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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22. 2023

13.  What? What? What?

『행복의 기원』을 읽고

  

 산책할 때마다 동물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남자가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동물은 길고양이들이다. 카페 가비를 지나 넓은 공터에 이르면 여러 마리들이 돌아다닌다. 그럴 때마다 '야옹아, 안녕!'하고 말을 건다. 그린식당을 지나면 개 한 마리를 만나는데 그 개에게는 '퉁퉁아, 안녕!' 한다. 마을 길을 좀 더 걷다 보면 가끔씩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가 길을 따라 어슬렁 거린다. '커피야, 어디가?' 하면 그럼 신기하게 커피는 반갑다고 바짓가랑이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몸을 비벼댄다.


  '이쁜아, 안녕?, 오늘은 꼬리 좀 흔들어 봐!' 담이 없는  을 지날 무렵이면 내 발길은 조심스럽다. 이쁜이 집은 감옥처럼 사방이 창살로 막혀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녀석은 무섭게 달려들며 짖어 댄다. 날카로운 소리에 놀란 적이 있는 터라 조용히 지나려고 하지만 그는 꼭 아는 체를 한다. 그것도 '이쁜아!' 하면서 부른다. 다행히 사나표정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반가운 기색 또한 전혀 없다. 여전히 생까는 이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남자가 갑자기 '왓왓왓'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변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산책하는 이들만 가끔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동물은 이제껏 없었기에 '이번엔 누구에게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딱히 누굴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잘 들어보라고만 말한다. 아무리 들어봐도 물이 가득한 논에서 '개굴개굴'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설마 개구리라고?


  '왓왓왓' 계속 물어오기에 자신도 'what? what? what?'이라고 대답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두 마리도 아닌 수많은 그들의 질문이 안 들리냐고 오히려 묻는다. 정말 엉뚱한 남자일세!  동요에도 나오듯이 개구리울음소리는 당연히 '개굴개굴'이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내게는 늘 그렇게 들린다. 재차 자세히 들어보라는 주문에 밤길을 멈추고 온신경을 모아 귀를 기울여 '개굴개굴'로 들릴 뿐이다. 


  그날은 좀 피곤해서 걷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남자는 혼자서 산책하는 게 무슨 재미냐며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한다. 운동도 되고 머리도 식히는 데는 이것만 한 게 없다면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산책에 나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한결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벌써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는 일제히 개구리가 울어댄다. 남자에게는 'what? what? what?', 내게는 '개굴개굴'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믿지 않는 나를 향해 남자는 여유를 가져보라고 한다. 요즘 짜증이 심해졌다는 나를 다독이며 개구리를 핑계 삼아 부드럽게 말한다.


 "잘 들어봐. 두 음절이 아니라 한 음절이지?"

 "어! 개굴개굴은 아니네."

 "그렇지! 자꾸 물어보고 있어. 왓?왓?왓?"

 "당신은 쟤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가 봐?"

 "사람보다 정직하잖아."

 "진짜로 알아듣고 말을 거는 건 아니지?"

 "...... "


 그날 밤, 드디어 '왓왓왓'하는 소리가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그동안 듣고 싶은 말만 들었던 거다. 여유를 가지니 what? what? what? 이 또렷하게 들렸다. 왜 그러냐고 묻는 그들의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남자와 나는 미주알고주알하며 서로의 하루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지나 소란스러운 도시 소음이 들릴 때까지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다행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아프던 몸도 생기가 돌았다.


 남자는 어느 날 시를 썼다면서 시 한 편을 내게 보여줬다. 난 이런 시인과 같이 사는 여자다.


         

침몰된 진실이 무엇이냐는 물음처럼

개구리 울음소리가 송곳보다 예리하다

왓왓왓 왓왓왓왓왓 왓왓왓왓 왓왓왓


향기 뽐낼 틈도 없이 꽃잎으로 떨어진

그날의 꽃송이들이 what? what?

피끓는 물음이었다 what? what?


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

드릴로 어둠을 뚫는 듯한 울음소리가

진실을 묻고 또 묻는다 눈감은 우리 향해


by 오솔길

 행복이 별 건가? 어느 날부터 들린 왓왓왓 소리에  what? what? what? 하며 대답해 주는 마음이라면 이미 그걸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행복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기분이 좋다. 하지만 쉽게 녹는 것처럼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 속에서 생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하루가 어땠는지 대답하는 중에 느낀다. 대화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준다. 


오늘의 책
『행복의 기원』, 서운국 지음,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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