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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n 29. 2023

18.  길들인다는 것

 '반려견'이라는 말보다 '우리 집 개'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때다. 이사를 가는 이웃은 메리라는 개를 놓고 갔다. 데리고 갈 형편이 안되어 혼자 남게 된 메리는 아버지 손에 끌려왔다. 와서는 덩치값도 못하고 밤새도록 낑낑거렸다. 순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메리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목줄부터 풀었다. 노란빛이 도는 긴 털에 비해 목부분의 털은 목줄에 눌려서 납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선명한 흔적이었다. 녀석은 목줄이 풀렸는데도 밥그릇 옆에서 웅그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무척 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아버지를 따라 앞마당에서 뒷마당으로 그리고 집 아래쪽의 밭까지 졸졸 따라다녔다.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자기 본모습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 터졌다. 미친 듯이 논두렁이며 밭자락을 뛰어다닌 것이다. 우린 처참해진 땅을 보며 부모님이 생각나서 두려웠다. 얼마 전에 심은 고구마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메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나기만 했다. 나와 동생들은 이름을 불러대며 막아보려고 애썼다. 심지어 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엄마처럼 따라다니며 혼을 냈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치르고 나서야 질주본능은 막을 내렸다.

 다행히 부모님은 메리를 때리거나 목줄로 묶지는 않았다. 물론 나와 동생들의 부탁이 있었고 다음에 또 그러면 마음대로 하셔도 좋다고 간청까지 했다. 그 후로 채소나 곡식이 있는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차츰 영리한 개를 이제야 알아본다고 여기며 아꼈다. 대문이 없는 우리 집을 빈틈없이 지키는 모습은 주변 이웃들이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외딴집에는 이런 영리한 개가 제격인데 자신이 길렀다는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얼마 안 되어 메리의 배가 점점 불렀다. 새끼를 가졌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녀석은 밥만 주면 꼬리를 치고 배가 터지도록 잘도 먹었다. 결국 밥을 주는 사람은 엄마였으니 엄마일이 늘게 되었다. 밭일에 부엌일까지 정신없어 죽겠는데 개까지 끌고 왔으니 생각이 없는 양반이라고 핀잔이 대단했다. 거기다 새끼라도 나면 무얼 먹여서 기르냐고 대놓고 따지는 바람에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메리는 여전히 엄마가 주는 밥을 먹었고 엄마만 나타나면 꼬리부터 살랑거리며 제일 반겼다.


 몇 달 후에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하필이면 아주 추운 겨울이라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헌 이불이라는 이불을 다 가져와 메리를 위해 산후조리원을 만들었다. 말끔하고 멋진 집이라기보다 줄로 꽁꽁 묶은 이글루처럼 보였다. 그런 개집에 전깃줄을 이어서 백열등까지 달았다. 온열기가 없던 때라 그 안은 백열등 때문에 환하고 따뜻했다. 부엌의 수도꼭지까지 얼어붙었던 그 겨울에도 새끼들은 모두 무사하였다.


 귀여운 새끼를 보기 위해 슬며시 개집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제 새끼를 혀로 핥다가도 자랑하듯 젖을 먹이고 또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어느덧 의젓한 어미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였다.


 나는 직장을 찾아 고향 집을 떠났다. 자연히 메리를 보는 일도 뜸해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았을 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마중을 나오던 메리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마을로 마실을 갔거니 했다. 오랜만에 갔으니 밀린 이야기를 푸느라 저녁이 되었다. 밖에 나가봐도 메리는 돌아오질 않았다. 무슨 일일까? 이상한 생각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를 향해 엄마는 속상한 눈빛으로 뜸만 들이셨다. 그리고 우시는 것이다.


 “난 이제부터 개는 못 키우겠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걸 보지 말아야 했는데. 다 내 잘못이지. 닭을 먹고 버렸는데 어쩌다가 그걸 먹었는가 보더라. 그렇게 고통스럽게 갔단다.”


 다시는 안 키우겠다던 엄마는 얼마 후에 ‘재롱이’이라는 개를 식구로 맞았다. 아버지가 떠나고 난 빈자리는 자식보다 재롱이가 지켰다. 그래도 재롱이는 메리가 아니었다. 난 메리처럼 그 애를 대할 수가 없었다. 허름했지만 새끼랑 뒹굴던 이글루는 이미 사라졌고 늠름하게 지키던 우리 집은 더 쓸쓸해졌다. 나도 그 아이에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by 오솔길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라는 책은 뒷면에 쓰여있는 글이 나를 끌어당겼다. ‘개는 어떻게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같이 자란 메리라는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 말,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인류까지 길들임이 우리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흔하게 먹었던 곡식과 과일 그리고 기르던 가축의 변화된 모습 속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먼저 다가간 야생늑대를 추적하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메리 덕분이다. 개의 길들임을 다루는 인류사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고 그래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개와 인간.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로 생존했으니 길들임은 쌍방 작용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메리와 내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하며 읽었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개, 말,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인류까지 고고학의 넓은 시야로 안내한다. 두꺼운 책이니 먼저 알고 싶은 부분을 읽어도 좋다.

오늘의 책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엘리스 로버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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