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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30. 2024

 진정한 집주인

시골집주인과 손님들

 사료는 미리 택배로 주문했으니 벌써 도착했을 것이다. 마트에 들르기만 하면 된다. 하루나 이틀 정도밖에 머물지 않아도 필요한 것이 의외로 많다. 먹을 음식부터 커피, 벌레기피제, 일장갑, 휴지 등. 집으로 들어가는 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아까시나무들이 자리를 잡아 깊은 터널을 만들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논과 밭을 지나면 멀리 기와집이 보인다.


  시골집은 엄마가 이사 간 후로 아무도 살지 않는. 아무도 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 가만 보면  부산스럽게 들락거리는 이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주인 행세까지 하는 걸 보면 집주인의 존재여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다. 


 처마 밑에 고양이들이 자리 잡으면 눈치 빠른 쥐들이 틈을 노리며 주변을 맴돈다. 마당 가는 꽃과 풀들이 진을 치고 하루가 다르게 영토를 넓힌다. 기와 사이사이로 참새가 터를 잡고 물까치들은 지붕 위에서 뻐꾸기는 전깃줄에서 운다. 가끔 들리는 손님도 빼놓을 수 없는데 겁이 많은 고라니, 손바닥만 두꺼비와 뱀까지 나타나 주인행세를 한다.

 

  그중에 가장 주인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은 아무래도 길고양이다. 우리가 일주일마다 꼬박꼬박 가는 이유도 어쩌면 녀석들 때문이다.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섯 마리였다. 짐작건대 세 마리는 집을 나간 것으로 보인다. 치즈냥이로 불리는 생김새를 가졌는데 멀리서 보면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겼다. 그나마 얼굴에 점이 있다고 점순이로, 경계심이 무척 심해 동글이라고 부르며 구별한다.


  이 녀석들의 어미의 어미의 어미도 길고양이다. 처음 온 삼색이시골 출신이 아니라 나름은 도시 출신으로 윤기 나는 털과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녔다.


  길고양이들은 집 밖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과 거리를 둔다. 가끔 와보면 밥을 주는 엄마만 곁을 허락하고 우리 가족은 2미터 이상으로 멀리했다. 야박하다고 탓할 수 없는 게 고양이로서는 우리가 외지인이었을 것이. 삼색이는 주변 야산을 전부 자기 영역으로 만들더니 매일 어디론가 마실 가거나 다람쥐처럼 감나무에서 소나무로 날아다니듯 날쌔게 돌아다녔다.


 먹이를 주는 주인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점순이와 동글이는 예전의 재빠르고 날렵한 모습 대신에 더 느려지고 더 경계하는 눈빛을 보인다. 시골에 남겨진 고양이가 걱정된다고 하자 사람들은 별걱정을 다한다며 그냥 두라고 말한다. 알아서들 떠난다고. 주인도 없는데 살길을 찾아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동글이

  사람살지 으면 집은 1년이면 대개 못쓰게 된다고 들었다. 가만두지 않고 제세상으로 만들려는 온갖 짐승들과 풀들 때문이다. 고향집을 위해 우리는 고양이가 떠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틈틈이 집안을 노리는 쥐들의 행동은 점점 대범해질 것이고 반갑지 않은 손님들마저 호시탐탐 염탐하는 일을 한시도 게으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묘안이 필요하던 중에 자동 급식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행히 지인으로부터 자동 급식기 2대를 얻었다. 


 "벌써 다 먹었네!" 가득 채워둔 급식기는 매번 갈 때마다 한 톨도 남지 않고 비어있었다. 이웃 손님들까지 다 와서 먹고 가는 '맛집'으로 소문이라도 난 걸까? 오갈 데 없는  근방의 고양이들과 다른 손님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양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 걱정은  괜찮았다. 들쥐나 뱀으로부터 집을 지켜주는 수고비라고 여기 아깝지가 않았다.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지. 주인 행세를 톡톡히 해주는 덕분에 시골집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잘 버티고  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입장이 묘해진다. 매주 한 번씩 먹이를 주러 가는 우리는 '어쩌다 주인'일 뿐. '정한 집주인' 따로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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