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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Jul 20. 2023

유턴을 해도 괜찮아

- 권재원의 『직업으로서의 교사』 -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 지역에서 일한 기간이 승진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관심을 두고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이에 비해 다소 늦게 시도한 편이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아는 동기마저 승진해서 학교관리자가 되었다. 10년 차에 나는 스스로 퇴직을 결심하여 경력에 공백이 생겼다. 재임용 절차를 거쳐 들어왔기에 승진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같이 고생하며 근무한 동료가 어느새 어려운 보고서를 통과하고 힘든 업무를 이겨내더니 승진 대열에 올랐다. 게다가 한참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치고 올라오는 상황은 나를 밀어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생각이 없던 내게 주위 사림들이 권유를 해왔다. “정말 아깝다.”는 꿀 떨어지는 말과 “충분한 능력이 있어.”라는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니 그 자리가 내게도 어울려 보였다. 그렇게 승진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새로 옮긴 근무지는 시내에서 한참을 가는 시골이다. 도심을 벗어나는 운전은 처음이라 불안해도 한적한 길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출근길에서 만나는 차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호라도 한 번 걸리면 대기 줄이 길어지고 꼬리물기를 해서라도 따라잡지 않으면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웠다. 운이 좋게 사거리 신호를 벗어나도 여전히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야 한다. 앞차 꽁무니를 열심히 쫓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뿐 다른 길이나 지름길은 보이지 않았다.


  “참나, 이렇게 느리면 어떡해!”

  추월조차 쉽지 않은 S자 도로가 계속이다. 나처럼 더딘 데다 설상가상 초보 운전자라면 지각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달고 다녔다. 그날은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예상대로 천천히 가고 있는 차가 맨 앞에 보였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자니 답답했다.


  그때, 좌측 사이드미러로 흰색 차량이 보였다. 한참 뒤에 따라오던 그 차는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굉장한 속력으로 내 차를 지나 거북이 앞차까지 앞질렀다. 정말 ‘쏜살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운전 솜씨였다. 불만을 가득 담아 우쭐대듯 경적을 길고 크게 울리며 지나갔다.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위험을 피해 속도를 줄이는 모습을 보니 난 아찔하기만 했다.


  “초보 운전이면 그럴 수도 있지.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모양이지!” 

  놀란 가슴을 추스르자마자 바로 내 앞의 트럭이 추월을 시도했다. 아뿔싸! 단숨에 앞지르기에 성공하고 말았다. 다음은 내 차례인데, 기뻐해야 하는 걸까. 백미러를 보니 제시간에 도착하려는 몇 대의 차량이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도로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추월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끈질기게 따라붙는 뒤차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마침, 당신이 할 차례라고 허락하듯 반대편 차로에 공간이 벌어졌다. 시원하게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액셀을 밟았다.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반대쪽 차선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량에서 뿜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상향등이 두 번 정도 번쩍이자 본능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 찰나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차피 들어선 길이라면 어려워도 참고 견디려 했다. 익숙해지면 구불구불한 길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내 실력이 늘 줄 알았다. 때로는 바쁜 사람들에게 양보하며 여유를 갖고 운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 도로에서 그런 것처럼 학교에서도 여전히 답답하고 더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굳이 나까지 서둘러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앞서가는 관리자가 원하는 방향은 내가 가려는 길과 달랐다. 이런 차이 앞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자부심이 한 장의 종잇장처럼 가벼워지니 고단하기만 했다. 경고하듯 경적을 울려대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베는 소리는 불편했다. 그제야 잘못 들어선 길임을 알아차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난 유턴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이 책은 독서 모임에서 논의한 적이 있다. 교사들로 구성된 모임에서 우리는 책 표지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표지 인물의 남다른 포즈 때문이다. 자신의 뒷목을 잡고 뒤돌아 있는 그를 보며, 다들 자신이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그가 짠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직업으로서의 교사』는 30년간 교육 현장을 지켜온 저자가 교사라는 자리를 돌아보며, 교사의 본질과 교육의 가치를 글로 옮긴 교육비평집이다.


  저자는 내 고민과 같은 문제를 이미 자각하고 많은 글을 쓴 사람이다. 때로는 선배처럼 차근차근 교육의 가치를 설명하며, 고민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덧붙여 교육 현장의 문제를 알아챘다면 스스로 공부하고 깊이 성찰한 후 가르치라고 강조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학생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은 학생의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 교육은 배움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과연 행복하게 지냈을까?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교육이나 업무, 생활지도는 쉽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갈수록 어깨가 처지고 의기소침해졌다. 비슷한 고민을 먼저 한 저자는 그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근거를 들어가며 위로한다. 절대 자책할 일이 아니라고, 함께 의견을 나누며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앞차 꽁무니만 쫓다가 목숨까지 내걸며 덩달아 추월도 했는데. 그래서 꼭 승진이라는 그 길을 가야 할 것만 같았는데.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난 괜찮았다.      

by 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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