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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Aug 29. 2023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3단 옷장

-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

  

1

  “어머니, 저 좀 숨겨주세요. 저 잡히면 죽습니다.”

  늦은 밤, 갑자기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숨겨달라고 하는 이가 있다. 목숨이 걸린 다급한 일이니 놀란 게 당연한데, 그런 기색조차 문밖으로 새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 감쪽같이 몸을 숨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은 고심 끝에 안방에 앉아 천장을 가리켰고 가족들의 입단속을 위해 함구령을 내린다.  

   

  극적 요소로 흥미를 자극하는 이런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 만하다. 아슬아슬하게 붙잡힐 듯한 상황이라면 긴장감마저 돈다. 왜 쫓기는 거지? 반전 있는 범죄물? 궁금하기 시작하면 호기심은 끝이 없다. 난 ‘테레비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번 빠지면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게 실화라고? 그것도 우리 집안의 일이라고?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만 한편으로 솔깃해졌다.


  그날, 부모님이 큰집에서 돌아온 시각은 자정이 넘었을 것이다. 일부러 기다린 것은 아닌데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중이었다. 두런두런 소리에 내 귀는 점점 예민해지고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날이 자신의 제삿날인 인물과 그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잠을 달아나게 했다. 아버지는 더듬더듬 옛날을 찾는 것 같아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금기시한 집안의 비밀을 소곤소곤 엄마에게 토해내고 있었다. 잠귀 밝은 딸이 엿듣는 줄도 모르고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버지에게는 네 명의 삼촌이 계시는데 이야기 속의 인물은 막내 삼촌이다. 아버지는 그를 내내 ‘작은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내게는 막내 작은할아버지다. 당시 열 살이 조금 넘은 아버지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분명한 어투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기억이 머문 그때로 나는 빨려 들어갔다.


  보기 드물게 공부한 사람이 근처에 살았던 것 같다. 그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인텔리 지식인이었던 듯하다. 작은아버지는 그를 자주 만나고 또 잘 따랐다. 그쯤에 전쟁이 일어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는 사건이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일어났던 그 일이 집안에 위험으로 닥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흘러들어온 소리. 그 현장에 작은아버지가 있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집안으로 쫓기듯이 들어와서 숨겨달라고 한 사람이 바로 작은아버지다. 목숨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급하다면 멀리 달아나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집안이라니. 그럴 만한 긴박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아무튼 들이닥친 사람 때문에 집안사람들은 다들 당황했다. 화급을 다투었기에 할머니는 빠르게 숨길 장소를 찾았고 위를 가리켰다. 안방 위의 천장이 그나마 최적의 장소여서 막내아들을 올라가게 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평소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질 정도로 당차고 강단이 센 할머니. 그녀의 말이라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섭게 노려보며 도망친 사람을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할머니의 지시대로 순순히 말하는 이는 없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그들은 가족 중에 두 사람을 인질로 삼아 데려갔다. 아버지(내게는 할아버지)와 큰형(내게는 큰아버지)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을 방 안에서 지켜보았다. 


  “그놈을 내놓지 않으면 장자와 장손의 목숨은 없을 줄 알아!”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 가족들. 말로는 안 되겠는지 방마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안을 샅샅이 확인하고 광과 헛간을 뒤졌다. 가족들은 그야말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공포감을 느꼈다. 


  협박보다는 어루만지고 살살 달래는 것이 더 유리한 걸까? 그들은 겁을 주고 위협을 했음에도 별 소득이 없자 이번에는 회유를 해왔다. 잡아가도 죽이지는 않겠다고. 그리고 잡혀간 두 명(큰아들과 큰손자)의 자식은 모두 돌려준다고. 그들의 약속은 결정적으로 할머니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때 할머니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천장 쪽에서 들렸다.

  “어머니, 일본에 계신 형님에게 내일 갑니다. 제발 오늘 하루만 숨겨주세요.”

  “……”

  “제발요!” 


  철석같이 그들의 말을 믿었던 건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할머니는 그만 막내아들이 숨은 곳을 가리키고 말았다. “저는 이제 죽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끌려간 게 내가 본 작은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야속하게도 철석같이 믿었던 약속은 하루도 안 걸려 지켜지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은 시신을 찾으러 나갔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주검을 구덩이에서 건져 왔다고 했다. 풀려난 자식이나 가족들은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할머니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냈다. 대강의 이야기가 끝난 건지 아니면 막내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괴로워한 할머니를 떠올리기 어려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동안 몰래 듣는 재미에 푹 빠졌던 나는 더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쉽게도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2

  큰집은 주로 명절에만 간다. 좁은 안방 벽에는 집안 어른들의 사진이 걸렸다. 갓을 쓴 할아버지와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작은할아버지들, 혼례식에 참석한 하객들, 흑백사진 속의 인물들은 근엄하기 그지없이 경직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김치!’라고 외치며 찍을 줄 몰랐거나, ‘웃으면 복이 달아난다’는 출처 없는 이야기를 믿었던 것 같다. 그나마 혼례식 앞줄에 서 있는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멀리 떨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이면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집안 얘기. 자랑할 만한 인물은 없을 텐데 한참 동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있다. 잘 새겨듣지 않아서 그런가. 그 작은할아버지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다. 그래도 그분은 선명하다. 사진 속에서 쪽진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은 채 정면을 응시한 할머니. 다부진 입 주위로 주름이 쪼글쪼글하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바람 잘 날 없이 부침을 겪은 증조할머니다. 꼿꼿하게 어깨를 펴고 똑바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리하다. 증조할머니는 왜 천장을 가리켰을까? 그런 결정이 낳을 비극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마도 당신의 눈빛처럼 예리한 칼날이 평생을 두고두고 후벼팠을 것이다. 


  지금은 증조할머니와 관련된 우리 집안의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후손들끼리 자주 만날 만큼 가까이 살고 있지도 않다. 가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묻기라도 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증조할머니는 아버지의 말과 달라 어이가 없었다. 같은 사람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해석하다니. 예를 들어 엄마에게 증조할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시킨 장본인이라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란다. 기가 세고 호랑이 같아서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당신의 할머니는 항상 최고였다. 제일 현명하셨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어두운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게 전개된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주인공이 장례를 치르며 아버지의 진심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유머’라는 단어를 의식하게 되었고, 다 읽은 후에야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우리 사회의 ‘빨갱이’와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쟁과 관련된 가족사는 실제로 슬프다. 그런데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내는 힘이 있다. 내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거기서부터 깨진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또는 일부러 말하지 않는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마도 우리 가족이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시청하는 바람에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나는 감명 깊은 영화를 일기장에 남기는 버릇이 있다. 영화제목, 제작사, 감독, 주인공 그리고 줄거리를 짧게 적는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본 것처럼 들은 이야기도 생생하게 그리고 대부분을 기억하는 편이다. 큰집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리며, 증조할머니가 앉아 있던 안방과 독특한 형태의 천장, 가족들이 숨죽이며 바라보던 창호지 사이의 작은 유리창, 그리고 부엌과 물건을 넣어두는 광을 카메라로 촬영하듯 떠올린다.


  책 중간에 나오는 지역 이름 ‘반내골’에는 군인들, 삼촌, 아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면 나 역시 우리 큰집을 자꾸 재생시킨다.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아니면 재생 반복을 너무 많이 해서 내 것처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아직도 옛날을 부르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집 거실에 버티고 있다. 100년이 넘은 3단 옷장. 바로 증조할머니가 쓰던 물건이다. 아버지 손에서 내게로 왔다. 소중하게 여긴 아버지를 위해 버리지 못하고 잘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기억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아버지의 기억이 유산처럼 낡은 옷장과 함께 남았다.      


by 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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