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봤으면 좋겠다!”
해가 지면 어둠이 어슬어슬 내리기 시작한다. 밤을 기다리던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여름밤의 공연은 약 보름 정도라 길지 않다. 장소는 알 수 없다. 미리 나타날 장소를 알려준 적이 없으니, 만나려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또 기다린다고 해서 반드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입장료가 무료인 만큼 느긋함을 가지고 있어야 만남도 가능하다.
무대는 넓고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있다. 그렇다고 월드컵 경기장은 아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조명이 밝은 무대라도 그들은 사양한다. 아니 그런 공연장이라면 오히려 싫다고 고개를 흔들면서 피한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조용하고 어두운 무대가 더 마음에 든다고 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해서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취향을 이해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팬들이 전국에 많다. 나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은 작은 벌레. 혹시라도 기대에 못 미쳐 실망했다면 그건 아직 이 벌레의 공연을 보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공연 시기가 돌아오면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들어 환영한다. 벌레라고 치를 떨며 비명을 지르거나 피하기는커녕 졸졸 따라다닌다. 때로는 장소와 날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축제를 열어 관객을 모으기도 한다. 벌레 취급이나 받던 데뷔 초기의 애벌레 입장으로는 이런 반응들이 호들갑스럽다며 눈을 흘겨도 어쩔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늦은 시각의 공연에 일부러 휴가를 내 찾아가기도 한다. 열정만은 여느 아이돌 팬에게 뒤지지 않는다.
작년 공연장으로 먼저 향했다. 당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천변길은 칠흑같이 어둡다. 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다리는데 잠잠하다. 단체 공연은 고사하고 솔로 출연마저 취소된 듯 조용하다. 주위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그때, 어스름한 형체들이 비로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누군가 천변 일대를 휩쓸고 공연장까지 자기들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풀과 조그만 나무들의 숨통을 조이듯 올라오는 것은 가시박 덩굴이다. 삼킬 듯이 덤비는 행태가 무척이나 위협적이다. 벌레도 나만큼이나 놀란 것은 아닐까.
다음 장소로 움직였다.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농로다. 다행히 거기까지는 가시박의 침입이 미치지 못했다. 풀벌레와 도랑물 소리가 맑고 청명하다. 다만 좀 겁이 났다. 매번 “으악!” 소리를 지르게 만든 주범들이 이곳에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예고하며 나타나면 좋으련만, 소리 없이 슬며시 나타나서는 깜짝 놀라게 만든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뱀과 지렁이들. 바짝 긴장한 채 컴컴한 밤하늘을 응시하던 그때였다.
“어! 반딧불이다.”
여러 개의 빛이 춤을 추며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S자를 연속적으로 그리며 날아다닌다. 노랗고 연두색을 띤 생명은 팬을 위해 몸을 사리지도 않는다. 스타의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는 눈으로 그들의 동작을 따라갔다. 10여 마리의 조촐한 공연이지만 가슴 졸인 만큼 멋졌다. 온몸으로 뿜어내는 빛의 예술이 황홀해서 가슴이 벅찼다. 나는 그대로 못 박힌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신비로움에 한 번 빠진 사람이 헤어나기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벌레를 좋아하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전북 무주의 벌레들. 해마다 ‘반딧불이 축제’를 열어 멋진 공연을 펼친다.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서식지를 제공하겠다는 지역이 나타났다. 자기 마을에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나선 손길이다. 이 벌레의 컴백을 위해서란다.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하는 일. 그 결과로 오는 일은 상상만 해도 기쁘다.
지금과 같은 인기 비결은 개체수의 급격한 감소. 희소성이 준 어쩔 수 없는 인기라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자연 그대로 더 이상 훼손하지 않을 때 그들의 전성기는 다시 올 것이다. 인기를 따라 이 벌레의 팬이 되지는 않았다. 희소성을 따지며 가치를 매긴 적도 없다. 다만 작은 벌레가 마냥 좋아 그들이 자주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아끼는 배우가 생기면 그들의 작품이나 연기경력이며 사소한 습관까지 알고 싶은 게 팬의 심리다. 팬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 더구나 까다롭기로 소문난 배우라면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할 만한 가치가 이 벌레에게는 있다. 예정 없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습성이나 나타나는 시기를 꼭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벌레의 먹이는 주로 달팽이와 다슬기. 서식지는 개천이나 풀숲. 알과 애벌레, 성충이 모두 빛을 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세 종류의 반딧불이가 있는데 9월에 나타나는 것은 ‘늦반딧불이’다. 내가 당진 지역에서 주로 만나는 종으로 가장 크기가 크고 지속성이 높은 빛을 낸다. 루시페린이라는 화학물질이 산소와 결합해서 내는 빛이 너무 황홀해 한 번 보면 자꾸 보고 싶어진다.
정작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이유는 짝을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밤마다 수컷들은 마음에 드는 암컷들을 유혹하려고 빛을 내는 것이다. 비행은 약 열흘 정도. 공연이 막을 내리면 곧 그들의 죽음이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열광하고 쫓아다니기만 하다니. 괜스레 미안할 정도로 멋쩍어진다. 스타는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면서도 또 내년을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밤 산책을 좋아한다. 어디선가 날아든 빛이 너무 아름다워 그때부터 팬이 되었다. 처음엔 한 마리를, 다음 해에는 두세 마리를 만나면서 매일 밤 그들이 나타날 곳을 찾아 헤맸다. 너무 사랑스러워 놀랐고 그 벌레가 ‘반딧불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천변 주위가 그동안 깨끗해진 것 같아 기뻤다.
지금은 해마다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내가 사는 지역의 환경을 염려하는 소시민이 되었다. 그리고 반딧불이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다 소중하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되었다. 벌레를 좋아한 뒤로 바뀐 변화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반딧불이가 준 것들이다.
뒤늦게 팬이 된 나의 고백이 이렇게 길어졌다. 다행히 반딧불이는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그동안 몰라주었다고 섭섭한 것도 또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단다. 그저 수많은 밤을 밝혔을 뿐이라고 한다. 가장 멋진 밤하늘의 예술가. 이런 멋진 아티스트를 본 적이 있나요?