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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Nov 24. 2023

26.  지금은 쓰고 싶다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포기한 일이 있다. 도서관 주관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1인 1책 만들기'라는 글쓰기 과정이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지원을 포기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문서 작성법에 맞게 계획서나 보고서를 써본 게 고작인 내게는 책을 만드는 일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또한 배우고 싶은 간절함에 비해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는 내 자격지심 때문이다.


 괜한 열등감에 빠져서 포기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때로는 좋은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독서모임을 통해 읽었던 책과 내가 그린 책표지를 토대로 일단 써보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더니 며칠 만에 무려 세 편의 글을 완성했다. 과제물로나 써본 독후감이지만 어느 때보다 난 뿌듯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브런치스토리'에 내 글을 올렸는데 덜컥 합격까지 했다. 발행이라는 글자를 보고는 중압감을 느꼈지만 누르고 나서는 얼마나 설레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전해지는 응원의 라이킷은 진짜 작가가 된 것처럼 흥분이 되어 한동안 붕 뜬 기분으로 지냈다.


 책을 읽은 것을 바탕으로 내 이야기를 쓰니까 아무래도 편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게 답답했는지 아니면 들어주는 게 고마워서인지 고백하듯 술술 나왔다. 말수가 적은 편인 나는 누가 봐도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웬걸 그날부터 수다쟁이처럼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글을 다. 


 껄끄러웠던 아버지와의 관계부터 직장 생활을 접고 퇴직을 결심하게 한 계기들이 먼저 튀어나왔다. 잊었다고 담담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을 뿐 후회 정면으로 마주치기도 다. 그래서 겁이 났고 초라해지는 자신이 드러날까 봐 더는 솔직하지 못한 적도 있다. 그래도 처음 한 달 동안은 매일 12시까지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집중을 해본지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꽤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입안이 붓고 목이 뻐근했지만 멈추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즐거워서가 아닐까.


  브런치스토리는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읽어서 좋다. 주로 종이책을 넘기며 읽던 내 습관은 이제 개별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브런치의 화면 속으로 흡수되어 빨려 들었다.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개성 강한 작가들의 세계는 흥미롭고 같은 길을 걷는 교사의 글을 읽으면 동질감을 느꼈다. 쟁쟁한 그들의 실력에 위축되면서도 자극제가 되어 나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그래서 때아닌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것 같다.


by 오솔길


 그중에서 유독 마음에 든 책이 있다. 초보자인 내 마음을 사로잡더니 제목처럼 활활 발발하게 의욕까지 타오르게 만든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그리고 '글을 다룰 줄 알려면 몸이 경험한 세상을 곰곰이 들여봐야 한다'라는 저자의 문장이 꼭 나를 향해 가리키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두루두루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고루하지 않은 성품은 어떤 글을 써야 좋은지 방향을 잡아준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아서 먹을 수만 있다면 먹고 싶었다. 꼭꼭 씹어 꿀꺽하고 내 것으로 삼키고 싶은 책. 바로 '어딘글방'을 운영하 김현아(어딘)의 '활활 발발'이다.


 어딘글방은 끈끈한 연대감을 자랑하지만 글쓰기 과정만큼은 치열하다. 매주 글감을 내주고 글을 써오면 같이 합평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남들의 평가는 의욕이 넘칠수록 더 움츠려 들게 한다. 그게 글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상처가 되고 낙담할만한데도 젊은 글방인들은 끝까지 버티고 자기를 깨트리며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가차 없는 스승이지만 그를 닮아가는 글방인들은 우리나라에서 익히 알만한 작가들이 된다. 책에 소개된 몇 편을 읽어봐도 그들의 글은 신선하다. 평범한 일상을 시시하지 않게 제대로 터트리며 콜라같이 시원하게 톡 쏜다. 그리고 화끈하고 통통 튄다. 글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해서 먹고 싶은 대로 꿀꺽하고 먹었다가는 체할 지경이다.


 다니던 직장마저 퇴직할 정도로 적당하게 익어버린 나. 당연히 발랄하지도 번뜩이지도 총명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활활 발발한 글방인들의 열정만큼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그곳의 열정이 내게 전염되어 몸살이 난다 해도 지금은 쓰고 싶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아껴가며 읽다가 책만 보면 침을 흘리며 맛있게 먹던 여우가 생각났다.


  오늘의 책
『활활 발발』, 어딘(김현아) 지음,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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