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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Feb 27. 2023

퇴직하고 뭘 하려고

『프레드릭』을 읽고



  A언니는 내게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수술을 잘해서 몸이 좋아졌다고 했기에 믿어지지 않았다. A언니의 동생은 교감발령이 나고 얼마 후 암에 걸린 걸 알았다. 그동안 힘든 업무로 지쳤기에 교감 승진은 고진감래 끝에 얻은 결과였다. 발령 후 1년이 되기 전에 건강검진으로 암을 발견하였다. ‘아니, 그렇게나 갑자기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내년까지만 일하고 그만둘 거야.


  ‘그만두고 뭐 하려고?. 동료들은 놀라며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이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서 답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나는 교사 외에 다른 일을 할 정도로 익혀온 기술이나 특별한 재능이 없다. 그렇다고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리고 말한 것은 아니다. 몇 년 동안 고민한 일이다. 가야 할 방향을 찾을 무렵에 프레드릭을 만났다.




by 오솔길


 『프레드릭』은 그림책의 제목이며 주인공 이름이다. 그림책 표지를 보면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에 졸고 있는 들쥐가 프레드릭이다. 어울리지 않게 빨간 꽃을 들고 있다니 제법이다. 다른 들쥐들은 먹을 양식을 모으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레드릭은 그 옆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위 위에 앉아 있다. 그런 프레드릭에게 ‘무얼 하고 있니?’라고 물어보는 일은 당연해 보인다. ‘추운 겨울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있어!’라며 대답한다. 그래도 여전히 한가해 보이는 그에게 재차 물어보는 들쥐들. 역시 엉뚱하고 호기심이 나는 말을 한다. ‘색깔을 모으고 있어!’ 그리고 ‘이야기도 모으고 있지!’ 

대체 그게 어디에 필요한 걸까.


 여기까지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가 떠오를 것이다. 누가 봐도 프레드릭은 베짱이가 틀림없다. 하지만 개미들의 뛰어난 사회성 못지않게 들쥐들은 이웃 사랑이 넘친다. 밉상인 프레드릭이 구걸하지 않아도 동굴에서 같이 지내며 양식을 나눠 먹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벌어진 상황이라면 이런 민폐가 없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봄이 오기도 전에 많아 보였던 그 양식이 다 떨어졌다. 그들에게도 위기가 다가왔다.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부른다.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것이 그에게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프레드릭이 모은 양식인 햇살과 색깔 그리고 이야기가 필요했다. 여기서부터 난 이 책이 단순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눈을 감아봐. 너희들에게 햇살을 보내 줄게. 찬란한 금빛이 느껴지지 않니."


 프레드릭이 햇살 얘기를 하자 들쥐들은 몸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머지 색깔과 이야기도 동굴에서 겨울을 나게 만드는 귀한 양식이 되며 이야기를 끝마친다.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려고 힘들어도 참아내며 돈을 벌었다. 집을 사고 때로는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 아파트라도 장만하려면 열심히 일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순간 끝없이 앞만 보고 걷는 자신이 보였다. 이젠 그런 아파트나 외제 차가 부럽지도 필요하지 않다. 나도 프레드릭처럼 내게 필요한 양식을 모으고 싶다. 이젠 그렇게 해야 할 시간이라고 느꼈다. 누구는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 그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도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물질적인 부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맞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인 양 열심히만 일하고 싶지 않다. 잠시 멈추고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프레드릭이 내게 알려주었다. 겨울이 다가오듯 내 인생도 후반기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햇살 같은 양식을 준비하려고 한다. 
이왕이면 요긴하게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면 더욱 좋겠지.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프레드릭이 자녀일 수도 있고 가르치는 학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처럼 자신일 수도 있다. 


 오늘의 책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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