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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18. 2023

12.  빵 터지는 소통법

『두근두근』을 읽고

  독서모임이 있는 날은 찌뿌둥한 마음이 잘 풀린다는 칭찬이 오고 간다. 그건 빵을 준비한 손길 때문이다. 이미 눈치챈 회원들은 그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잠시나마 배고픔을 잊는다. 뒤늦게 도착한 한 회원이 빵을 보자마자 빵 터진다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모임의 살림을 맡은 총무님의 센스 덕분이다. 



  이날 우리가 나눈 책은 '두근두근'이라는 그림책이다. 표지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본 적 있는 빵과 제빵사로 보이는 인물이 보인다. 주인공 이름이 '브레드'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빵 터졌다. 이처럼  터진 웃음은 브레드 씨를 불러왔다.

by 오솔길


  외딴곳에서 혼자 사는 이 남자, 꽤나 수줍음이 많거나 은둔형 외톨이로 보인다. 문 앞엔 '두드리지 마세요.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팻말을 걸어두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이 되어야 빵을 만든다.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인 요즘에 혼자라니 이 남자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문이 열리고 코알라가 들어온다. 배가 고프다는 손님을 외면하지 못하고 빵을 만들어 대접한다. 차츰 그의 집에 문을 두드리는 낯선 친구들이 많아진다. 드디어 브레드 씨는 '두근두근 빵집'을 오픈한다. 멀리 남극에 있는 펭귄이 찾아 올 정도로 빵맛이 일품이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우리 모임의 회원은 주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어른이 된 후로는 그림책이 처음이라는 선생님도 있고 반 아이들이나 자녀들을 위해 가끔씩 읽어준다는 분도 있다. 다만 공통점은 그림책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과 어린이용 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점을 깨닫게 된다. 한층 풍성해진 식사를 하는 느낌이다.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몇 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 은둔형 외톨이가 떠올랐어요. 그렇지만 심한 수줍음은 겉모습일 뿐 사실은 무척 외로웠을 거예요. 브레드는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


  "정말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우리 반에 아무도 없었어요. 친구들도 그러려니 하니까 점차 고립되더라고요. 걱정이 되어 짝을 만들어주고 여러 번에 걸쳐 대화를 시도했어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쁨이 생각납니다. 문은 두드려야 열리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방문한 코알라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맛있게 먹었다는 쪽지가 계속 빵을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거죠. 칭찬 한마디가 브레드 씨의 마음을 직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도 저는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겪어봤을 만한 외로움, 불면증, 소화불량, 변비, 불안 등. 관계 속에서 힘들고 지친 모습들입니다. 그들은 브레드 씨의 빵을 먹으며 위안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브레드 씨는 제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힘들었지? 나랑 같이 얘기해 보자. 인생 그거 별거 아니야. "


   "빵은 맞춤 치료약입니다. 불면증인 있는 코알라는 롤빵, 변비가 있는 쥐는 야채빵, 고양이는 붕어빵, 수줍음이 심한 사자는 두근두근 빵을 주지요. 환자마다 치료 방법이 다르듯 손님에게 맞는 빵을 굽는 브레드 씨는 치료사입니다. 제가 방문하면 어떤 빵을 구워줄까요? 저도 치료받고 싶어요."


  "빵은 브레드 씨와 다른 이들이 소통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수줍음이 심한 사람들은 대화보다 빵이 효과적인 소통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빵을 통해 세상밖으로 나온 거죠."


  "브레드 씨는 제 남편과 무척 닮았습니다. 정말 낯가림이 심합니다. 제 친구들에게 남편을 소개하려고 시도했는데 어느새 사라지더라고요. 남편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대화하고 싶어요."



  지치고 외로운 날이 있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것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당장 연락 할 친구가 없거나 그럴만한 여건이 안되면 더 쓸쓸하다. 이럴 때 브래드 씨가 근처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구운 빵과 허기진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하겠지. "인생, 그거 별거 아니야." 그러면 나는 빵빵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식탁 위에는 브레드 씨가 준비한 갓 구운 빵과 커피 한잔이 있다. 상상만 해도 피곤이 풀린다. 모임이 끝나고 두근두근 빵집에 버금가는 우리 지역의 빵집을 몇 군데 추천받았다. 한 번 가봐야겠다.


오늘의 책
『두근두근』, 이석구 글 그림, 고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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