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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ug 14. 2023

21.   이제부터 착하게는 살지 마

  두려움으로 숨을 곳을 찾아도 혼자라는 외로움이 밀려와서 그 순간만은 버티기가 어려웠다. 베란다 창밖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황홀했고 너무 아름다웠다. 저곳이라면 조금은 덜 힘들 것만 같았다. 순간이다. 생각의 흐름은. 노을빛은 다시 흐려졌고 난 베란다문을 닫았다.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그날 일이 생각났다.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는 것이라 온전히 이해할 수는 . 그래도 책에 나오는 동준이가 담임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읽고는 한참이나 울컥했다. 끝까지 버텨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두려웠던 심정이 스란히 전해졌다. 아팠다. 그건 이제라도 듣고 있다는 살아있는 자의 양심이다.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내일 인사과에 나를 때렸다는 사실이 전해질텐데....., 저는 과연 그 형의 반응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내일이 되면 회사에 모든 게 알려지겠죠.
그럼… , 음, … 괴롭힘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당했던 사람이기에. 변해야 했지만 결국 변하지 못하고 똑같이 반복해요.
선생님, 저… 무서워요…."


  고3학생으로 현장실습생인 동준이는 떨리는 손으로 이런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네  뒤에 샘이 있잖아'라는 답장은 결국 받지 못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빰을 때려 여린 아이를 무너지게 만든 형이라는 사람도, 무조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덮기에 급급한 회사 측도, 아직은 학생이만 취업은 했으니 책임지고 싶지 않은 교육계까지 그들 모두는 죽은 동준이를 외면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어느 현장실습생의 단순 자살로 묻힐뻔한 연은 주변인들, 동준이와 같은 어린 실습생들, 부모와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 억울함이 차츰 드러난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반성과 우리 사회의 남루한 인권의식이 책으로 쓰여 세상밖으로 나왔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를 투박하다 못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했던 현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게 만든 건 언어폭력과 육체적 폭력만이 아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참담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김없이 나마저도 지나쳤을 사건이다. 그의 억울함이 드러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그것은 뉴스에 간혹 보이는 자살하는 이들의 기사는 안타까운 사연일 뿐 여전히 남의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약자의 이야기만큼은 들어주고 싶었던 민감하지는 않지만 반응하려고 했던 것은 생각뿐이었나보다. 그래서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by 오솔길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동준이와 같은 사회초년생들의 아픈 소식은 뉴스를 통해 종종 들린다. 이번에 일어난 안타까운 소식은 학교에서 발생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규 교사이다. 그 소식을 들은 날, 지독한 감기가 낫지를 않아 힘에 부치던 아침이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나마 버티고 있었는데 놀란 마음에 기사를 클릭하던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버거워서 놓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한동안 나를 무겁게 했다.   

  "버겁다, 다 놓고 싶다."
  "엄마, 나 힘들어."

  

  사람의 입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무참하게 베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목도하는 사건이다. 책임감으로 끝까지 해보려고 애쓸수록 어긋나던 교실 상황은 나중에야 더 드러난다. 여린 그에게는 충분히 버거웠을 것이다. 짐작하고도 남을 아픔이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그와 같은 교사라서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자기 아이만 중요하다는 학부모에게 시달려서 재처럼 타버릴 것 같았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내 자존감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경우로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잘 띈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 그런 아픔에 직면한 이들의 상황을 잘 읽어내는 편이다. 보이는데 모르는 척은 못한. 더구나 바로 옆 교실의 상황이라 그랬다.

 

   그의 다급한 소리에 뛰어가 보면 벌써 폭력을 행사한 뒤다. 그래도 여전히 분이 안 풀리는 듯 씩씩거리는 학생을 몇 번 주하고 나서야 그 교실의 위기가 선명하게 보였. 울기 직전의 후배모습에 위로가 필요하겠는가. 내 등장은 엉망이 된 교실의 불꽃이 잠시나마 소등된 느낌이지 해결은 아니었다. 내게 얘기하기까지 얼마나 버티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이건 노력과 인내로는 감당이 안 되는 현실이다. 차마 견뎌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건 너무 아플 것 같아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솔직히 이걸 말하기도 창피해요. 자존심도 상하고요. 1학년 학생에게 맞는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겠어요. 부모도 안 믿는데."


   당사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가를 내며 겨우 버텼다. 그리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말끔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의 소란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러기까지 몇 달이나 걸렸다.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젠 '힘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고 꼭 이른다. 선한 영향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배려와 따뜻함을 보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오히려 이용하는 자가 있으니 특별히 주의하라고 한다. 올바르지도 현명한 해결방법이 아니란 것도 안다. 다만 자신을 먼저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조언이다.


  이번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나와 같은 남은 자들의 억눌린 감정이 계속 분출되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죽음으로 던진 질문은 우리가 풀어야 할 사회문제로 이어졌다. 그래서 남은 자는 미안하다. 좋은 곳에 갔을 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곳에서는 너무 착하게 살지 말고, 이젠 자신부터 먼저 지켜요.'



소소한 책그림 후기 ; 배려받지 못한 이들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길.


  오늘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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