인의 안정적인 상황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카톡 시스템하에서 우리는 서로의 감정과 상황을 모른 채 오직 자신이 처한 환경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전달한다. 그 후 뒤따라 반응하는 –시스템이 보여주는- 여러 정보를 통해 대화할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카톡이 가진 최대의 장점으로 -감정을 쏙 뺀 담백한 합리성 효율성으로- “정보 전달력”에서는 으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서로의 진정성 있는 감정을 읽을 수는 없는 대신 단지 웃음 이모티콘 주는 웃음 정보를 인지할 뿐이었다. 나머지 공백은 추측 한스푼과 추정 한국자를 넣어 만든 합리적 상상력을 통해 메워야만 했다.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그녀에게 카톡을 보내 즉답이 오길 기대한다는 건 결국, 그녀로 하여금 형식적 답장을 보내오길 강요하는 또 형식적 대화자란 인식을 그녀에게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실제로 그녀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답장을 유보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바쁜 와중에 형식적인 답장을 보내기보다는, 여유가 생겼을 때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상대방의 정서적 여유 시간을 고려하여 메시지를 보내야만 하는 걸까?


예전 네이트온에서는 자신의 아바타에 '회의 중'이나 '업무 중'과 같은 상태를 표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상태는 더 이상 실질적 의미를 잃고, 무소식이 오히려 그들의 상시 상태가 된 듯했다. 앞으로 카톡에도 네이트온의 상태 표시 기능처럼 상대방의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이 추가될지 모른다.


결국 나는 생각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굳이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것이 그녀를 배려하는 합리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카톡은 소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 일 뿐 감정을 교류했다간 혼란만 불러 올라가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신속한 답장을 요구하지 않고, 그녀가 여유 시간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답장을 보내도록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하지만 어떻게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전히 그녀의 안부가 궁금한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카톡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생기는 미묘한 감정들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에게 연락하는 것도 미안했고, 메시지를 보낸 후에는 즉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또 반대로 그녀가 연락이 왔을 때는 즉시 답하지 못하는 것도 미안했다. 그리고 그 미안함이 쌓여가는 것은 관계의 미안함이 증폭되는 신호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이건 내가 생각이 많아서 일거야! 나는 그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안 가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당하게 짧고 명료한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고, 그녀의 스마트폰 속 '1'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은 나를 또 괴롭게 만들었다. 마치 어린 시절 짝사랑할 때,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혼자 상상에 빠져 꽃잎을 하나씩 따면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읊조리던 그때처럼, 나는 '1'이 '0'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나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지금 이시간 나를 지배하는 건 영상 속 세계였고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까톡” 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레 울린 카톡 알림음은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런 후 나는 카톡 세상으로 강제로 송환했다. 한참 다른 쾌락을 느끼고 있던 뉴런의 흐름에 급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나는 카톡 창의 숫자가 1에서 0으로 바뀌지 않도록 메시지 확인을 유보한 채 다시 유튜브 세계로 돌아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까톡" 소리가 울리며, 새초롬한 눈빛의 이모티콘 정보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결국 카톡을 열어 숫자를 지웠다. 읽었음을 증명하자 은하는 곧바로 말문을 열어 그동안 회사에 있었던 일들 미뤘던 말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내가 그 순간 겪고 있던 현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으나, 유튜브에 몰두해 있던 이유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 대화는 점점 동질감을 잃어갔고, 나는 점차 여자의 이야기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재미없는 유튜버의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는 기분이 들었던 거다.


둘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작용과 반작용을 겪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던 순간 그녀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은하는 내 이야기가 주는 정보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감정교류가 이어졌을 뿐, 실질적으로는 각자 다른 감정의 세계 속에 있었고 언제 만나자는 형식적인 시간 정보 혹은 맛집 장소 등의 정보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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