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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May 18. 2023

빵 터지는 소통법

-  이석구의 『두근두근』 -


  “브레드 씨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총무님이 브레드 씨를 직접 초대하셨죠?”


  회원들이 브레드 씨를 언급하며 웃고 있다. ‘브레드’라고?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도대체 누구지? 익숙한 그 이름을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다행히 짧은 시간 안에 그 인물이 누군지 알아냈다. 오늘 간식으로 나온 빵을 보고 말하는 것인데, 뒤늦게 알아차린 나 자신이 조금 창피했다. 사실, 그림책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Bread(브레드 씨)였다.


  독서 모임의 살림꾼인 총무는 평소에 음료만 준비할 뿐 간식은 준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임 주제에 맞춰 어울리는 빵을 준비한 걸 보니, 의외로 센스가 돋보였다. 한 회원이 ‘브레드 씨’를 소환하자,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했다는 다른 회원도 빵을 보니 기분이 풀린다며 재치 있게 칭찬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다른 회원들도 유쾌하게 분위기를 띄웠다.


  마침 배가 고팠다. 중앙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빵을 그대로 놓고 참기 어려운 일. 먹고 시작하자는 의견에 소라빵, 팥빵, 크림빵, 소보로 등 무엇을 고를지 고민했다. 좀 늦게 도착한 회원이 빵을 먹는 우리를 보고 ‘빵!’ 터진다며 호탕하게 웃어젖힌다. 그는 참 빨리도 알아차린다.

    

  『두근두근』은 우리나라 작가의 그림책이다. 요즘은 국내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그림이나 내용에 있어서 그 수준이 세계적이다. 이 작품도 그중의 하나다. 나를 눈치 없게 만든 브레드 씨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우리를 빵 터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혼자 산다는 이 남자, 꽤나 수줍음이 많다. 문 앞에 ‘두드리지 마세요.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걸어둔 걸 보니, 아예 철벽을 쳐서 사람들을 철저히 차단하는 듯하다.


  그런 주인공에게 틈이 생겼다. 바로 빵을 굽기 시작하면서다. 배고픈 코알라가 먼저 문을 열었고, 남자는 빵을 만들어 대접하면서 남자의 손길을 알고 찾아오는 이들이 차차 늘어난다. 드디어 브레드 씨는 ‘두근두근 빵집’을 오픈하게 된다. 그의 유명세는 국경을 넘어 멀리 남극까지 알려진다.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 궁금증이 생겨 뒤표지에서 남극에서 온 손님을 찾게 마련이다. 작게 그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짐작건대 손님은 펭귄이다. 그렇다면 남쪽에서 온 그들에게는 어떤 빵이 어울릴까. 혹시 ‘얼음빵’ 같은 신제품이 나오게 되는 건 아닐까.


  ‘빵’ 덕분에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그로 인해 빵 가게를 열 만큼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 문을 연 것은 빵이 아니라 브레드 씨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배가 고프고, 잠이 오지 않고, 부끄러워 말이 나오지 않고, 추위에 떠는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빵과 차를 대접하며 상대방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준다. 들어주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것. 이게 바로 브레드 씨의 놀라운 능력이다.


  그와 반대로 우리 모임은 빠짐없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해야 한다. 정해진 규칙도 벌칙도 없지만 그래야 한다고 서로를 부추긴다.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문장이 좋았는지 그게 그림이든 글이든 나와 관계가 있는지 만약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한다. 이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런데 회원들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점을 깨닫게 된다. 책은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을 때 더 깊이 보이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다. 『두근두근』 그림책을 읽고 나눈 회원들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는 은둔형 외톨이가 떠올랐어요. 그렇지만 심한 수줍음은 겉모습일 뿐 사실은 무척 외로웠을 거예요. 브레드 씨는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정말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없었어요. 친구들도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점차 그 아이가 고립되더라고요. 걱정되어 짝을 만들어 주고 일부러 대화를 시도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말할 수 없이 기뻤어요. 문은 계속 두드려야 열리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방문한 코알라 덕분에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맛있게 먹었다는 코알라의 쪽지가 계속 빵을 만들 수 있게 용기를 준 거죠. 칭찬 한마디가 브레드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도 저는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겪을 만한 외로움, 불면증, 소화불량, 변비, 불안 등. 관계 속에서 힘들고 지친 모습들입니다. 그들은 브레드 씨의 빵을 먹으며 위안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브레드 씨는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힘들었지? 나랑 같이 얘기해 보자. 인생 그거 별거 아니야!”

     

  “빵은 맞춤 치료약 입니다. 불면증인 있는 코알라는 롤빵, 변비가 있는 쥐는 야채빵, 고양이는 붕어빵, 수줍음이 심한 사자는 두근두근빵을 주지요. 환자마다 치료 방법이 다르듯 손님에게 맞는 빵을 굽는 브레드 씨는 치료사입니다. 제가 방문하면 어떤 빵을 구워줄까요? 저도 치료받고 싶어요.”

     

  “빵은 브레드 씨와 다른 이들이 소통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수줍음이 심한 사람들은 대화보다 빵이 효과적인 소통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빵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거죠.”

    

  “브레드 씨는 제 남편과 똑같아요. 정말 낯가림이 심해요. 친구들에게 남편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끝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남편에게 이 책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그와 얘기하고 싶어요.”   

  

  크림빵이 그날따라 더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게 빵 맛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빵 터지게 만든 유머와 웃음 덕분인지 헷갈리지만 모임이 끝나면 빵집은 들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제일 괜찮은 브레드씨 좀 소개시켜주세요.” 뒤늦게 재미를 느낀 누군가의 호출. 그리고 드러나는 수많은 브래드씨. 우리 동네에 그렇게 많은 빵집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나도 두근두근 빵집에 버금가는 우리 지역의 빵집 몇 군데를 추천받았다. 마음에 드는 곳이 생겨 그곳을 가봐야겠다.


by 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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