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 로버츠의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우리 집 개’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때다. 멀리 이사 가는 이웃은 메리라는 개를 놓고 갔다. 혼자 남게 된 메리는 아버지 손에 끌려왔다. 덩칫값도 못 하고 밤새도록 부엌에서 낑낑거렸다. 순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덜덜 떠는 모습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메리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목줄부터 풀었다. 노란빛이 도는 긴 털에 비해 목 부분의 털은 목줄에 눌려서 납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흔적이었다. 녀석은 목줄이 풀렸는데도 밥그릇 옆에서 웅그린 채 가만히 있었다. 무척 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메리는 아버지를 따라 앞마당에서 뒷마당으로 그리고 집 아래쪽의 밭까지 졸졸 따라다녔다. 어리숙해 보이던 초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차차 꼬리를 흔들며 온종일 쏘다니는 메리로 변했다. 그리고 알게 된 메리의 본모습. 미친 듯이 논두렁이며 밭을 경주마처럼 뛰어다녔다. 난 기겁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는 치타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 전에 심은 고구마순은 엉망으로 흩어졌고 고랑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처참해진 땅을 보며 메리가 부모님께 혼날까 두려웠다. 정작 메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더 신나기만 했다. 나와 동생들은 크게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엄마처럼 메리를 따라다니며 혼을 냈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치르고 나서야 메리의 질주 본능은 막을 내렸다.
다행히 부모님은 메리를 때리거나 목줄로 묶지는 않았다. 물론 나와 동생들이 “다음에 또 그러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간청했기 때문이다. 차츰 말귀를 알아들었고 채소나 곡식이 있는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일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 따라 짓는 소리가 달라서 대문이 없는 우리 집의 문지기 역할도 잘 해냈다. 나는 메리가 아주 영리한 개라고 생각했다.
얼마 안 되어 메리의 배가 점점 불렀다. 새끼를 가졌던 모양이다. 어쩐지 녀석은 밥만 주면 꼬리를 치고 배가 터지도록 잘도 먹었다. 결국 밥을 주는 사람은 엄마였으니 엄마 일이 늘게 되었다. 밭일에 부엌일까지 정신없어 죽겠는데 개까지 끌고 왔다면서 생각이 없는 양반이라고 아버지에게 핀잔을 줬다. 거기다 새끼라도 나면 무얼 먹여서 기르냐고 대놓고 따지는 바람에 나는 조마조마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메리는 여전히 엄마가 주는 밥을 먹었고 엄마만 나타나면 꼬리부터 살랑거리며 제일 반겼다.
몇 달 후에 메리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하필이면 추운 겨울이라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헌 이불이라는 이불을 다 가져와 메리를 위해 산후조리실을 꾸몄다. 멋지고 포근한 개집을 기대했는데 간신히 추위를 피할 정도로 엉성한 이글루로 변해서 살짝 실망했다. 그나마 전깃줄을 이어 백열등을 달아서 환했다. 온열기가 없던 때라 그 안은 백열등 덕분에 따뜻했다. 부엌의 수도꼭지까지 얼어붙은 그 한파에도 새끼들은 무사하였다.
“짐승들은 제 새끼를 위해 본능적으로 사나울 수 있어.” 귀여운 새끼가 보고 싶은 내게 아버지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최대한 신중하게 개집의 문을 열었다. 다행히 싫어하지 않고 혀로 새끼를 핥다가 자랑하듯 젖을 먹이며 또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어느덧 의젓한 어미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였다.
나는 직장을 찾아 고향 집을 떠났고 자연히 메리를 보는 일이 뜸해졌다. 근무했던 학교의 방학이 시작되어 오랜만에 집에 갔다.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꼬리를 흔들며 마중을 나오던 메리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처럼 다른 마을로 마실 갔거니 하며 부모님에게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두워졌지만 메리의 낑낑거리는 기척이 들리지 않아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냐고 다급히 묻는 나를 향해 엄마는 속상하다는 듯이 뜸만 들이고 울기만 하는 거다.
“난 이제부터 개는 못 키우겄어.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는 건 처음 봤다. 다 내 잘못이지. 불쌍해서 죽겄더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마지막 모습 또한 고통스럽다고 해서 먹던 밥그릇도 쳐다보지 않았다. 개는 절대로 키우지 않겠다던 엄마는 나중에 ‘재롱이’를 식구로 맞는다. 귀엽게 생긴 것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재롱을 떤다고 이름까지 직접 지었다. 녀석은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자식들보다 더 든든하게 지켰다. 아무리 그래도 재롱이는 메리가 아니었다. 난 메리처럼 그 애를 대할 수가 없었다. 허름했지만 새끼랑 뒹굴던 이글루는 이미 무너졌고 늠름하게 지키던 우리 집은 텅 빈 것처럼 쓸쓸했다. 나도 그 아이에게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라는 책은 서귀포에 있는 책방에서 만났다. 뒷면에 있는 짧았던 소개 글이 나를 끌어당겼다. ‘개는 어떻게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되었을까?’ 같이 자란 메리라는 친구가 번득 떠오르는 문구다. 개, 말,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인류까지 길들임이 우리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흔하게 먹었던 곡식과 과일 그리고 기르던 가축의 변화된 모습을 자세하고 명확하게 알려준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먼저 다가간 야생 늑대를 추적하는 부분이 다큐처럼 생생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개의 길들임을 다루는 고대사 부분이 다른 종에 비해 흥미로웠던 까닭은 아마도 메리가 준 추억 때문이다.
개와 인간.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로 생존했으니 길들임은 쌍방 작용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메리와 내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