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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l 20. 2023

19.  유턴을 해도 괜찮아

  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23년을 넘을 때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 지역에서 일한 기간이 승진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관심을 두고 일찍 시작하면 좋으련만 나이에 비해 뒤늦게 시도한 편이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아는 동기마저 승진해서 학교관리자가 되었다. 난 10년을 일하고 내 발로 퇴직을 감행하여 경력에 공백이 생겼고, 임용시험이라는 절차를 치르고 들어온 이후는 감히 승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재취업이라는 형식을 거치면서 직업을 대하는 생각도 달라졌다. 남다른 사정이 있어 그만두기는 했어도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게 학교는 과분할 정도로 고마운 직장이었다. 출근할 수 있는 아침이 반가웠고,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귀했으며, 일할 수 있는 여건에 감사했다.   

   

 긴 공백과 임용이라는 절차를 겪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며 일해도 힘들지가 않았다. 같이 고생하며 근무한 후배가 어느새 어려운 보고서를 통과하고 힘든 업무를 이겨내더니 승진 대열에 올랐다, 나만 뒤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여겼다. 별다른 생각이 없던 내게 주위 사림들이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권유를 해왔다. 아깝다는 꿀 떨어지는 말과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니 그 자리가 내게도 어울려 보였다. 거기다 한참 뒤에 있던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치고 올라오는 상황은 나를 밀어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승진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새로 옮긴 근무지는 시내를 벗어나 한참을 가는 시골이다. 시내권을 벗어나는 운전은 처음이라 불안해도 한적한 길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출근길에서 만나는 차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호라도 한 번 걸리면 대기 줄이 길어지고 꼬리물기를 해서라도 따라잡지 않으면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웠다. 운이 좋게 사거리 신호를 벗어나도 여전히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야 한다. 앞차 꽁무니를 열심히 쫓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뿐 다른 길이나 지름길은 보이지 않았다.    

 

 “참나, 이렇게 느리면 어떡해!”

 추월조차 쉽지 않은 S자 도로가 계속이다. 나와 비슷한 거북이 운전자라도 만나면 지각할지 모른다. 안절부절못하며 앞을 보았다. 예상대로 천천히 가고 있는 차가 맨 앞에 보였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자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좌측 사이드미러로 흰색 차량이 보였다. 한참 뒤에 따라오던 그 차는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굉장한 속력으로 내 차를 지나 거북이 앞차까지 앞질렀다. 정말 쏜살같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운전 솜씨다. 그리고 자기 과시인지 아니면 화를 내는 것인지 경적을 길고 크게 눌렀다. 반대쪽에서 오던 차가 분명히 속도를 줄이는 걸 본 나로서는 아찔한 광경이었다.    

 

 “초보 운전이면 그럴 수도 있지.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모양이지!” 

 놀란 가슴을 추스르자마자 바로 내 앞의 트럭이 추월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아뿔싸! 단숨에 앞지르기에 성공하고 만다. 다음은 내 차례인데 기뻐해야 하는 건가? 백미러 속은 제시간에 도착하려는 몇 대의 차량이 바짝 따라붙었다. 원활한 도로의 흐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지 않으면 끈질기게 따라붙는 뒤차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마침, 당신이 할 차례라고 허락하듯 반대편 차로에 공간이 벌어졌다. 시원하게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액셀을 밟았다.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반대쪽 차선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량에서 뿜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서치라이트가 두 번 정도 번쩍이자 본능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 찰나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차피 들어선 길이라면 어려워도 견디려고 했다. 하지만 관리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갈수록 교사로서 가진 자부심은 한 장 종잇장처럼 가벼워지고 마음은 한없이 무력해졌다, 부당한 지시도 그렇지만 마음을 베는 막말은 도저히 참아내기 어려웠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난 유턴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다룬 적이 있다. 교사들로 구성된 그 모임에서 우리는 책 표지를 보며 말들이 많았다. 표지 인물의 남다른 포즈? 때문이다. 자신의 뒷목을 잡고 뒤돌아 있는 그를 보며 다들 자신을 보는 느낌이라고 한다. 동질감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짠하다’는 말도 한다. 『직업으로서의 교사』는 30년간 교육 현장을 지켜온 권재원 교사가 교사라는 자리를 돌아보며, 교사의 본질과 교육의 가치를 글로 옮긴 교육비평집이다. 

    

 저자는 내 고민과 같은 문제를 이미 자각하고 많은 글을 쓴 사람이다. 때로는 선배처럼 차근차근 교육의 가치를 설명하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깨달은 문제라면 스스로 공부하고 깊이 성찰한 후에 가르치라고 이른다. 면면을 알아주고 이해받은 느낌이랄까.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교육 철학은 용기와 위로를 동시에 준다.      


 앞차 꽁무니만 쫓고 목숨까지 내걸며 덩달아 추월도 했는데. 그래서 꼭 그 길을 가야 할 것만 같았는데.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난 괜찮았다. 

   

by 오솔길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저런 모습을 어디서 많이 봤더라? 뒷목을 잡고 있는 표지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내 모습도 저랬을까?

오늘의 책
『직업으로서의 교사』, 권재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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