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종영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물오리를 보며 바람이 없는 당진 천변을 걸었다. 걷는 건지 오리를 보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때쯤 ‘이팝나무길’이라는 안내문을 만났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뒤돌아보니 이팝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줄지어 있었다. 적어도 20년은 훌쩍 넘어 보였다. 옷을 벗은 겨울나무는 버짐 하나 없는 깔끔한 겉모습에 정장을 입은 듯 반듯하였다. 굵은 가지들은 촘촘히 위로 뻗어서 마치 잘 만든 부케 같았다. 나는 조경 전문가나 나무 박사는 아니지만 수형이 빼어난 그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이팝나무를 보자 지난 일이 생각났다. 무식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 사건이다. 남편과 나는 뜻하지 않게 고향집 근처에 황무지와 다름없는 땅을 사게 됐다. 쓸모없는 땅이었고 농사지을 형편도 안 되어 우선 내버려 두었다. 내팽개친 땅에는 잡목이 터를 잡기 시작해 사람 키를 훌쩍 넘고, 물 만난 고기처럼 제 세상을 만난 풀은 밀림을 이루었다. 궁리 끝에 우리는 그 땅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어린나무는 거름기 하나 없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느라 삭정이처럼 메말라갔다.
“저렇게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제대로 자랄까?”
“알아서 크겠지.”
우리는 나무를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풋내기 농부였다. 정작 ‘이팝나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한여름 햇빛에 제 키를 무럭무럭 키우는 모습에 그저 흐뭇할 뿐이다. 비가 내리면 따뜻한 햇살에 경쟁하듯 풀이 드세게 올라왔다. 근처에 살면 자주 가서 뽑아 줄 텐데 그럴 만한 여유가 우리는 없었다. 그때만 해도 당진에서 고향까지는 2시간이 못미처 걸렸다. 햇볕이 뜨거울수록 나무보다 풀이 더 잘 자랐다. 손이 닿지 않으니 나무밭인지 풀밭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자 남편은 자신이 나설 때라고 말한다. 풀을 베겠다고 했다.
남편은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낫을 잡았다. 서둘러야 뜨겁지 않다는 조언은 아침도 먹지 않고 낫질부터 하게 했다. 해가 떠오르고 여름 열기가 점점 강해져도 낫질은 멈추지 않았다. 뒤늦게 시작한 내가 거들어도 시원치 않았다. 뻔한 초보 솜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칠게 자란 풀들은 억세기만 했다.
풀 베는 성적이 도통 늘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예초기를 찾았다. 창고에서 잠자던 기계를 몇 번 만져본 후에 남편은 자신감이 붙은 표정을 지었다. 낡은 기계까지 동원한 풀밭은 더위만큼이나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풀은 이전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베어나갔고 그는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기세를 잡은 듯 보여도 새벽부터 풀과 싸우느라 그는 땀범벅이었다. 엄마와 내가 할 수 없이 나섰다.
“이 사람아, 더위 이길 장사는 없는 베벼(법이여)”
“여보, 큰일 나겠어, 얼른 나와요.”
지금 생각하면, 알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르니까 무식하게 뛰어든 것이지. 생전의 아버지는 꼭 새벽에 나갔다가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햇빛이 강하면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런데 농사 한 번 짓지 않은 사람이 풀밭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꿈쩍하지 않고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모습에 속이 탔다. 빨리 나오라는 외침은 예초기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는 풀과 전쟁이라도 시작한 양 물러나지 않겠다며 욕심을 부렸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 돼.” 뜨거운 해가 이젠 정수리까지 올랐다. 지켜보기만 해도 난 어지러웠다.
더위 이길 장사는 없다. 더는 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예초기를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풀은 대략 다 베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술을 먹은 사람처럼 시뻘건했다. 쓰러질 듯 걸어오는 그를 보고 화가 나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일사병이 얼마나 무서운데!” 찬물로 씻고 나온 남편에게 소금 한 스푼과 물을 주었다. 남편은 곧 쓰러지듯 누웠고 다행히 몸의 열기는 내려갔다. 혼이 난 남편은 깨어나자 겨우 이 말을 뱉었다. “죽을 뻔했네!”
초보 농부는 죽을힘을 다해 나무를 돌봤다. 9년이 된 나무는 수형이 잡히면서 당진 천의 이팝나무를 조금은 닮아가고 있다. 밑에선 여전히 풀이 자라고 있지만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나무 그늘이 생기면서 서서히 제풀에 꺾이는 수준이다. 원래 그랬다는 듯이 나무는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중이다. 소복하지는 않지만 제법 하얀 꽃을 피우기라도 하면 내 입에서는 환호성이 저절로 나온다. 깨닫지 못했을 뿐 처음부터 나무는 자기 할 일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우종영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은 나무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무 이름과 습성 그리고 나무에게 배운 삶의 지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30여 년을 나무와 함께 한 그의 인생은 나무와 무척 닮았다. 이팝나무 9년은 명함도 못 내민다.
‘나무는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주변의 환경에 강하게 맞선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이 땅 어느 생명보다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나무는 느슨한 법이 없다.’
나무를 키우며 저절로 크는 생명은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길가의 벚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심지어 잡목일지라도 내 눈길은 예전보다 성숙하고 다정해졌다. 그 땅에 뿌리를 내리며 견딘 수고로움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표시다. 이팝나무 덕분이다.
남편은 요즘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한다. 해가 뜨고 지는 때를 봐가며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그에 맞는 적당한 양의 거름을 언제 줘야 좋은지, 그리고 낫을 들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풀을 단번에 잡을 때가 있다고 한다. 제초제 없이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시기와 방법까지 줄줄이 말하면 나도 모르게 믿게 된다. 땅만 봐도 나무가 잘 자랄 곳인지 예언까지 하는 걸 보니 제대로 풍월까지 읊어댄다. 무식하게 덤빈 덕분에 나무가 되려 알려준 게 많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