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산책을 좋아한다. 아파트 건너편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낀 시골과 그 주변 길을 좋아한다. 집을 나서는 시각은 하루를 마치고 해가 질 무렵이다. 시끄러운 4차선을 벗어난 한적한 길에 이르면 흥얼거리는 그의 노래가 조금씩 들린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걸음에서 나이보다 젊은 활기가 느껴진다. 도심을 나가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그의 목적지는 좁은 길 쪽이다.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선택한 이유는 친구가 기다리기 때문이란다.
가장 먼저 만나는 친구는 길고양이다. 동네 카페 ‘가비’를 지나 모퉁이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보이는 존재들. 대여섯 마리가 어두운 거리에서 어슬렁거린다. 가로등이 없어 잘 보이지 않아도 남자의 레이더망에 모두 걸려들고 만다. 자동차 밑에 두 마리,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검은 고양이, 먹이통 근처에서 쫑긋 귀를 세우는 두세 마리까지 귀신같이 찾아내고 말을 건넨다.
“야옹아, 안녕!”
“까망씨, 오늘도 바닥에 늘어져 주무시는군.”
“얘들아, 아직 엄마(먹이주는 사람)가 안 왔어?”
무조건 대화를 시도하는 그의 인사법에 다행히 “이야옹”하는 고양이도 있지만 슬그머니 자리를 뜨거나 모른 척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눈맞춤을 시도하고 어느 때는 직접 악수라도 나누고 싶은 것인지 냅다 들이대는 편이다. 괜찮은 표정으로 반기기도 하지만 그의 손길을 피해 풀숲으로 잽싸게 피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시골 동네에 새 아스팔트 길이 생겼다. 윗동네 아랫동네 사이로 난 도로 때문에 둘로 나뉜 느낌이다. 느긋하게 걷던 예전의 산책길이 ‘쌩’하고 달리는 자동차들로 긴장감이 감돈다. 있는 듯 없는 듯했던 길가의 ‘그린식당’은 이제 맛집으로 소문이 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식당 맞은 편의 오래된 주택에 친구가 있다고 한다.
“퉁퉁아, 안녕!”
토실토실한 하얀 개는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순수 혈통의 진돗개는 아니지만 순하고 영리하게 생겼다. 처음에 둘은 우연히 지나다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그를 보는 퉁퉁이의 고요한 눈빛이 마음에 들어 이내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단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었는지 아니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 좋았는지 퉁퉁이의 반응 또한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퉁퉁이의 진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가 부르면 온몸과 꼬리까지 신나게 흔든다. 이제는 남자와 퉁퉁이 둘 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반가워하는 데 좀 소란스럽다. 이런 둘의 케미를 주인이 본다면 틀림없이 오해할 것이다. 혹시 도둑으로 몰리면 어쩌려고.
퉁퉁이 집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본격적인 시골길이다. 띄엄띄엄 집이 보이고 집을 따라 자연스레 꼬불꼬불하다. 소나무와 뽕나무들이 옹기종기 야산과 길옆을 에워싸며 서 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싼 기와집에 다다르면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두리번거린다. 오래된 친구를 찾는 중이다. 이름도 특이한 ‘커피’. 새까만 털이 온몸을 덮었는데 가슴에만 턱시도 모양의 흰털이 박힌 길고양이다. 마치 지팡이 대신 꼬리를 흔들며 느긋하게 걷는 영국 신사와 비슷하게 생겼다.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가 많아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둘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반한 모양이다. 만나면 참 눈꼴사납다. “커피야!” 이름을 부르는 그에게 다짜고짜 배부터 드러내며 인사하는 커피. 둘은 서로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사랑스럽게 만지고 몸을 비빈다. 오래된 친구같이 이것저것 물으며 한참을 매만지며 얘기한다. 그래서 그를 커피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서 하루 3잔 이상을 마신다는 그 사람. 어쩌면 커피를 자꾸 찾는 이유가 ‘커피’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닐까.
성격이 어찌나 능구렁이 같은지 근방의 시골집에 일단 들어가면 자기 집처럼 사는 것 같다. “얘는 즈이집도 아니면서 이럽니다.” 천연덕스럽게 자기 집인 양 마당에 누워있길래 아는 척을 했더니 그 시골집 주인도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집주인들이 쫓아내지 않는 걸 보면 녀석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커피야,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커피는 신기하게 남자에게 다가온다. 바짓가랑이 사이를 오가고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몸을 비빈다.
“커피야, 절미는 요즘 안 보이는데 어디 갔어?”
“야미옹 미옹.”
절미는 기와집과 멀찍이 떨어진 이웃집 개 이름이다. 다리가 짧고 납작해서 인절미라고 지었는데 인씨 성을 가진 주인이 ‘절미’라고 불렀다. ‘닥스훈트’ 종으로 남자에게는 특별한 친구다. 영리하기로는 ‘퉁퉁이’에 버금가고 격렬하게 반길 정도로 자신을 따라서 정이 들었단다. 남자가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개집을 나와 달려올 정도다. 퉁퉁이가 목줄에 묶여있어 멀리서 바라본다면 절미와는 터럭이 날릴 정도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한다. 그런 절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커피에게 묻는 모양이다. 이유를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절미가 보이지 않는 그 길이 이제는 싫어졌단다.
“이쁜아, 안녕?”
“여전히 회색 눈이 이쁘네.”
“모른 척하지 말고 이제는 꼬리 좀 흔들어 봐!”
이쁜이 집은 사방이 창살이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집에 사는 개라 불쌍해서 지나칠 수 없단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듯하다. 근처만 지나가도 무섭게 달려들어 짖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접근 금지 구역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그도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발동해 슬쩍슬쩍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알아듣는 느낌이란다. 물론 이름도 그가 지은 것이다. 다정스럽게 부르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마음이 전해질 거라나.
이제는 친구답게 사나운 표정은 내려놓았고 가끔은 꼬리도 흔든다며 자랑한다. 그렇지만 이쁜이는 반가운 기색이 전혀 없다. “제발 꼬리 좀 흔들어봐!”라고 부탁해도 까칠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생까는 이쁜이다.
어느 날부터 남자에게 새로운 대화상대가 생겼다. 무조건 말을 거는 버릇은 여전한데 익숙하지 않은 소리다. ‘왓왓왓’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물은 이제껏 없었기에 “이번엔 누구에게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산책하는 이들만 지나갈 뿐 주변은 논이 펼쳐진 천변길이라 대화상대라고 생각되는 동물이 보이지 않았다. 딱히 누굴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잘 들어보라고만 말한다. 아무리 들어봐도 물이 가득한 논에서 ‘개굴개굴’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설마 개구리라고?
“왓?왓?왓?” 계속 물어오기에 자신도 “what? what? what?”이라고 대답하는 중이란다. 한두 마리도 아닌 수많은 그들의 질문이 안 들리냐고 오히려 묻는다. 정말 엉뚱한 남자일세!
“잘 들어봐. 두 음절이 아니라 한 음절이지?”
“어! 개굴개굴은 아니네.”
“그렇지! 자꾸 물어보고 있어. 왓?왓?왓?”
“당신은 쟤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가 봐?”
“쟤들은 거짓말 안 하잖아.”
“진짜로 알아듣고 말을 거는 건 아니지?”
며칠 후 산책길에서 또다시 “왓왓왓” 대화가 오간다. 그들의 물음을 외면할 수 없어 이제는 대답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 한 편을 내게 보여준다.
왓? 왓? 왓?
침몰된 진실이 무어냐는 물음처럼
개구리 울음소리가 송곳보다 예리하다
왓왓왓 왓왓왓왓왓 왓왓왓왓 왓왓왓
향기 뽐낼 틈도 없이 꽃잎으로 떨어진
그날의 꽃송이들이 what? what?
피 끓는 물음이었다 what? 왓?왓?왓?
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
드릴로 어둠을 뚫는 듯한 울음소리가
진실을 묻고 또 묻는다 눈감은 우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