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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r 07. 2023

04. 지랄 총량의 법칙

『과학자의 서재』를 읽고

 세상엔 여러 법칙이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 샤를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등. 오랜 연구를 통해 얻은 인류사적으로 유의미한 놀라운 발견들이다. 그들의 이론은 때론 다른 이에게 자극을 주며 근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하지만 이 법칙들이 내 삶에 끼친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런 위대한 법칙보다 나를 바꾼 획기적이고 놀라운 것이 생겼다. 바로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된 말로 표현한 ‘지랄’이 들어간 법칙이다. 중2 때 지랄을 떨지 않으면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제공함으로써 나 같은 부모들을 위로하고 있다.      


  아들은 중2병을 심하게 앓았다. 아주 제대로 겪는 것이 부모로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웠다. 아들은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혼자 있는 것을 고수하더니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아이 방이 조용하면 잘못된 선택을 상상하며 슬며시 열어 볼 정도였다. 그런 아들을 위해 다른 도시에 있는 청소년 전문 센터에 데리고 다녔다. 전문가와 상담을 진행했고 오가는 차 안에서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년을 넘기지 않았고 아이는 동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중학교도 무사히 졸업했다. 여기서 그 총량의 법칙이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엔 게임에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방 안에 앉아 화면에 집중해도 지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다 속도가 나지 않는 기계에 온갖 짜증을 부렸다.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컴퓨터와 지내는 아들이 답답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어느 날 ‘지랄 총량의 법칙’을 책에서 발견했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어미에겐 희망의 끈이었다. ‘아!’ 짧은 탄성이 나왔다. 

 ‘그렇다면 아들은, 저 게임이라는 지랄 총량을 채우고 있단 말인가.’


  기발한 이론이었다. 우리 가족은 게임을 두고 아들과 대치 상황이었기에 걱정이 많았다.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라고 여기며 믿고 싶었다.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는 마음에 남편과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컴퓨터 전문 업체를 찾아갔다. 게임이 지치지 않는 충분한 용량의 새 컴퓨터를 구입했다. 같이 간 아들은 입이 벌어지며 오랜만에 웃었다. 

 ‘진작에 해 줄걸.’

 새 컴퓨터는 아들의 얼굴을 밝아지게 했다. 거기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얻고 나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아들은 학교 공부와 게임을 병행하며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by 오솔길

 

『과학자의 서재』는 책에 몰두했던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성장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이 인생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사준 세계문학과 우리나라 단편 소설집을 읽으며 다른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읽고 또 읽었던 문학적 감수성은 시인을 꿈꿨고 지금까지 글을 쓴 토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스승이 저를 학자로 만들었다면, 제가 읽은 책들은 학자 이전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저는 오늘도 묻습니다. ‘과학자는 지식 많은 사람일까, 지혜로운 사람일까?’ 저는 지혜로운 사람이길 바랍니다."  -본문 중에서


 과학자의 서재는 정말 많은 책으로 가득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시청한 적이 있다. 장소는 그의 대학 연구실이었는데 정말 책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았고 지금도 행복한 배움의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나도 아들에게 책을 사주고 싶었다. 얼마라도 좋으니 게임기 말고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아들은 이런 내 마음을 비웃는 듯했다. 책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게임에 대한 지랄 총량의 수위는 안정권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된 아들은 여전히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취미로 피아노와 운동을 즐긴다. 책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자신만의 꿈을 찾는 아이가 되었다. 거기다 마음이 놓이는 것은 이제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들로 지랄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아들에게 책을 권하게 되더라도 관심을 보이고 그것을 찾아 읽는 척은 하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생각보다 깊이 있게 읽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바랐던 지혜는 엄마인 내게 먼저 필요했는지 모른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시인을 꿈꾼 과학자의 곁엔 늘 책이 있다. 어릴적 나의 꿈은 동물보호가였다. 우리 집엔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오늘의 책
『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움직이는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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