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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Mar 07. 2023

지랄 총량의 법칙

- 최재천의 『과학자의 서재』 -

 

세상엔 여러 법칙이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 샤를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등. 오랜 연구를 통해 얻은 인류사의 유의미한 놀라운 발견들이다. 그들의 이론은 때론 다른 이에게 자극을 주며 근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하지만 이 법칙들이 내 삶에 끼친 영향력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그런 위대한 법칙보다 나를 바꾼 획기적이고 놀라운 법칙을 알게 되었다. 바로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

  사람이 살면서 해야 할 ‘지랄’이라는 것이 있다면 정해진 총량대로 행동한다는 의미다. 야단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속된 말로 ‘지랄’이라는 말을 넣어 만든 법칙이다. 중2 때 지랄을 떨지 않으면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제공함으로써 나 같은 부모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 준다.     

 

  아들은 중2병을 심하게 앓았다. 제대로 겪는 것이 부모로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웠다. 무난하던 초등학생 때와 다르게 중학교에 들어가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혼자 있기를 고집한 후에는 단체 생활을 싫어하고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자살하는 청소년이 늘었다는 소식은 불안한 내 마음에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품은 듯한 기분이었다. 방이 너무 조용하면, 잘못된 선택을 상상하며 슬며시 방문을 열어보곤 했다.


  나는 아들을 위해 다른 도시에 있는 청소년 전문 상담센터에 다녔다. 전문가와의 상담은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오가는 차 안에서 아이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1년을 넘기지 않았고 아이는 동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은 없었고 중학교도 무사히 졸업했다. 거기서 그 지랄의 총량이 다 채워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엔 게임에 빠져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앉아 컴퓨터 화면에만 집중해도 지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다 속도가 나지 않는 기계에 온갖 짜증을 부렸다. 학교 가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진 아들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일은 미칠 노릇이었다. 가상현실에 빠져 있는 모습은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켰다. 현실은 외면하고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 세계에 영원히 갇혀 있을까 봐 불안했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그때, 선배 교사의 조언으로 알게 된 것이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고는 기발한 이론에 손뼉을 쳤다. 게임을 두고 전쟁 같은 대치 상황이었기에 내게는 해답이나 다름없었다. 총량이 다 채워져야 끝이 난다는 말은 곱씹을수록 맞는 말 같아서 그동안 사춘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를 깨달았다.


  컴퓨터 전문 업체를 찾아갔다. 게임 총량을 다 채울 때까지 지치지 않고 버틸만한 충분한 용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저것을 살피며 갖고 싶은 컴퓨터를 고르던 아들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런 해맑은 얼굴은 정말 오랜만이다.


  새 컴퓨터로 온종일 게임을 즐기는 아들의 얼굴은 나날이 밝아졌다. 거기에 누나로부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선물 받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지냈다. 아들은 학교 공부와 게임을 병행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조금씩 게임의 총량이 채워지는 걸까? 게임 하는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아서 책이라도 봤으면 했다. 마침 최재천의 『과학자의 서재』가 눈에 띄었다. 청소년이 가장 만나고 싶은 과학자로 알려진 이유 때문일까. 청소년 권장 도서로 추천되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부모 또는 어른이 읽어도 좋은 내용들이 빼곡하다. 시인을 꿈꿨던 그가 행복한 과학자의 삶을 살기까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은 책이다.

      

  누구나 방황의 시절은 있다. 저자 역시 그럴 때마다 귀인처럼 나타나 새로운 세계로 이끈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짐작한 대로 그건 ‘책’이다. 특히 어머니가 사준 세계문학과 우리나라 단편 소설집이 인생 전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남다른 문학적 감수성으로 수많은 책을 쓴 토대가 어쩌면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자의 어머니처럼 책을 사주고 싶었다. 얼마라도 좋으니 게임기 말고 책이라면 책꽂이마다 넘치도록 채워줄 수도 있다. 저자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하길 원해서가 아니다. 지식보다 지혜를 찾으려는 그의 현명했던 삶을 아들이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공부하기 싫으면 이 책이라도 읽어볼래?”

  내가 내민 책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아들. 놓고 간 책은 그 이후로 게임에 밀려 오랫동안 외면을 당했다. 다행이라면 게임에 대한 지랄 총량의 수위가 점차 안정권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된 아들은 지금도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취미로 피아노와 운동을 즐긴다. 책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자신만의 꿈을 찾는 아이가 되었다. 거기다 마음이 놓이는 것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들로 채워가며 ‘지랄’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책이며 공부는 권유하지 않는다. 아들은 권유보다 더 좋은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어쩌다 말이 나와 아들에게 신간 책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 “나도 읽고 싶었어.”라고 무심하게 답한다. 간섭 대신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을 맛보려는 의도적인 무심함이다. 그렇게 바랐던 ‘지혜’는 아들이 아닌 엄마인 내게 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by 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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